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롬> : 너와 춤을 추고 싶을 뿐이야

in #kr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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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후기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 ‘디디’(메릴 스트립)와 ‘베리’(제임스 고든)는 영부인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던 ‘엘리너 루즈벨트’의 삶을 그린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며 부푼 꿈을 꾼다. 그들은 이 뮤지컬로 한물간 ‘셀럽’인 자신들이 재조명 받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비판을 넘어 악평이 쏟아지고 그들은 다시 실패의 쓴 맛을 본다.

두 실패한 ‘늙은 자아도취자’들을 위로하는 것은 비슷한 처지인 ‘앤지’(니콜 키드먼)와 ‘트렌트’(앤드류 라넬스)다. 앤지는 뮤지컬 <시카고>에서 만년 코러스를 하고 있고, 트렌트는 동종 업계 종사자인 디디에게조차 잊혀질 정도로 TV에서 반짝하고 사라졌던 배우다. 네 사람은 ‘늙은 자아도취자’ 딱지를 떼고 뮤지컬 ‘엘리너 루즈벨트’를 홍보하고자 사회운동에 뛰어들어보기로 한다.

적당한 이슈를 찾던 앤지의 눈에 사건 하나가 들어온다. 인디애나 주에서 레즈비언 소녀 ‘에마’(조 엘 펠먼)의 프롬 참가가 ‘파트너는 이성이어야 한다.’라는 규칙을 어긴다는 이유로 프롬 자체가 폐지되었다는 소식. 이 소식을 들은 뉴욕의 셀럽들은 인디애나로 향한다. 매일 밤, 그들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삶을 바꿔주기 위해서.

프롬이 사라진 뒤, 에마는 학교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직접적인 혐오와 조롱 외에도 에마를 바라보는 시선 하나하나가 에마를 격리시킨다.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하고 싶은’ 당연한 바람이 에마를 ‘셀럽’으로 만들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은 주목을 받게 된 에마는 행동이며 말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에마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고 싶을 뿐인데, 주위의 공기가 술렁인다. 그럴 때면 에마는 그저 어떤 방향으로든 자신이 소진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조용히 숨을 쉬며 이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동성 파트너를 허용하지 않으며 프롬을 취소한 학부모회의 결정은 민권 문제로 넘어가게 되어 정부의 조정을 받게 된다. 일련의 조정과정이 진행되던 중, 디디와 배리, 앤지와 트렌트가 인디애나에 도착한다. 요란하게 인디애나에 발을 디디긴 했지만, 네 명의 한물간 브로드웨이 배우가 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폭은 좁았고, 영향력도 크지 못했다. 금방 기세가 꺾여 발을 빼려던 찰나, 검사장의 조정으로 ‘포괄적 프롬’이 열리기로 결정이 났다. 그들은 에마가 프롬에 가는 날까지 머무르며 에마를 돕기로 한다.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야, 그러니 끝나기 전에 사고 한 번 치는 거야.’ 프롬에 가기위한 쇼핑을 하며 배리가 에마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다. 에마 또한 ‘이젠 성공할 시간이야’라며 프롬에 대한 기대를 노래에 담는다. 배리와 에마에서 시작한 노래는 프롬을 준비하는 다른 학생들로 옮겨가며, 프롬이 열리는 그날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한 시절을 정리하면서 가지는 자유와 다음을 기대하는 희망으로 가득찬다.

하지만 그 날 학교 강당에는 에마 밖에 없었다. ‘에마의 선택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에마의 안전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학부모회가 두 개의 프롬을 연 것이다. 에마의 파트너 ‘알리사’(아리아나 데보스)는 학부모회장인 엄마에게 그 사실을 듣지 못한 채 ‘정상 프롬’에 참가하는 바람에 에마와의 관계가 틀어진다.

영화 <더 프롬>은 이때부터 더 뜨거운 화두를 던진다. 보호와 존중이라는 이름의 격리와 차별, 그리고 조롱의 행위를 두 개의 프롬 사건으로 단번에 보여준다. 이를 거칠지만, 주변에서 듣기 쉬운 말로 축약해보자면, “동성애자가 있는 건 상관없어, 그런데 내 눈 앞에만(내 주변에만) 없었으면 좋겠어.”다.

인디애나 주 사람들은 미국에서 동성애가 합법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 동성애의 현신이 지금 내 눈앞에 ‘에마’라는 모습으로 내 옆, 그리고 내 아들, 딸 옆에 있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그렇지만, 인디애나는 아니다’라는 식의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신념으로 ‘에마를 (격리하기) 위한’ 프롬을 열게 된 것이다. “내 눈앞에만 없었으면 좋겠어.”의 결과다. 발언 안에 있는 ‘상관없어’나 ‘인정해’ 같은 단어는 해당 이슈에 대한 발화자의 편협함을 가릴 수 없다. 결국에는 존재하는 것을 보지 않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텅 빈 강당을 본 디디를 비롯한 브로드웨이의 ‘늙은 자아도취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으며, 마음이 무너져 내린 에마를 위해 진심을 담아 행동하기 시작한다. 초반에 극을 이끌었던 디디와 배리는 이 시점에서부터는 에마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맞닥뜨린 개인 성장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한편, 앤지와 트렌트가 에마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트렌트는 에마의 친구들에게 현대에는 적용되지 않는 케케묵은 성경의 규율들을 들며 그 중에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임을 알린다. 또한 앤지는 두 개의 프롬 사건으로 인해 상심한 에마에게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끼를 발산하라며 충고한다.

그렇게 에마는 다른 누군가가 본인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닌 본인의 목소리로 가장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다. 그리고 ‘제멋대로인 심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포괄적 프롬을 개최한다. 다시 열린 포괄적 프롬에서 에마는 알리사와 함께 춤을 춘다. 애초에 에마와 알리사 두 사람은 이런 일련의 거대한 사건들을 원치 않았다. 트러블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다. 당연한 걸 바랐을 뿐인데,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다. 이제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춘다, 제멋대로인 심장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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