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 내부의 잠식

in #aaa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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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출한 뒤 무작정 도쿄로 향하고 있는 소년 ‘호다카’(다이고 코타로). 대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진 채로 도착한 그곳에는 가출 청소년이 뿌리를 내릴 곳은 없었다. 그는 넷카페에 머물면서 일을 구해보지만 학생증도, 신분증도 없는 학생에게는 일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돈은 떨어져나가고 끼니조차 빈곤해질 무렵, 매일 맥도날드에서 부실한 식사를 하곤 했던 호다카를 유심히 보았던 아르바이트생 ‘히나’(모리 나나)가 그에게 햄버거 하나를 건넨다.

히나가 건넨 햄버거 하나로 또 다시 비 내리는 차가운 도시에서의 삶에 힘을 얻은 호다카. 그는 도쿄로 향하는 배에서 만난 인연이었던 ‘스가’(오구리 슌)에게 연락해 그의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일하게 된다. 스가가 하는 일이란 초자연 현상들에 대한 가십들을 찾아 글을 쓰는 일이다. 스가 또한 반 지하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하는 궁한 처지이지만, 사정이 딱한 호다카를 거둔다. 그렇게 호다카는 얹혀사는 처지이지만, 도쿄에서 처음으로 집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스가가 최근 추적하고 있는 가십은 ‘맑음 소녀’다. 그 소녀가 나타나는 곳이라면 매일같이 비가 내리던 도쿄의 하늘이 맑아진다는 것. 호다카는 스가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츠미’(혼다 츠바사)와 함께 도시를 누비며 소문들을 추적한다.

히나를 다시 만난 것도, 곤경에 빠진 히나를 호타카가 우연히 발견한 총의 방아쇠를 당겨 구해낸 날도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히나는 해를 보지 못하고 도시의 차가운 무관심에 흠뻑 젖어 지쳐있는 호타카를 데리고 폐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호타카는 히나의 기도에 비가 멎고 먼 곳에서 찬란한 빛이 구름 사이를 트고 피어오르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는 끝내 찾은 것이다. ‘맑음 소녀’ 그리고 빛과 같은 소녀 ‘히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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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날씨의 아이>의 소년, 소녀는 날씨를 바꾸며 도쿄 사람들에게 햇살 같은 행복을 찾아다 준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전작 <너의 이름은.>이 그랬듯이 그들이 가진 기적에도 정해진 운명이 존재한다. 히나는 ‘날씨의 무녀’로 고대부터 존재했던 무녀들의 운명을 타고 났다. 그녀는 날씨를 바꾸는 일을 하며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책임지지만, 때가 되면 날씨로 인한 재난에 대한 제물로 바쳐진다는 것이다. 히나는 갈수록 몸이 물처럼 투명해져간다. 그녀는 ‘인간 제물’의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호타카는 유일하게 소중한 단 한 사람을 그렇게 잃을 수는 없었다. 호타카는 소년의 몸으로 어른들이 말하는 운명에 대항한다.

<너의 이름은.>의 재난은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이었다면, <날씨의 아이>는 자연재해라는 소재를 공유하지만 그것의 속성은 사회의 내부에 있다. <너의 이름은.>에서의 ‘혜성 충돌’ 이라는 재난은 한 순간에 하나의 마을을 삭제해버릴 정도의 속도와 규모를 가진 사건이었다면, <날씨의 아이>에서 ‘계속되는 비’는 오랜 시간 축적되는 재난이다. 히나가 극적으로 제물의 운명을 피하고, 계속되는 비에 도쿄가 잠기게 되자 히나와 호카타와 인연이 있었던 한 할머니는 말한다. 도쿄는 원래의 모습이었던 바다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한 사회가 천천히 다시 인간의 흔적을 지우게 되는 것이다. 일본 사회가 가진 내적 문제, 사회의 동력이 멈추어져 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고령화로 인해 젊은이들이 사라져 가는 일본은 비에 잠겨가는 도시처럼 내적 정체로 인한 사회문제들을 안고 있다. 호타카가 잠시 생활했던 ‘넷카페 난민’의 모습이라던가, 일을 구하지 못해 거리를 떠도는 모습은 사회가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차단한 청년들의 현재의 모습과도 같다. 그런데 반면 어느 지점에서는 청년들의 어깨에 미래가 달려 있다며 국가적 희망이라는 무게로 짓누른다. 이것이 히나가 가진 ‘날씨의 무녀’라는 역할의 무게일 것이다.

재난을 멈출 힘이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삭제해가면서까지 ‘미친 세상’을 구할 필요가 있는지 영화는 묻는다. 과연 히나와 호타카와 같은 젊다 못해 어린 친구들에게 이미 미쳐버린 사회를 되돌려 놓으라고, 다시 해를 띄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한국은 빠르게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일본이 선행한 문제들을 우리 또한 몇 년 간격으로 맞이한다. 그렇다면 신카이 마코토가 <날씨의 아이>에서 미친 세상을 향해 내질렀던 이야기들이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그때의 우리는 ‘멈추지 않는 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https://brunch.co.kr/@dlawhdgk1205/197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568160?language=en-US)
별점: (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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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은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저도 <너의 이름은.>이 더 좋았어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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