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연재 환타지 소설> 퍼퓨머

in #kr6 years ago (edited)

사랑과 헌신의 ‘옥시토신’ 분비 촉진 체향을 갖게 된
한 남자의 파란만장 환타지 인생 역전기.

1화

“좀만이 완종아 정신 차려라.”

끼얹어진 찬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떠보니 산이었다. 쾌쾌한 흙냄새가 훅하고 덮쳐왔다.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다. 못 움직였다. 어깨까지 묻혀 있었다.

그래서 겨우 고개만 움직일 수 있었다. 거기다 입에는 두꺼운 천이 물려 있었다. 그리고 테이프로 감겨져 있었다.

“그래. 정신 차려야지. 이제 내가 준비한 진짜 이벤트가 열린다. 기대해도 좋아.”

나는 지금 납치되어 산에 묻혔다. 목만 빼고 묻혀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망이 쳐져 있었다. 일 미터 정도의 높이였다. 나를 가운데 두고, 사방 일 미터 정도 떨어트려서 네모 낳게 각 지점에 기둥을 박고 망을 친 것이다.

그 망 밖에 놈이 서 있었다. 손에 큰 생수 병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저 물로 내를 깨운 것 같다.

“야 오랜만에 덕분에 삽질을 다 해본다. 땀나더라. 한 번 움직여봐라. 딴에는 딴딴하게 잘 묻는다고 묻었는데 혹시 모르니까. 뭐 움직여봐야 삽으로 맞기 밖에 더 하겠냐만은.”

안간힘을 다 써서 움직여보았다. 역시 놈의 일처리는 확실했다.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으러아러아롸아!”

놈을 향해 소리쳐보았다. 역시 입에 물려 있는 천과 감고 있는 테이프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뭐래는 거냐? 답답하다고? 참아라. 이제 진짜 재밌는 걸 보여 줄 거니까.”

한껏 비웃은 놈이 들고 있던 생수병을 던지더니,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자루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루 주둥이를 풀었다. 그러더니 나를 가운데 두고 쳐져 있는 망 안 한 구석에 던졌다. 자루에서 무언가 스르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순간, 온 몸의 모든 털이 곤두섰다. 뒤통수가 뻣뻣해졌다. 뱀이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뒤엉킨 여러 종류의 뱀들이 자루에서 기어 나왔다. 일 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다.

“으러라아라나러아~흐러릐아아~!”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괴성이 막 터져 나왔다.

“아주 지랄 발광을 하는 구나.”

팔짝팔짝 뛰기까지 하면서 놈은 웃어댔다. 그 사이 뱀들이 자루에서 거의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기절한다.

“야 이렇게 픽 기절해버리면 재미없잖아.”

잠시 후 놈이 끼얹은 휘발유 때문에 난 또 눈을 떴다. 바로 뱀들이 있던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눈을 돌렸다. 다행히 뱀들은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혀를 있는 힘껏 밀어내서 천을 뱉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으라아롸아하와롸아!”

다시 모든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보았다. 그러나 내 마음만큼 큰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놈이 다가와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 괴로워 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어. 아, 목소리가 안 나오지. 그럼 표정으로 말해봐.”

다시 뱀들의 상황을 확인하고 놈과 눈을 맞추고 흐느껴보았다. 눈물과 콧물 때문에 목소리는 더욱 더 낮아졌고 작아졌다.

“으러으으르어르어. 으므너르나아.”

“아우 좋아. 미치겠다. 아주 좋아. 지금 너어무 행복하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아?”

눈이 부릅떠졌다. 욱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눈물에 금방 놈의 얼굴은 흐릿해졌다. 눈을 계속 껌뻑거리고 고개를 흔들어 눈물을 털어 냈다.

놈의 얼굴이 다시 자세히 보였다. 웃고 있다가 이내 표정이 굳더니 구겨졌다.

“진짜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재미없다.”

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놈에게 잡힌 술집 앞에서 들어가기 전에 이상하게 찜찜했던 것을 그냥 넘기지 않았더라면, 아니, 놈의 여자와 아무리 취했어도 자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여자가 슬픈 얼굴로 도망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냥 외면했더라면, 아니 상경군에 안 왔더라면..........

“안 되겠다. 그만 가야되겠다. 여기 꽤 깊은 산이라 내려가려면 한 참 걸리거든. 알고 있지? 휘발유 곧 날아 갈 거라는 거. 뱀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다가 가라.”

놈이 돌아섰다. 잡아야 한다.

“으라어랑아러아!”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러나 놈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그대로 내려가 버렸다.

“으러아화나아롸아나!”

정말 가버렸다. 설마 이대로 두고 가겠나 했는데, 갔다. 곧 돌아오겠지 했는데,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오지 않았다.

그 사이 뱀들이 망을 뚫고 나가보려고 하다가 안 되겠는지 방향을 바꿔 내게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휘발유 냄새도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점점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뱀들 중 하나가 너무도 가까워졌을 때,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청각이 예민해졌다.

스륵스륵.
쉿쉿.

뱀들이 기어가는 소리와 뱀들의 혓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이 아니었다. 점점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기완종씨?”

눈이 번쩍 떠졌다. 회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와 검은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놈이 맞아서 퉁퉁 부운 얼굴로 서 있었다.

먼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삼단 봉을 꺼내서 내 주변의 뱀들을 구석으로 몰았다.

“으어?”

“다행히 늦지 않았네요.”

중년남자가 눈짓을 하자 젊은 남자들이 삼단 봉으로 뱀을 자루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쉿! 소리를 내며 덤벼보는 뱀도 있었지만 이내 모두 자루에 들어갔다.

뱀들이 모두 자루에 들어가자 또 다른 젊은 남자가 망을 넘어와서 내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를 뜯어내고 천을 꺼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중년 남자가 다가와 앞에 앉아 손수건을 꺼내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풀어드리겠습니다.”

젊은 남자들이 중년 남자의 눈짓에 바로 삽을 들고 다가왔다. 나는 금방 땅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자리에 놈이 묻혔다.

다시 뱀도 풀렸다.

“으러아러아러나롸아!”

놈은 천과 테이프 대신 자신이 입고 있던 속옷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려오는 우리를 향해 울부짖었다.

산을 내려오니 주차장에 고급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 남자가 뒷문을 열어주었다.

“타세요.”

바로 올라탔다. 중년 남자의 뒤에 검은 정장의 젊은 남자들이 노려보고 있었다.

중년남자가 올라타서 내 옆에 앉자마자 바로 출발한 차는 한 동안 달리더니 금방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지나가는 표지판을 보고 서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저렇게 두고 가도 괜찮을까요?”

“왜요? 가서 꺼내 올까요?”

“아닙니다. 그냥........”

“폭력 전과 8범, 거기다 강도 강간, 해충이죠. 인간이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지시 해놨으니 깔끔하게 정리 할 겁니다.”

“저는........저 놈과는.........”

“알고 있습니다. 해충이 갉아 먹은 여자 달래줬다가 더럽게 엮이셨다는 거.”

“감사합니다.”

“한 창엽입니다.”

창엽이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짓더니 운전석 뒤 편 망에서 서류 폴더를 꺼내자 운전사가 바로 실내등을 켰다. 서류 폴더를 보면서 창엽이 말했다.

“보자, 기완종씨, 서른다섯 살이시고, 직업은 안전감시단이시고, 고아원에서 자라셨고,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 마치셨고, 대학은 안 다니셨고, 서울 여의도 고시원에 사시고, 상경군엔 현장 때문에 가신 거죠?”

“네 그렇습니다. 전에 다른 현장에서 같이 일했던 팀장님이 한 달만 도와 달라고 해서요.”

“네, 그래서 상경군에 갔다가 주말에 술 한 잔 마시러 시내에 내가서 저 해충이 갉아 먹은 여자를 만났고, 뭐 달래주다가, 뭐, 네. 그리고 잡히셨군요.”

“네.”

갑자기 죄지은 것도 없는데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시는 거죠?”

“어, 사실 상경군 가시기 전부터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안 가실 줄 알았는데, 가셨고, 금방 올라올 줄 알았는데, 한 달 다 채우시더라구요. 거기다...........”

“그럼?”

“아네, 잡혀간 건 몰랐습니다. 덕분에 세 사람이 직장을 잃었네요. 완종씨를 지켰어야 하는 사람들이죠.”

“저를 지켜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한 가지만 확인합시다.”

“어떤.........?”

“기완종씨는 이십만 명 중에 뽑히셨습니다. 최종 결정이 좀 늦어졌죠. 안 그랬음 상경군까지 안 갔을 텐데 말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셔야...........”

“그런데 아무리 이십만 명 중에 뽑히셨다고 해도, 본인이 싫다고 하면 할 수 없거든요. 다른 후보가 한 명 더 대기하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요.”

“그러니까.......그게........어떤.......”

“그걸 알게 되시는 순간부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딱 서울 도착하기 전까지 고민하세요. 싫다고 하시면 그냥 사시는 고시원 앞에 내려드릴게요.”

서류를 덮어 다시 운전석 뒤편 망에 넣은 창엽은 그 뒤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여의도 앞에 올 때까지.

여의도 고시원 앞에 차가 멈추자 창엽이 물어왔다.

“어떻게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내려드릴까요? 물론 내리시면 저와 함께 있던 모든 일을 다 잊으셔야 되겠죠. 안 그럼 정말 묻어버릴 겁니다.”

“아닙니다. 내려 봐야 고시원의 좁은 방 말고는 기다리는 곳도 사람도 없습니다.”

굳어있던 창엽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좋습니다. 그럼 가시죠.”

다시 차가 출발해서 달리기 시작했을 때,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봤다.

“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지 이젠 알려주셔도?”

“가서 이야기 할 겁니다. 하나만 말씀드리면 실험을 하러 갑니다. 거기까지만 알고 계세요.”

또 창엽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차피 가기로 했으니 더 묻지 않는 게 좋으리라. 나는 눈을 감고 편안하게 등을 기댔다. 여전히 긴장은 풀어지지 않았지만 두려움은 조금 가벼워졌다. 뭐가 되었던, 뱀은 이제 없는 것이다.

차는 양재동 어딘가에 멈춰 섰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단독주택 앞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 다섯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정장 입은 남자들이 안으로 안내했다. 창엽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당분간은 여기서 살게 되실 겁니다.”

내부는 강남의 고급 주택답지 않게 단촐하게 채워져 있었다. 트럭 한 대는 주차해도 될 만큼 넓은 거실에는 대형 벽걸이 TV만 걸려 있었고, 의례 있는 소파는커녕 작은 탁자 하나 없었다.

바로 창엽의 안내로 따라 들어간 서재는 벽 모두를 책장이 채우고 있었고 책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책상과 의자 한 세트가 있었고 앞에 응접용 소파 세 개가 삼각형으로 놓여 있었다.

창엽이 먼저 소파에 앉았다.

“앉으세요.”

나도 따라 앉자 노크 소리와 함께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쟁반에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창엽과 내 앞에 차를 놓고는 조용히 나갔다.

창엽이 먼저 차를 마셨다

“드세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자 창엽이 물어왔다.

“혹시 옥시토신이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옥시토신이요? 들어보긴 했는데 구체적으로는......”

“흔히들 사랑과 헌신의 묘약이라고 하죠.”

“네. 그러고 보니 언뜻 들은 것도 같네요.”

“아기는 말이에요. 태어나서 얼마 동안 엄마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어......안 낳아 봐서 잘은 모르지만 뭐. 그렇겠죠?”

“그래서 엄마에게 옥시토신이 분비되도록 하는 체향을 가집니다.”

“아 그래요?”

창엽이 찻잔을 놓고 얼굴을 가까이 내밀었다.

“만약에 말이죠? 그 체향을 어른도 갖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엄마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옥시토신을 분비하게 만드는 체향이죠.”

나도 찻잔을 내려놓고 시선을 맞추며 대답했다.

“음...........좋겠죠. 모두가 엄마처럼 사랑 해주는 거니까요. 아, 그런 게 있으면 정말 대박인데요.”

“기완종씨가 여기 온 이유입니다.”

“네?”

“십오 년 걸렸습니다. 삼백억 들었죠. 그런데 겨우 하나의 캡슐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연구소에 화재가 나서 자료들이 다 타버렸고, 연구진도 모두 죽었습니다. 철저하게 격리 돼 있던 연구소였습니다.”

말하고 내 표정을 살피던 창엽이 일어나 책상 서랍에서 케이스 하나를 가지고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케이스를 열어 내밀었다. 안에 캡슐 하나가 들어 있었다.

ㅡ 다음 화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image
@yunasdiy님께서 그려주신 소중한 대문입니다.

Sort:  

신선한소재에요~ 모두가 엄마처럼 사랑해주게 하는 약이라니 다음 내용이 궁금해요:)

감사합니다. 스팀잇에서 될까 아직 고민이 되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캡슐이 먹는것인가요?

넵. 그런 설정입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캡슐이 어떤역할을 할지 기대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너무 재미 있었습니다.
추리소설을 읽는줄 알았어요
다음편 빨리써 주세요^^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9
TRX 0.12
JST 0.033
BTC 62934.09
ETH 3118.65
USDT 1.00
SBD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