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말모이, 마라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

in #kr5 years ago (edited)


말모이, 마라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


“순희에게 조선말 가르치지 마세요. 내년에 학교가야 하는데 조선말 하면 매맞습니다.”

말모이란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다. 순희의 오빠는 조선말을 가르치는 부모에게 동생에게 조선말을 자꾸 가르쳐서 매맞게 하지말라고 한다. 학교에서 맞아 본 오빠가 학교의 상황을 모르는 부모에게 하는 말이다.

사실 일본말을 배워서 일본말 하고 일본 시민으로 살아도 상관없긴 하다. 순희면 어떻고, 가네야마면 어떤가. 이 문제를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데서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시간이 흐르고 희석되면, 어쩌면 의미없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고구려의, 백제의, 신라의 정체성이 있던가?

문제는 짧은 미래에 있다. 처음부터 가네야마였던 가네야마와, 순희였던 가네야마가 같은 같은 상황에서 가네야마로 살 수 있을까? 앞의 가네야마와 뒤의 가네야마를 사회가 똑같이 인정할까. 문제는 그것이다. 세상의 평등은 같은데서 나오는게 아니라 내가 자신의 존재, 영역을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내가 사회의 다양한 존재와 영역들을 인정하는데서 나온다. 그것이 평등이고, 자유며, 인격이다. 내 멋대로 살아도, 내 맘대로 살아도 다른 존재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나의 존재 자체가 타인으로부터 침해와 방해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가네야마였던 사람을 순희로 바꿀필요도 없고, 바꿔서도 안되듯, 그래서

“그가 원래는 순희가 아니라 가네야마였어”

라고 기억하는 사회가 그를 순희가 아닌 가네야마로 치부하게 해서는 안되듯,

순희였던 사람을 억지로 가네야마로 바꿀 필요도 없고, 바꿔서도 안된다. 그래서 “그가 원래는 가네야마가 아니라 순희였어”라고 기억하는 사회가 그를 가네야마가 아닌 순희임을 떠올리며 차별하고, 그가 조선어를 쓰는지, 일본어를 쓰는지를 억지로 선택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런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그 고통을 주입했던 주체는 100년 후인 아직도 존재하며, 심지어 그들의 편에서 그 시간 더 약한 이들에게 나약하고, 노력하지 않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말로 뭉뚱거려서 다수의 사람들을 치부했던 그들이 사회의 주체가 되었고, 100년 후인 지금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출발선이 달랐던 이들은 자신들이 앞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며 너희들이 느려서 뒤에서는 걸 왜 앞의 사람의 옷자락을 붙들어서 같이 달리려 하느냐?라고 반문한다.

“너희들이 노력해서 빨리 달려서 앞으로 와야지 왜 앞의 사람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하느냐”

이 말은 참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무서운 말이다. 논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말이며, 너무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너무 옳아서 쉽게 반문하기 힘든 명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원래 앞에 서 있었지만 그런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부터 공정하게 하자”

바로 이런 말이다. “지금부터 공정하게 하자”는 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래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니들이 더 노력해라”는 말을 참아서는 안된다. ‘제논의 역설’이라고 할까? 마치 자신들은 우리가 사력을 다해 달리면 어느정도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두 세배가 빠르지 않은 이상 우리는 결코 따라갈 수가 없다. 우리가 달려갈 동안 그들이 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가 ‘노오력’이란 말을 비꼬는 이유다. ‘노력’이 필요 없어서도, 나빠서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고 시작은 그렇지 않았지만, ‘자유주의’는 이제 거의 ‘시장’을 의미한다. 시장의 근본적인 구조는 사람의 욕망이란 에너지를 잘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경쟁이 시장의 기본이다. 노무현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경쟁에서 출발선 가까이 서있는 이들과 뒤에서 출발하는 사람. 즉 앞의 상황과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물론 처음엔 출발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자유’를 그렇게 강조한다. 그런데 그 자유가 누구에겐 더 큰 이익을 주고, 누구에겐 노력만큼을 주지 못하니 좋은 자유가 아니다. 즉, 개인의 노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 그것이 억강부약, 너무 강한 것을 조금 억제하고, 약한 걸 조금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정부는 자유를 강조했고, 그 자유는 골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당연하게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심지어 앞선 사람들이 대표선수가 되면 마라톤강국이 되니, 좀 못뛰는 애들을 다 잘 뛰게 하는 것보단 앞선 애들에게 힘을 실어주면 모든 말아톤 선수들이 말아톤 강국의 혜택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라고 할까. 그래서 오히려 앞의 애들에게 힘을 더 실어주는 이상한 구도였다. 그러니까 맨날 다수를 위한 희생을 강조하고, 국민보단 국가를 그렇게 강조한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와서 처음으로 앞에 선 애들을 멈추게 하고 뒤에 처진 다수를 앞으로 보내려 하니 마라톤 경기의 속도가 확 느려진다. 이게 멈춘 것 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그동안 그 격차가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어가 아니라 조선어를 쓰는게 맞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조선어를 쓰는 것으로 결심했으니 내 자식이 학교에 가서 매맞는 걸 각오한 이들이 있으니 오늘날 말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맞아도 되고, 맞아조 좋다고, 그게 괜찮아서도 아니다. 하지만 매가 두려워 조선어를 포기하는 것만은 안된다. 아파도 된다는게 아니다. 조금만 다함께 참고 견뎌보자. 더 공정한 경제구조로 빨리 다가서는 길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진화된 단계인 복지국가로 얼마나 빨리갈 수 있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힘을 합쳐서 이 방식을 관철시키느냐에 달려있다. 방식을 통째 바꾸는데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의외로 좋은 세상에 확 다가갈 수도 있다.

전환의 시기, 누가 뭐라고 해도 70년 전, 50년 전 했어야 하는 업그레이드를 이제 하고 있다. 그 상황에서 나오는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긴 시간의 고통을 잊었단 말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의 어려움을 참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걸 피하려고 다시 긴 시간 차별과 격차때문에 힘든 그 긴시간을 또 견딜 것인가. 기억을 떠올려 보길. 지금 더 힘들어진 것 같이 이야기 하지만우리세대는 아직 괜찮았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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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속도가 느려지는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뒤에서 오는 사람들이 못오게 밀고 있는 것 같아서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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