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볼이 뭣이여?"

in #kr7 years ago

대문.jpg


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 모두는 아니었겠지만 교양시간으로 접했던 볼링..
예나 지금이나 뭐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뭐 그렇다고 마스터가 되지도 못하면서)가는 성격은 똑같았던지라

게임당 내는 가격보다 쿠폰이 낫겠다 싶어 냅다 삼십개의 쿠폰을 샀죠.
그날 다 쓰고나서 깨우쳤습니다.
'아~ 이거 제대로 배워야겠다!'
제가 워낙 몸으로 배우는 것도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되는지라..(그런데 문제는 이해하면 몸이 못따릅니다 ㅋ)

책을 보고 두께조절, 스페어별 공략법, 구질에 따른 파지 등등을 머리로 마스터 합니다.
두자릿수 점수가 세자릿수로 바뀌고 연달아 더블과 터키를 치면서 기고만장해졌죠.
그때는 제 인생에 볼링밖에 없었죠.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의 머리가 다 볼링볼로 보였고
손가락 두개 힘을 기른다고 별짓거리 다했네요.

그러다..
볼링장에서 그녀를 만나게 됩니다.

어느 따사로운 오후 내 또래 여자가 제 옆 레인에 들어섰습니다.
(남자분들은 눈감고)
20대 초반의 예쁜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긴생머리를 찰랑이며
혼자 볼링을 치고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볼링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옆 레인에 사람이 올라서면 동시에 서지 않는것, 그리고 옆 사람의 스페어 처리와 스트라잌에 대해 가벼운 인사 정도를 하는 것이 예의지요.

가끔씩 스페어 처리를 하지만 스트라잌이 없던 그녀에 비해 제가 인사를 더 받고있었죠. 우쭐해져서리 ^^

그러다가 아무래도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나 : "볼링 좋아하시나봐요. 혼자서 이렇게 볼링장에 오시니"
그녀 : (눈웃음만)
나 : "폼은 굉장히 좋은데 임팩트만 있으면 좋으실 듯 한데"
그녀 : "네에"
나 : "제가 조금 알려드릴까요?"
(책 세권 본 게 전부이면서)
그녀 : "네 ^^"

그리고 소철의 개인 볼링강의가 시작되었죠.
이런 파지는 뭣에 좋고 이러고 저러고 블라블라.

당시 볼링장에 가면 기본 20게임을 소화하던 저였는데 그녀도 10게임을 소화하더군요.
볼링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정말 놀랐습니다.

내일도 온다는 말을 끝으로 그녀가 제곁을 떠나갔고 갑자기 제 볼링인생이 시작된 꽃느낌으로 집에 돌아왔죠.

물론 다음날 볼링장 문을 열자마자 최고의 레인을 차지하고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점심때 그녀를 보았죠.
아시나요? 문이 열리면서 태양빛을 온전히 받은 그녀의 뒤에서 빛나던 후광..아! 이게 여신의 느낌이구나..이런 생각이 드는 그런 장면.. 눈에서 하트가 막 뿅뿅나가고..

그녀는 정말 그랬습니다.

바쁘지 않음 게임 끝나고 먹거리라도 같이 나누자고(역시 뭔가 나눠먹는것은 중요합니다)
그러자 그녀가 게임하며 정하는게 어떻겠냐고.
'오브코스'를 연신 외치며 제 맘대로 할 수 있음을 알았죠.

그래서..
음료수내기, 게임비물기, 쿠폰30개짜리 사주기, 저녁쏘기, 술쏘기
이렇게 내기의 종류를 정했습니다.

당시 볼링에 미쳐있던 제 에버리지는 170~180점 수준이었습니다.
그녀는 130수준..
핸디도 없이 하자는 그녀의 자존심을 해칠 수 없어 그러자고..정말 비정한 프로의 심정으로 그녀의 진심을 대했습니다. 진검 승부처럼.

볼링을 사랑했던 저는 당시 첫투구용 볼, 스페어처리용 볼, 전용 볼링슈즈, 각종 손목보호대의 아이템을 다 갖고있었죠.

음료수 내기에서 거의 200의 점수를 냈던것 같습니다.(아~ 이런때는 보통만 하면 되는데 ^^)

그녀와의 볼링에 그녀가 사다주는 음료에..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게 하는 말
"손 바꿔도 되죠?"
"네?"
"제가 스위치라서요"

진정 이때까지 그녀가 뭔소릴 하는지 몰랐습니다.
뭐 오른손으로 치던 볼링을 갑자기 왼손으로 치겠다니 뭔 소린지

"그럼요. 얼마든지. 두손으로 해도 되요" ^^

그리고..
그리고..
벌어진 제 입을 다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몸이 얼고 입이 멈춘 순간속 시간들이......

분명 오른손으로 투구할 때만 해도 예쁜 투구폼에 비해 투구시기인 릴리스 포인트가 약간씩 달랐던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볼링 여신이 투구를....

볼링장 양옆 가터를 한국어로는 또랑 또는 골로 부르죠.
이곳으로 공을 보낸다는건 그 게임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볼링은 한번의 투구로 향후 두번의 투구 점수가 더해지기에 투구 실수 한번이 경기결과에 지대한 결과로 다 보여지게 되거든요.

저는 그날 볼링신의 동작을 마냥 쳐다보며 제멋대로 얼어버린 몸뚱아리 덕분에 회전력조절 실패로 볼을 가터로 수차례 보냈습니다. '골볼의 추억'

그녀는 소위 직업볼러 2군 선수였습니다.
게다가 두살 누나에.

멘탈이 나가니 정말 상대가 되질 않았습니다 ㅠㅠ

아~ 인생의 쓴맛을 그날 또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누나를 볼링장에서 매일 보게 되었죠.
그 볼링장에 취직했었거든요.
누나의 선수 친구들이 볼링장에 오는 날이면 항상 도망가야 했습니다.
선출에게 덤빈 겁없는 동생으로 누나들이 자기들이랑도 게임하자고 해서리

그 이후 스포츠로 도박(?)하는 행위따위는 절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공 만랩인 고수에게 깝쭉대다가 볼이 아닌 인생이 골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는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지금도 시장의 흐름에 덤비며 개기는 행위는 절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올라타는 흐름의 시기에 살짝 붙어보려하죠.

골로 갈 수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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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this language sochul? chinese?

No. This language is a great language that makes a sound appearance in language.
The name of the language is 'Hangul'.
And this is my native language dude. ^^

I'll post it again in English
Thanks for your interest.

저 역시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괜시리 아쉽네요 ㅎㅎ @sochul 님께 볼링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군요

겸손함을 명심하겠습니다^^

@floridasnail
특히나 시장에 관한 한 겸손이 생명인 듯 합니다.
저도 다시는 개기지 않으려고요.
출혈이 넘 심하더라구요. ㅠㅠ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은 아니지만
사전전 의미로만 보면 '낭중지추'란 말이 떨어지는 것 같네요. ^^

@clarkgold
그쵸 괜히 송곳인줄도 모르고 ㅠㅠ
은둔고수는 괜히 건드리면 안 되요 그쵸?

ㅎㅎㅎ 유쾌하게 웃으며 봤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녀가 삥뜯는 타짜는 아니셨군요?! ^^ 즐거운 하루보내십시오~

@valueup님도 손바꿀때 그 악마의 표정을 봤어야 합니다.
완전 유치원생과 교수님의 지식대결 수준이었죠.

그래도 개평도 줬던걸로 기억합니다. ㅜㅜ

내기는 상대를 잘 알때 해야...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nomujjass
그래서 이제 내기 안 해요~~
그런데 코인판에서 덤비다가 또 이렇게 작살이 나네요 에공

또 하나의 취미를 알게 되었네요. 전 @sochul님 취미가 언제 떨어질지가 관심사 입니다 ㅎㅎㅎ

@iieeiieeii님 아녜요.
이제 볼링장비는 모두 벽장에 잠재웠습니다.

아! 몇 년전에 딱 한번 꺼냈었네요.부서별 대항전때.
제가 볼까지 가진 볼러였다는 사실을 알고있던 팀원의
추천으로 선출되서리
그날은 스타됐었죠. ㅋ~

실상 일주일 전부터 몸풀었었지만
이제 과거의 영광이지요. ^^

역시.. 예쁜 꽃에는 가시가.. ㅎㅎㅎㅎ

아니 능력이 있는 건가요? ^^

가시가 거의 송곳수준이었죠 ㅋ
잘못 걸렸던거죠.
아닌가? 제발로 들어간거죠 ㅎㅎ

저도 대학생 때 나름 볼링을 좋아해서 자주 치러 갔었는데 전 이상하게 내기만 하면 지더라고요...(아... 물론 실력이 안 좋기도 했지만요 ㅎㅎㅎ) 그래서 전 볼링장에서 웬만하면 내기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ㅠㅠ

오~ @superremnant님도
얼마전에 유지태가 주연했었던 퍼팩트였던가 볼링영화 보았던 게 기억나네요.
내용이 도박내기볼링였죠?
내기는 타짜들의 세상이지 저같은 일반인의 세계가 아니란 사실을 일찍 알게 되어서리 다행이죠. ^^

아이고~~ 상상해보니 민망해지네요 ㅎ

대략 민망이 아니고 완전 민망요 ㅜㅜ
골로가는 볼을 보고나서 완전 절망의 순간들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한건 고사하고
완전 쪽팔림 ㅜㅜ

아~ 정말 왜 덤볐나 싶고
'나는 누구인가' 머 이런 생각만 ^^

지금은 추억이고
그때는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이었죠.

그래도 대단하신건 그 볼링장에 취직을... 저라면 아마 그날 이후로 그 볼링장 떠났을 겁니다 ㅎ

누나랑 누나 친구들이 예뻐서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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