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추억(기억)'
다른 길로 가면 꽤 돌아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 있었다.
그 길가에 오래된 철물점이 하나 있었다. 언제나 유리문 하나가 열려 있었고, 그 안에 6~70 정도로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그 노인은 의자를 들고 나와 밖에 앉아서 지나는 사람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더 지나자 그 옆에는 작은 탁자가 생겼다.
노인은 그 길을 지나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 옆에 여자가 지나가면 ‘당연히’ 그 시선은 여자에게로 향했다.
마치 호러영화에 등장하는, 들어오는 주인공을 감시하기 위해 눈이 돌아가는 가고일(성당이나 고성을 지키는 괴물 석상) 같았다. 점점 그 노인의 시선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길을 지나갈 때 얼굴에 인상을 쓰고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표정이 나왔다) 그 노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다. 시선뿐만 아니라 고개도 그를 향해 돌렸다. 그 노인도 불편함을 느꼈는지 나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 후 3번 정도 그 행동을 반복하자 그 노인은 그 길을 지나는 나를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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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0여 년 만에 그 길을 지나갔다. 철물점이 있던 건물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 노인이 생각났다.
일종의 ‘추억거리’라 아쉬울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없어져도 전혀 아쉬움 같은 감정이 남지 않는 ‘추억거리’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