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책 리뷰]그날을 기억하라, <1968년 2월 12일>
<1968년 2월 12일>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12일. 퐁니, 퐁넛에 진입한 한국군 해병대원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6살 베트남 소년의 입에 총을 쏘아 죽였고, 사람들이 숨어 있는 동굴 안에 수류탄을 투척해 몰살시켰으며, 젊은 여성의 젖가슴을 칼로 도려냈다. 한 젖먹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죽은 엄마의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베트콩의 위협은 없었다. 마을에는 노인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뿐이었다.
평화로운 이곳에서 왜 한국군은 그토록 총질을 해댔던 걸까. 무엇이 그들에게 만행을 저지르게 한 걸까. <1968년 2월 12일>은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는, 그날 그곳에 있었던 상흔을 따라가는 책이다.
이 책은 퐁니, 퐁넛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꼼꼼하게 담아내고, 분노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건 전후로 벌어진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이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걸 보여준다. 퐁니, 퐁넛 사건 한달 전에 벌어진 북한 무장 공비의 1•21 청와대 기습 사건, 1•21 보복 포격을 요청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를 달래기 위해 방한한 밴슨 미국 특사의 불편한 만남, 한국군의 양민학살이 베트콩의 공격으로 둔갑한 짜맞추기 조사, 베트남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탈영한 미군들의 밀항과 망명을 돕는 일본 비밀조직 ‘자테크’의 다카하시 다케토모 등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퐁니, 퐁넛 사건과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걸 보면 무척 놀랍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임에도 아무도 1968년 2월12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무언가를 폭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기억하려는 열망을 가득 담았다”는 <한겨레> 토요판 고경태 에디터의 말대로 우리는 그때 그 사건을 꼭 기억해야 한다.
김성훈
전쟁은 안됩니다. 역사가 가르쳐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