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프러제트’

in #kr-writing8 years ago

suffragette -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
suffrage - 투표권, 선거권, 참정권

<대사 1>

'우리는 창문을 깨고 불을 질러요. 전쟁이 남자들이 들어주는 유일한 언어니까요.'
We break windows, we burn things. Cause war's the only thing men listen to!

현수막을 들고 전단을 나눠주는 방식의 평화시위가 철저히 무시되자 서프러제트들은 인명피해가 나지 않는 ‘폭력’ 시위를 시작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이 대사 속의 ‘men(남자들)’은 생물학적 남성, 젠더 남성을 지칭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man, human은 인류를 뜻하는 단어) 또한 이 대사에 나오는 ‘men(남자들)’은 권력을 가진 세력(국가, 정부)을 말한다. 당시 정부를 운영하는 이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생물학적 남성들(men)이다. 이들은 전쟁(폭력)으로 국가를 유지해왔다.

이 대사는 단지 남녀차별의 문제가 아닌, 권력을 가진 인간(기득권 세력)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기득권 세력은 ‘평화의 언어’를 알아듣지(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과 ‘대화’하려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탄핵 요구 시위에서도 이 문제로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시위에서 폭력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비폭력을 끝까지 유지한 평화적인 방식으로 가야 하는가.

이 영화 대사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그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대화가 가능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사자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결코 인간과 ‘대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속한 환경이 다르면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위에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힘(폭력)이 될 수 있었다. 숫자가 적었다면 ‘폭력’이 되지 못하고 철저하게 무시당했을 것이다. 시민들의 엄청난 숫자가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비로소 ‘그들’이 시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잘 아시다시피 ‘말을 알아듣다’와 ‘말을 듣다’는 다르다. 무슨 말인지 들을 수는 있지만 그 말대로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대사 2>

영화 속 주인공의 남편은 아내에게 "너 서프러제트니?"라는 말을 한다.

요즘이라면 “너 페미니?”라는 ‘공격적인’ 말과 같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꽤 야만적이다. 어린이 노동이 합법이었다는 사실도 야만적이며, 피로 세습된 왕이 나라를 다스렸다는 사실도 야만적이다. 이런 ‘야만’이 멀지 않은 과거에는 ‘상식’이고 ‘합법’이었다.

요즘의 페미니즘 관련 ‘싸움’들은(논쟁이라 하기엔 그 수준이 낮다) 가까운 미래의 사람들에게는 ‘어린이 노동’처럼 야만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는 요즘 시대에, ‘서프러제트’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사전 속의 단어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역시 곧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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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동노동에 대해 아직도 호의적인 의견이 남아있는 것(비용을 덜 지불하겠다는 것을 포함하여)을 종종 볼 때마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그런 악습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구독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과거에는 상식으로 통하던게 시간이 지나고나서보면 '근거없는 야만과 차별'인 경우는 수도 없이 많지요

네. '근거없는 야만과 차별'들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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