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 다른 길을 걷는 같은 사랑

in #aaa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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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영국, 소년과 선생님이 해변을 거닐고 있다. 선생님인 남자는 집안에 남성 어른이 없는 소년에게 백사장에 그림을 그려 남녀의 성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남녀가 만나 생식이라는 생명의 지고한 순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소년의 몸이라는 성전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척박한 사랑의 토양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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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교리가 사회를 꽉 조이고 있었던 시대, 백사장에 서서 성교육을 듣던 소년이었던 ‘모리스’(제임스 윌비)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클라이브’(휴 그랜트)를 만난다. 계절이 바뀌어가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우정의 선을 넘어서 무르익어갈 무렵,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난 널 사랑해”라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그동안 기독교,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백인 남성인 모리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다. 그 또한 클라이브를 사랑하지만, 그의 마음은 죄악으로 뒤덮여 지옥에 가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클라이브에게 솔직하게 고한다. 모리스는 백사장에 서 있던 소년시절만큼이나 순수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악의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혼란을 말해 클라이브에게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그 혼란은 오래 가지 않는다. 사랑은 정신만의 일이 아니다. 그 뜨거움은 사람의 몸도 움직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리스는 사다리를 대고 창을 넘어 들어와 클라이브에게 입을 맞춘다. 시대가 주입한 개인의 내적 혼란을 딛고서 두 사람이 사랑으로 뛰어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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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와 모리스의 사랑은 모리스에게 시련을 안겨준다. 두 사람이 수업을 빠지고 함께 강가로 향했던 날, 그 모습을 보았던 교수가 그동안의 나태했던 행동들을 지적하며 모리스에게 정학 처분을 내린 것이다. 대저택과 엄청난 땅을 소유한 촉망받는 인재인 클라이브에 비해 교외의 중산층인 모리스는 학교에서도 비교적 단죄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모리스는 그 길로 학교를 나와 증권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모리스는 일련의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클라이브와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선택을 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반면, 클라이브는 사랑의 위기 앞에서 그 사랑을 잘라낸다. 클라이브는 이 사랑의 잔인한 결말을 보았다. 리슬리라는 학교 동창이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노역을 포함한 6년의 징역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클라이브는 그 때 모리스와의 사랑이 두 사람에게 엄청난 비극을 가져다줄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는 모리스 모르게 홀로 사랑을 떼어내며 앓다가 쓰러진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모리스에게 사랑의 종말을 고한다.

처음 맞는 사랑이 떠나는 사건 앞에서 모리스는 또 다시 사랑만을 원했던 연약한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클라이브의 저택을 오가며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최면을 통한 전환치료까지 받는 모리스 앞에 ‘알렉’(루퍼트 그레이브즈)이 나타난다. 알렉은 클라이브 집안의 사냥터지기이다. 중산층인 모리스보다도 한참이나 계급이 낮은 그와의 사랑은 클라이브와의 사랑과 역순으로 진행된다. 가장 강렬한 육체적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때도 두 사람의 사랑은 문을 넘어 진행되지 않는다. 알렉은 오랫동안 모리스의 방을 향해 걸쳐 놓은 사다리를 타고 창을 넘어 그의 방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눈다. 영화는 당시 영국에 서린 동성애에 대한 커다란 벽을 이렇게 표현한다.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밤중에 높은 벽을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람 키보다 작은 창문으로 숨어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숨어들어간 그 곳에서의 사랑은 사회가 정의한 사랑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더 애가 끓고 몸이 달아오르는 뜨겁고도 순수한 모습이다.

클라이브와의 사랑에서 상처받았던 모리스는 알렉과의 사랑을 의심한다. 하지만 알렉은 클라이브만큼이나 뜨겁게 모리스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모리스는 계급에 근거한 속물적인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알렉의 사랑을 확신한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버릴 마음으로 알렉을 향해 달린다.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모리스의 뒷모습을 클라이브가 바라본다. 그리고 플래시백으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케임브리지 시절의 모리스의 모습이 비춰진다. 이 때가 되어서야, 모리스와의 사랑을 끝냄으로서 이야기에서 계속해서 주변부를 맴돌았던 클라이브의 사랑이 빛난다.

그는 모리스를 지키기 위해 사랑을 끊어내었지만, 그 사랑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친구’로 만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온종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리스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껴안는 방식이었다면, 클라이브의 방식은 그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토록 바라보는 방식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모리스를 바라보는 클라이브, 모리스가 달려 사라진 정원을 응시하는 그의 마지막 눈빛에는 영화 중에서 가장 깊은 사랑이 스며있다.

https://brunch.co.kr/@dlawhdgk1205/198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26371-maurice?language=en-US)
별점: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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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동성애는 아직은 좀 보기 힘든게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남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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