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 고양이 1
그날의 일
옛말에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읇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말처럼 실제로 무술가의 곁에서 오랜시간 무술을 지켜보며 익히게 된 짐승도 있다.
이런 짐승을 영물이라고 하는데 대게 사람들은 녀석의 몸 속 내단을 탐을 낸다. 먹기만 하면 단기간에 10갑자의 내공을 이루어준다는 내단인데 탐내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것은 아주 어리석은 이야기다. 많아야 10년 안팎을 사는 짐승이 무술을 익히면 얼마나 익힐 수 있고 또 내단을 만들어 낸다 해도 그것이 어찌 10갑자의 내공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니 영물의 내단은 그저 단기간에 고수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백호를 만나기 전까지는...
어느 날 나는 산고양이나 다름없던 녀석에게 내공을 주입해 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며 털을 곧추세우며 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가부좌를 트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녀석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일종의 추궁과혈이었다.
보통 고양이라면 자지러지고 도망갔을 텐데 녀석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눈을 감고 그 고통을 견디며 그동안 훔쳐보았던 내 내공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녀석의 몸안에서 내공이 움직이는 것이 느끼며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고양이가 내공심법을 운용하다니...
그리고 아무리 영민한 자라 해도 보는 것만으로 내공심법을 익힐 수는 없는 법인데 한낯 미물인 산고양이가 내 심법을 몰래 배우고 있었다니…
나는 녀석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축근공과 축골공 그리고 역용술 그리고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팔극권공과 다양한 강기를 형성할 수 있는 수강도 전수하기로 했다.
사실 전수라기 보다는 혼자서 떠들고 시연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신기하게도 그것을 알아듣고 흡수하듯 모두 연공해 내었다. 마치 백안이라도 가진 것처럼 말이다.
‘백안?’ 그래 백안! 깜짝 놀란 나는 고양이의 눈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백안이었다. 천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하는 전설의 백안... 그런데 그 백안이이 고양이에게 나타나다니…
그렇다면 ‘백안, 청안, 적안, 황안’을 가진 동물들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정말로 ‘백안, 청안, 적안, 황안’이 동물들이 존재한다면 더 이상 영물에 대한 전설은 전설이 아니라 실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니아옹~ 정말이지 매번 들을 때마다 어이가 없다니까!”
“그치, 그치! 대장이 아무리 대단해도… 영물이라니… 그리고 백안이라고? 갸릉.”
두 마리의 고양이가 대장의 역사에 대한 글을 신참에게 읽어주고 있는 코루스에게 빈정대듯 말했다.
“캬아! 니들 내가 신입들 교육할 때 끼어들지 말라고 했지? 자꾸 그러면 대장한테 보고한다!”
코루스가 신경질이 섞인 울음과 함께 호접과 비선을 노려보았다.(호접과 비선은 대장에게 무술을 전수 받은 몇 안 되는 무술 고양이자 대장의 오른팔과 왼팔이다. 호접은 생선가시를 이용한 다양한 암기술, 비선은 수강권을 이용한 강력한 비격술을 구사하기에 호접과 비선은 동내의 똥개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물론 고양이들에게는 히어로이지만...)
“거참 되게 까칠하게 그러네…캬!”
신입들 앞에서 폼 좀 잡으려던 비선이 머쓱해져서 투덜거렸다.
“뭐라고? 정말 대장한테 보고할까?”
“해라! 해…. 읍! 퉷퉷!”
비선이 코루스에게 나불대려고 하자 호접이 앞발로 서둘러 비선의 입을 막았다.
비선이 그런 호접를 노려보는 순간…
'컥'
강한 바람이 비선의 얼굴을 스치며 공터에 커다란 흙먼지를 피워냈다. 위력을 약하게 한 대장의 권풍이었다.
“내 이야기가 어이 없다고?”
코루스가 신참들에게 말해주었던 대로 하얗고 커다란 몸집에 호랑이의 줄무늬를 가진 대장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장을 뵈옵니다.”
신입고양이들과 코루스, 호접, 비선은 최대한 몸을 굽히며 엎드렸다. 그 중에서도 호접과 비선은 오버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엎드려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호접, 비선!”
“예! 대장.”
“신입들 앞에서 쇼는 그만하고 보고부터 해봐.”
“헤헤 알겠습니다요, 대장.”
조금전까지 온 몸을 격하게 바들바들 떨던 호접과 비선은 언제 그랬냐는듯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신입고양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코루스 역시 대장을 어의 없다는 듯이 노려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중얼거렸다. '제발 권위 좀 세우라니까...'
“대장! 이번에는 아무래도 나서야 할 거 같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녀석들은 뭔가 숨기는 것 같았어요."
"맞아요. 그리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거칠었고요.”
“거칠다고?”
“예! 게다가 푸콘은 코빼기도 안 비치더라고요. 이건 도전이잖아요!”
“고작 니들 대접을 하는데 푸콘이 나와야 해? 그리고 그게 왜 도전이냐?”
“대장!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요. 우리가 대장의 이름으로 개들에게 간 거니까 녀석들은 우리를 대장처럼 대해야지요.”
“맞아요. 대장! 이건 외교적 결례예요. 그냥 두면 다른 구역의 개들도 슬슬 기어오를 겁니다!”
대장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비접과 호접을 바라보았다. 그때 지붕 위에서 걸걸한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이놈아! 넌 얘들 말 좀 새겨 들어라! 저 녀석들이 다 충언을 하는 거야! 저 녀석들 말 안 들으면 이 일대가 또 전쟁에 휘말릴지 모른다. 다소 폭군처럼 보여도 네가 강한 존재로써 각인 되어야 해! 그게 네 역할이야!”
목젖을 조이는 것 같은 걸걸한 소리를 내는 고양이는 약손할배였다. 못 고치는 병이 없는 약손할배 역시 영물 중 하나다.
대장이 변검무면의 역용술과 축골공, 팔극권공 그리고 수강권을 습득한 무술형 영물이라면, 약손할배는 화타의 기술을 습득한 의술형 영물인 것이다.
대장은 이미 약손할배가 와 있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놀란 표정없이 무심하게 앞발을 핥았다.
“여! 오랜만이야 약손할배!”
“뭐? 약손할배? 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나잇살을 처먹어고도 버르장머리가 개차반이야! ”
“맘에 안 들면 꼰대가 약으로 고쳐보던가?”
“뭐야!!! 꼰대? 저...저…저…”
대장과 약손할배 사이의 대화가 거칠어지자 코루스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신입을 이끌고 자리를 피했다.
비선과 호접도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그러자 약손할배는 대장과의 신경전을 잠시 멈추고 비선에게 조그만 환을 던졌다.
“이 빌어먹을 놈아 넌 이거나 처먹어라! 그리고 앞으로 비선격인가 뭔가는 절대로쓰지 마! 고양이가 무슨 수강권이야? 저 무식한 백호녀석이나 되니까 수강권을 쓰는 거지… 너 그거 계속 쓰다간 앞다리 병신된다!”
약손할배가 비선에게 금창약을 던졌다. 얼마 전 들개무리와의 전투에서 오른 발을 다친 녀석을 위해 약선할배가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예! 헤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은 무슨! 다음 번에는 환을 안 만들어 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헤헤헤.”
비선은 호접과 함께 넉살 좋게 웃음을 흘리며 앞 건물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자, 할배! 애들이 자리를 비켜줬으니까 이제 용건을 말해봐!”
대장과 단 둘이 남게 되자 약손할배는 대장에게 뭔가를 건냈다. 조그만 종이포일에 싸여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개의 이빨이었다.
“이건….”
“그래! 견왕의 표식이다. 원래는 두 개 모두 내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녀석들이 훔쳐간 거 같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이젠 너한테 맡기려는 거지!”
“그러니까 왜 나한테 맡기냐고? 난 귀찮은 거 질색이야!”
약손할배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직도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냐?”
순간 대장의 눈빛에 엄청난 살기가 어렸다.
“아무리 꼰대라도 한번 더 그 일을 이야기하면 가만 있지 않아!”
성난 대장은 이 말과 함께 오른쪽 앞발로 공터의 한 가운데를 내리쳤다. 축골공과 수강권이 결합된 강력한 묘선파였다. 보통 축골공과 수강은 상충되는 기운이기에 같이 사용하기 어렵지만 무술형 영물인 대장은 그게 가능했다.
“콰콰쾅!”
공터의 한 가운데 커다란 흙먼지와 함께 대장의 발바닥을 닮은 작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순간어둠 속에서 200마리의 고양이 군단이 나타나 공터와 약손할배를 에워싸버렸다. 이 모든 것이 5초만에 이루어지니 약손할배는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설렁설렁한 것 같더니만 보통이 아니었구나… 완전 허허실실이었어. 허허실실.”
약손할배는 고양이 군단을 둘러보며 돌맹이 4개를 앞발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돌맹이들은 정확하게 동서남북 사방위를 점했고 ‘위윙’하는 소리와 함께 묘선파로 만들어진 흙먼지와 작은 구덩이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약손할배의 진법이 발동한 것이다.
“뭐… 뭐야? 폭탄이 터진거야?”
대장의 묘선파의 충격 소리가 워낙 컸기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약손할배의 진법이 발동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게 쾅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약손할배가 대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휴~ 이제야 모두 가버렸군. 저 놈 성질 머리하고는… 야 이 놈아! 사람들이 우리 존재를 알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어짜피 할배가 진법으로 해결할 거였잖아!”
“아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