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전사 14-7 제3차 전역, 모택동의 입장변경(신속한 작전 지시)
팽덕회의 신중한 작전에 동의했던 모택동은 곧바로 신속한 작전을 주문했다.
새로운 정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한국군 및 미군의 일부가 이미 37도선에서 부터 38도선 사이에 확고하게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이 중국군이 먼길을 진격하지 않고도 바로 교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82)
이런 정보는 이미 팽덕회도 알고 있었고 중국군 지도부 전체가 다 공유하고 있었다. 새로운 정보도 아닌 것을 가지고 모택동이 신속한 결전을 요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2차 전역이후 작전을 중지한 것에 대한 북한과 소련의 반발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김일성과 팽덕회가 서로 몸싸움까지 했다는 소리까지 있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애초에 인민군 제2, 제5군단을 적후방에 투입하여 병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을 변경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국군이 집중되어 있으면 아군에게 유리하고 분산되어 있으면 아군에게 불리하다. 만약에 인민군 제2 및 5군단이 이 시점에서 조선 남부에 침투하여 적의 후방을 위협하게 되면 적군의 병력이 분산되고 적은 부대배치를 변경하게 될 것이다.
즉 37도선 이북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군의 작전에 매우 커다란 곤란이 초래되고, 아군은 적군을 쉽게 섬멸치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민군 제2, 제5군단은 현시점에서 조선남부에 투입되지 말아야 한다.
또 아군의 주력(인민군을 포함)은 이번 전역을 마친 연후 수십리를 스스로 철수해서 휴시과 재정비를 갖추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미군과 한국군이 안도감을 느끼고 그 방어선을 가능한한 북쪽에 편성케하여, 아군이 춘계에 다시 적을 섬멸함에 유리하게 될 수 있다.”(82)
모택동의 이런 지시는 최종적인 것으로 팽덕회는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택동도 당시 중국군의 상황을 볼 때, 계속 공격할 수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소련과 북한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제2차 전역이후 공격중지문제는 스탈린이 중국과 북한의 입장을 직접 조정해야 할만큼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