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국 관계(박영실) 1steemCreated with Sketch.

in #sct5 years ago

박영실은 서론에서 자신이 연구를 진행한 문제의식을 다음 몇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중국의 한국전 참전이 국가적 대외안보, 북한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 및 중국 내부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내재한 상황에서 결정된 것임을 밝히고자 했다

(아직 책을 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박영실의 문제의식에서 소련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앞의 <괴뢰군 연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당시 한국전쟁 발발이전에 소련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물론 많은 학자들이 중국의 한국전 참전에 관해 소련의 역할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한국전 참전 결정이 중국과 소련이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소련은 중국이 주도적으로, 중국은 소련의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참전했다는 주장을 한다. 중국과 소련 모두 한국전에 대한 책임이 문제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의 학자들은 그런 측면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두번째 북한은 전쟁초기에 미공군의 폭격으로 영토가 초토화되었고 그때 내부에서 중국에 군사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괴멸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마지못해 중국에 지원을 요청한 이유를 살펴보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셋째, 중국인민지원군이 북한이 입국한 이후 연합사령부를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갈등과 대립을 겪었다. 북한과 중국이 그렇게 갈등할 수 밖에 없었는 과정에 대해 주목한다고 밝히고 있다.

넷째, 8월종파사건이 북한의 권력구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려고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8월 종파 사건은 북한내 연안파와 소련파가 연합하여 김일성에게 도전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8월종파사건이 북한의 이후 정치적 행로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주체사상도 8월 종파사건이 후 본격적으로 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8월 종파사건의 경험은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도 8월종파사건의 역사적 경험이 각인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만일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만 고려했다면 핵개발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제일 먼저 8월 종파사건 두번재 한중, 한러 수교와 같은 과정을 통해 북한은 핵을 가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8월 종파사건이라 생각한다.)

다섯째는 1958년 중국인민지원군의 철수 이유와 반응에 대해서 살펴보겠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상의 다섯가지 주제가 박영실의 문제의식이다.

다섯가지의 문제제기는 매우 재미있는 주제다. 앞으로 조금씩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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