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과 중용의 '성실'

in #ko3 years ago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은 김대중 대통령이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민주주의 시민은 그냥 양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연설은 민주주의가 공짜가 아니며, 적극적으로 지켜야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줬다. ​

'깨어있는 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 민주시민은 조직적으로 저항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행동하는 양심'이 행동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깨어있는 시민'은 양심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비슷한 개념임에도 함께 어울려 쓰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중용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곱씹을 수 있는 대목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오직 천하의 성실한 자만이 그 본성을 다할 수 있고, 그 본성을 다할 때 타인의 본성도 다 하게 할 수 있다.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중용 제22장>

성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본성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먼저 본성은 본능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에 가깝다. 그런데 왕이 지배하던 시대의 고전에서 언급하는 인간의 본성이 민주주의 시민의 의무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그닥 자연스럽지 않다. 여기에서 본성은 그 시대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자질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왕권 시대에서는 왕에게 충성하는 모습일 것이고,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국가의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권리를 지키는 모습이다.

성실은 무엇일까. 일단 두 가지 측면에서 성실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정신적인 측면으로 '항상 깨어있음'이다. 내게 주어진 의무가 무엇인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나는 제대로 그 길을 가고 있는지 항상 반성하고, 옳은 길을 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둘째는 육체적인 측면으로 '귀찮아하지 않고 행동함'이다. 귀찮더라도 옳은 길이면 마음 속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문제에 외면하지 말고, 그 해결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불의를 목격하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무언가 행동해야 한다. 혼자의 힘이 부족하면 주위에 알려서 조직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처럼 중용에서의 '성실'은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 '귀찮아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매사에 성실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만든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에 성실해질 때, 사회가 그 시대정신을 정확히 구현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다. 이 점에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은 '깨어있는 시민'으로 '귀찮아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무리없이 연결된다.

수천년전 고전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재의 우리를 깨울 때마다 작지 않은 전율이 느껴지곤 한다. 사실 인간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 고전을 여전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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