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말 대잔치] 남은 자취방짐을 모두 빼고 돌아가는 길... - 가장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순간

in #kr8 years ago

일단 출근을 해야했기에 이사를 해뒀지만, 아직 이전 자취방의 짐들은 거의 하나도 빼지 않은 상태였다. 드디어 오늘, 모든 짐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오후 1시에 느즈막히 일어나버려 수원 자취방에 오후 4시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해버렸다. 집에는 저녁을 먹기 위해 나를 기다리는 고모와 아버지가 계셨다. 고모는 내가 오기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취방의 5년 묵은 때를 벗겨주고 계셨다. 나도 급한 마음에 옷가지들을 모두 꺼내고 책에 꽂힌 책들과 대학원 때 보던 자료들, 식기들을,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후 6시가 되도록 짐의 절반정도밖에 싸지 못했다. 책을 많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버릴 책들은 없었다. 꼭 다시 보고 싶은 책들, 그리고 아직 펼쳐보지도 못한 책들.

청소를 하며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여러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편지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방에서 어울릴 때 사용했던 물건들, 선물 받은 것들.

그 중 어떤 것들은 가져가고 어떤 것들은 버려야만 했다. 내 좁디좁은 자취방은 모든 짐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 남들은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들에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한다.

불쌍한척 쓰긴 했지만 일단 짐을 날라야하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짐은 적을수록 좋았다. 이렇게 고르고 골라도 20~30kg짜리 박스 6개가 가득 차고도 혹시몰라 가져간 캐리어와 입사 선물로 여자친구에게 받은 거대한 가방도 가득 찼다.

고모님과 함께 겨우겨우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박스를 들고가 모두 택배로 붙여버렸다. 고모님이 일찍와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절대 오늘 안에 일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편의점 사장님 부부와 그렇게 긴밀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편의점 덕후였던 나는 자주 두 분을 뵐 기회가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실체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가끔씩 물건을 살 때마다 따뜻한 한마디를 건내주고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던 아저씨, 쌀쌀맞은 것 같지만 사실은 따뜻하시고 가끔 농담도 던지시던 아주머니께서 요즘 취직도 힘든데 잘되어 나가 다행이라고 하시는데 약간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익숙한 풍경들이 조금씩 낯설어지는 감각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이렇게 익숙한 것들을 떠내보낼 날들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각자의 자리에서 별 탈 없이 그 자리에서 존재하기를. 서로 가까이 있고 보고있지 않고 낯설어지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며 잘 존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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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mva님 안녕하세요. 개사원 입니다. @julianpark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으시겠지만
이별의 슬픔보단 만남의 즐거움을 위해
화이팅 하세요~^^!

감사합니다 @k3g3m님 ^^ 새로운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야겠어요!!

이사는 너무 힘들어 ...ㅠ

진짜요... 이틀 연속 짐을 날랐더니 온 몸이 쑤시네요 ㅋㅋㅋㅋㅋ

더 좋은 만남을 위한 별리네요.....ㅋ
이별이라고 하기에는 웬지 느낌이 크고....

세상이 아름다운건 이렇게 정든 사람들과의 별리도
가끔 가슴을 짠 하게 맹글기 때문인듯 합니다^^*

별리 ㅋㅋㅋㅋ 신기한 표현이네요 :) 하긴 이별이 없다면 만남도 그리 감흥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야겠어요!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고 ..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들과는 잠시 이별을 고해야 하는것이 사람의 숙명 같습니다 ㅠ-ㅠ

맞습니다... ㅠㅠ 유기체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네요... 최대한 이별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질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새로운 공간에서 이상을 실현하기를 응원합니다.

아... 공감이 많이 가는 가사네요 ㅠㅠ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서른즈음에였나요... 아무튼 공감가는 댓글과 응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

흠~
정이 들어서 그런거겠죠..?
습관이 무섭단 예전 얘기나..
어릴적 우스갯소리로

웃지마~ 정들어~

하던 말들이 생각나네요.. 그만큼 정들었던걸 떼어내기가 어렵고 힘들기에 나온 말이 아닐까요..?
이젠 익숙함과는 다르게 ‘새로움’에 호기심을 갖고 정붙일 때가 온거라 생각됩니다~!!

저도 저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했었는데 이별의 아쉬움 때문이었나 봅니다 :) 말씀처럼 이별한 것은 가슴 속에 담아두고 새로운 것들과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 감사합니다 @sunnyy님!

익숨함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죠. 저도 곧 이사를 해야하지만 정든 곳을 떠나기가 아쉽네요..ㅎㅎ

정말 정든 곳 떠나는게 힘든 것 같아요 ㅠ 새로 적응하는게 두렵기도 하고... 그래도 사람이 적응의 동물인지라 살아가다보면 적응이 되겠죠? ㅎㅎ 저도 @todayis님도 화이팅입니다 ^^

저도 자취방 빼면서 여러감정이 들더라구요..
빔바님도 화이팅입니다!
@홍보해

앗 이런 감성글을 홍보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 언제 정착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사 다닐 때마다 이런 감정이 들지 않을까 싶네요 ㅠ @julianpark님도 새로운 곳에서 좋은 일 많이 경험하시길 바랄게요 ^^

이별에 익숙해지시는 중이군요. 그만큼 추억도 쌓여갈 거에요 ㅎㅎ
저도 이사할 때마다 버려야 할 물건이 많아서 힘들더라구요.
빔바님도 저도, 나중에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안쓰는 물건도 다
쌓아두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결론은 스팀 가즈아~~~!
100달라 가즈아~~!

맞아요 ㅠㅠ 정말 나중엔 넓은 집에서 책도 쌓아두고 추억의 물건들도 진열해 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스팀 100달러가면 가능할 것 같네요 ^^ 가즈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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