역사와 신화: 한니발과 포에니전쟁 (로마의 도약)
역사와 신화: 한니발과 포에니전쟁 (로마의 도약)
펌 줄리어스 dkimh
칸나회전
나 카시우스는 순간 코끼리에 밟혀 정신을 잃었다... 여기저기서 간간히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나는 살아 있구나하는 안도는 피비린내와 함께 곳곳에 부러진 군단기의 창끝으로 반사되는 빛으로 해가 아직도 떠 있는 것을 앎과 동시에 살아 있다는 안도감은 공포로 변해 갔다. 전쟁이 끝난 것은 확실한데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길래 해가 아직도 떠 있는 것일까 ? 나는 하루 이상 정신을 잃은 것일까 ? 곳곳에 동료의 시체들이 즐비했다. 모두 다 몰사한 것은 아닐까 ? 적들은 이리저리 시체들을 마치 하이에나처럼 누비고 다니며 무엇이든 포획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걷어내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칸나회전은 이렇게 끝났다. 아침에 시작되어 겨우 반나절 만에 전쟁은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린 것이다. 무려 6~7만 명이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분당(分當) 3백 여 명이 죽은 것이다. 이긴 쪽의 전사자는 약 6천 명 정도. 패자는 로마군이고 승자는 카르타고(Carthage)군이었다.
애초부터 가능한 전쟁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라고 로마의 한복판에서 전쟁을 벌일 생각을 했을까 ? BC 240년 경 1차 포에니전쟁이 끝난 후 20여 년 간 로마와 카르타고는 별 탈 없이 지내는 듯 했다. 까짓 거 카르타고야 시실리 섬 하나 로마에게 내 준다고 해서 멀리 에스파니아를 차지하고 있는데 별거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1차 포에니 전쟁 패배의 복수심과 전쟁에 패한 대가로 내어 준 시실리 섬은 로마의 중심부를 치지 않는 한 칼끝은 카르타고를 겨냥할 것이라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야심에 찬 젊은이가 있었으니 에스파니아 통치권자의 아들인 한니발이다.
처음에 한니발이 사군토(또는 사군툼)를 공격했을 당시 로마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던 것이 사군토의 전략적 중요성이 약하기 때문이라 보다는 로마와 우선 멀리 떨어져 있고 당시만 해도 로마의 세력권이 갈리아 남부(오늘날의 프랑스 지중해변 지역)에 겨우 미쳐 있었던 터라 한니발의 사군토 공격은 지엽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로마가 방관하고 있었던 사이 사군토의 함락과 함께 한니발 군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로마군의 시야에서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에스파니아 본거지로 돌아가지는 않았는데 사라졌다 ? 로마는 황급히 그들이 배로 바다를 통해 오늘날의 이태리 서쪽 해안으로 진격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이런 추측은 로마로 진격하려면 육지로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고 한니발이 갈 수 있는 통로는 바다밖에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군다나 카르타고군은 코끼리를 전장에 앞세워 전쟁을 하는 터라 그 시기에 갈리아를 지나 알프스를 넘을 때면 겨울일 것이 뻔하므로 무조건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니발은 코끼리 수십 마리와 수만 명의 병사를 끌고 겨울에 알프스를 넘었다. 그것도 2천2백 년 전에... 로마의 예상을 뛰어넘고 한니발은 로마의 심장을 향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알프스를 통해 이태리로 들어가는 도로는 좁고 다니기가 불편할 지경이다. 하물며 2천 년 전에는 어찌하였겠는가 ? 그래서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2주에 걸쳐 알프스를 넘어 토리노(동계올림픽을 치른 곳)에 도착했을 때 한니발의 군대는 갈리아 지방에서 시작할 때보다 약 반으로 줄어들었다. 로마로 들어온 한니발은 연전 연승 끝에 칸나에 이르러 로마군을 상대로 엄청난 승리를 자축하기에 이른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한 겨울에 알프스를 넘는 코끼리 이야기와 함께 서양 사람들에게 길게 각인이 되어 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코끼리도 한니발 군대의 영향인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판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서구의 패배를 한니발의 칸나회전이라는 데에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고 기술한다. 한니발의 승리가 후일 카르타고의 완전 멸망으로 이끌어졌을지라도 그의 전략과 용기에 서구의 역사가들은 칭송해 마지않는 것이다. 혹자는 알렉산더의 가우가멜라 회전에 비유하기도 한다. 거꾸로 한니발은 알렉산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지라도...
시실리 섬: 1차 포에니전쟁
한니발이 험한 알프스를 그것도 겨울에 넘어 로마와 전쟁을 하자고 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한니발 전쟁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만해도 시실리의 서쪽 반은 카르타고에 속해 있었다. 카르타고(오늘날의 튀니지)에서 시실리까지 가장 가까운 곳이라도 뱃길로 100 km가 넘을 만큼 먼 곳의 시실리의 반을 카르타고는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에 카르타고는 지중해를 호령하던 강국이어서 그 오늘날의 모로코 등 아프리카 서북부와 스페인의 남부 등을 차지하여 해상국으로 기치를 올리는 동안 로마는 오늘날의 수도 로마를 중점으로 이태리반도의 각 독립지역을 협상을 통하여 연합체를 겨우 이루어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카르타고령, 메시나 및 시라쿠사의 셋으로 나누어진 시실리는 로마 본토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더군다나 겨우 로마연합체를 본토에서 이끌어낸 로마라는 도시국가는 시실리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다. 즉, 로마에게는 그 섬이 한낮 강대국이 갖고 있는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섬일 뿐이었다. 그런데 메시나와 평소 사이가 나빴던 시라쿠사가 메시나를 침공하자 다급해진 메시나는 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본토에 구원을 요청한다.
로마는 당연히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에 메시나를 도와 시라쿠사를 치면 시라쿠사는 당연히 카르타고의 도움을 요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메시나사태를 모른 척하기에는 시라쿠사와 우호 관계에 있는 카르타고의 시실리 완전 정복을 도우는 일 같기도 하여 결국 군단을 파병하기에 이른다.
결국 카르타고와 로마는 원하지 않았던 전쟁을 필연적으로 치르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파죽지세로 로마는 시라쿠사를 무너뜨리고 메시나를 자기 편을 만들었으니 순식간에 로마와 국경에서 마주보는 사이가 되어 버린 카르타고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게 바로 BC 264년에 시작된 1차 포에니전쟁이다.
카르타고와 로마는 무려 20여년 간의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서로 이기고 지는 공방 끝에 결국 시실리섬 서쪽 끝의 아이가테스해전에서 승리하여 카르타고를 무조건 항복시켰다. 결국 카르타고는 시실리 섬을 로마에 완전히 빼앗기게 된다. 로마연합체는 사상 처음으로 속주를 얻게 되었으니 바로 시실리다.
그러니 한니발이 복수의 칼을 세운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든 로마를 꺾어야 하며 사실 꺾을 상대일 만큼 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카르타고가 더 강국이었던 것이다. 그런 현실적 자신감이 한니발을 알프스를 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칸나회전으로 수만 명을 반나절 만에 몰살시킨 한니발의 대승은 로마에게는 일어설 수 없는 치명타였다는 것을 쌍방이 알았을지라도, 칸나회전에 참전한 19세 스키피오는 복수의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의 가문이 1차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시실리에서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적을 세웠던 회한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니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상대로 반드시 다시한번 맞 붙어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 비록 아직 겨우 반도를 연합이라는 형태로 묶은 신생국 로마이지만 1차전쟁의 승리는 로마에게 존재감을 심어주었다. 한니발의 강화협상을 거절한다. 10년 넘게 한니발은 로마본토에 머물면서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며 물고 물리는 전쟁 끝에 카르타고에서 벌어진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자마회전에서 한니발은 처절한 패배를 안고 다른 나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죽게 되며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를 평정한 공로로 그로부터 아프리카누스로 불리게 된다.
3대 황제 칼리쿨라의 아버지 이름이 게르마니쿠스였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이로써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 근방의 자기 영토외의 해외 영토를 모두 잃고 급기야 3차 포에니 전쟁을 통해 카르타고는 역사지도 위에서 영원히 없어지게 된다. 로마군은 카르타고의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80여 년에 걸친 전쟁이었다.
로마가 일개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세계 전체에 걸친 세계제국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된 전쟁이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시실리섬은 지리적으로도 이태리반도에 가까워 당연히 이태리 소속으로 되어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그 섬을 맘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포에니 전쟁 이전에 시실리 섬은 지리적으로 훨씬 먼 카르타고의 것이었다. 당연성을 담보로 하기 위해서는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도의 일개 도시 국가였던 로마처럼 반도를 먼저 통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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