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 연혁) 26, 제6기 전투(아군 총반격시부터 서울 탈환시까지)steemCreated with Sketch.

in #sct6 years ago

이 연구의 목적은 원래 낙동강전선까지의 전쟁상황을 살펴보면서 북한군의 기습이라는 용어가 군사적이아닌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군의 초기 작전적 성과를 불법 무도한 기습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한국전쟁의 군사적 교훈은 사라진다. 북한은 초기 작전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모든 전쟁은 성공적인 국면과 잘못된 국면의 총합의 결과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어떤 성공과 실패를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음에 우리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연구목적으로 보면 제5기까지만 살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제1차 남침으로 규정한 기간은 모두 북한의 작전이므로 이번 <괴뢰군 연혁>은 제1차 남침까지 계속 정리하려 한다.

먼저 아군이 세차례에 걸쳐 총공격을 받았다는 것부터 시작한다.

9월 15일 미명 반격전이 시작되었다. 인천상륙작전과 병행하여 각전선에서는 과감한 반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일제히 총퇴각을 시작했고 동해안에서도 집요하게 저항하던 괴뢰군 제5, 12, 8사단도 9월 17일 총퇴각을 시도했다 .

전선사령부 : 동부 불상지역으로 이동

제4사단 속리산-소백산-태백산-평창으로 퇴각

제13사단 문경-제천-원주로 퇴각

제1사단 충주-제천-원주로 퇴각

제2, 15사단 중부 불상지역으로 퇴각

제5사단 태백산맥을 따라 후퇴

제10사단 현풍-금화-대월리 방향으로

제6사단 양구로 퇴각

제8사단 풍기-단양-제천-춘천

제9사단 협천-대전-강원도 이천, 제2군단에 배속, 금화 금성지역에서 유격전

9월 26일 유엔군 제1해병사단과 제7사단 및 한국군 제17연대에 의해 서울 탈환

서울 방어임무를 수행하던 제18사단 약 1만명, 인천경비여단 약 7천명, 제31여단 3천명 합계 2만명이 있었음

김일성은 민족보위상 ‘최용건’을 서울방위사령관으로 임명 저항함

아군의 한강도하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자 북한군은 철원지구로 후퇴 집결

9월 27일 서정리 부근에서 아 북상군과 인천상륙군이 연결

호남지역의 북한군은 금천,영동,청주 부근의 태백산맥을 이용하여 북상, 나머지는 지리산 대덕산 회문산 일대에 집결하여 유격전 시도

인천 상륙작전이 이루어지면서 북한군의 대부분은 중동부 전선을 통해 북한으로 철수를 했다.

그 와중에 게릴라 활동을 한 것은 호남지역에서 미처 철수를 하지 못한 부대의 일부와 제2군단의 일부로 강원도에서 유격전을 전개한 제9사단 정도였다.

북한군이 철수과정에 전투력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괴뢰군 연혁>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올린이:admin2019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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