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인생템 #7 "차표 한 장"

in Korea • 한국 • KR • KO5 years ago (edited)


차표 한 장


80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 치고 우표 몇 장 모아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수집이란 유년 시절의 내가 살아가는 목적 중에 하나였다. 주변에 보면 우표나 화폐는 모으는 사람이 제법 많았지만 10대 때 갖고 놀던 동그란 딱지나 성냥, 밀리터리 프라모델 등 이것 저것 수집하는 사람도 더러 보곤 했다.

나는 우표와 화폐에 꽂혀 있었는데 연말 이었던가 연초였던가 여튼 적당한 시기에 발행되는 한국화폐도록 1988, 한국우표도록 1988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사와서는 간섭쟁이 어른들이 자리를 비우면 내 컬렉션을 모두 꺼내놓고 그것들이 현 시가로 얼마인지 맞춰보는게 사실 거의 유일한 낙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국최초우표", "소형시트 s/s", "전지". "언컷시트", "마운트", "천공" "마진" 등등 나름의 용어들로 가득차 있었고, 좋아하는 어른을 만나면 온통 꺼내놓고 듣고 싶어하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내가 아는 용어들과 컬렉션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들었는데, 지금 그들의 표정을 상기해보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즐거워하기보다는 곤욕스러워했던 것 같다.

8-90년대만 해도 지금 코로나 정국만큼이나 외국여행을 다녀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내가 살던 커뮤니티에서 아는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간다고 하면 거의 빌다시피 요구해서 올 때 외국 동전이나 지폐를 갖다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컬렉션을 불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여행이 드문만큼 한 번 외국을 갔다오면서 선물이 없으면 서로 소원해질 때라 오히려 내 요구는 잘 먹혔다. 외국가서 아는 사람들 선물을 챙긴다는 건 사실 생각보다 매우 피곤하고 고민스러운 일이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은 집안에 굴러다니는 정체 불명의 옛날돈이나 외국동전들을 가끔 내게 주곤했는데 거기에 쓰여있는 나라이름들을 기록하고 알아내는 것 또한 흥미로우면서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꼭 우리가 아는 나라이름으로 쓰여있질 않으니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 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폴란드 동전은 폴스카Polska라고 쓰여져 있고, 스위스 동전은 헬베티카Helvetica라고 쓰여져있다. 대만과 중국동전은 각각 중화민국과 중화인민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그 둘 모두 당연히 중국동전이라고 생각했지 대만 동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졌지만 태국동전이나 러시아동전 같은 건 대체 어느나라 글씨인지 아주 찾지를 못해 많이 고생했다.

지금은 우표와 동전을 거의 접고 지폐만 모으고 있다. 갖고 있던걸 용케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덕에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착실하게 모으고 있는 중인데 그 덕에 온갖 우표상을 다 찾아다니고 여기저기 가입했던 걸 생각하면 추억이 새록새록 돋고는 한다.

그 때 번외로 모으던 것이 공중전화 카드와 고속도로 통행권이었다. 특히 고속도로 통행권은 당시에는 마분지보다 두꺼운 종이에 받을 때 긴 표를 받아서 돈을 낼 때 아마 반을 떼어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해도 제법 카드 크기만큼 되는 예쁜 통행권은 정말 번외 중 최고의 컬렉션이었다. 외국을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시외를 가는 사람들은 많아서 아는 사람들이 시외를 가기만 하면 절로 생겨서 쉽게 모을 수 있었다. 북부산, 서마산, 진주, 곤지암, 광양, 뭐 이런 지명들이었던 것 같은데 곤지암 뭐 이런 지명은 사실 지금도 어디있는 곳인지 말로만 가끔 듣게 되는데 그 때 그 표에서 봤던 희안한 이름의 지명이었다.

차종따라 다른 것인지 가장 많은 것은 연두색이었고, 그다음으로는 파란색, 주황색은 가물가물하지만 한 서너개 밖에 없어서 내겐 대단히 레어템이었다. 또하나의 유니크한 템은 바로 표를 뜯지 않고 길다란 채로 있는 것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끔 그런 표를 얻으면 나는 거의 자지러졌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신나게 모았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그 컬렉션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제 찾을 수가 없다.

그런 소소한 기쁨들이 모여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성인이 되어서도 뭔가 몰두하게 되는 원동력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돌아가고 싶거나 다시 모으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유년시절 왠지 그렇게 기쁘거나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그시절 나는 고속토로 통행권같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표를 모으면서 그렇게 나도 모르게 사는 방법을 알아갔던걸까.

Sort:  
 5 years ago (edited)

저도 우표 참 많이 모았었어요
대통령 시트는 거의 다 모았었는데 ㅎㅎ

예전에 그러 ㄴ 것들을 ... 모았던 생각 때문에 ...

지금 ... 스타벅스 굿즈를 ... 그렇게 모으나 봅니다....

덕후 중 덕후~
살아가는 재미를 잘 아시는듯 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83
BTC 60762.96
ETH 1565.09
USDT 1.00
SBD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