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과 맞짱떠봤어?

in #baeggoldan8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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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게도 최루탄 냄새 자욱했던 청자켓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기좋아했던 그때
을지로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부근에서 데모대의 행렬과 같이 하는것은 뭣모르던 10대였던 내겐 그저 하나의 페스티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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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를 외치며 다니다 '펑! 펑!' 소리와 함께 사과탄이 터지면 어디선가 내것과 같은 청자켓을 입고 방독면에 하이바를 쓴 백골들이 쏟아져나와 사람들을 두들겨패던..

그날도 데모대를 따라 뭣모르고 따라다녔던 을지로
여지없이 터지는 최루탄의 맹혹한 내음을 피해 줄행랑을 놓다 눈에들어온 계단을 올라 피신했다.
하지만 내 친구는 앞선 20대 형들을 따라 지하도로 갔다.

피신한 곳은 지하도 입구가 내려다보이는 2층 레스토랑
창문에서 백골들이 사과탄을 까서 지하도 안으로 던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새하얀 연기 자욱하던 그곳에서 나는 친구가 끌려나오는 것을 보았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아니면 10대의 치기였었는지 나는 쏜살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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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 송승헌은 아니었고 ㅎㅎ

당시 내 머리는 누가봐도 5mm 수준의 빡빡이었기에 나는 내 친구를 잡은 백골에게
"얘는 내 친구에요 중학생이라고요!"
라고 소리쳤다.

방독면 창으로 백골의 눈만 확인할 수 있었던 그때
3초가 3분같은 얼음인 상황이었던 그때
백골은
"새꺄 딴데가서 놀아!"
라는 말과 함께 내 친구를 밀쳐버리고 뛰어갔다.

친구녀석은 필요 이상으로 노안이었다
수염도 밀지않아 거뭇거뭇하던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 녀석은 내게 고마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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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골이 작정하고 덤볐다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지..
그래도 중학교 시절에는 쌈 좀 했었는데

아마..
신나게 뚜드려 맞았을지도 ㅎㅎ

친구 머리를 꿰매고
데모대와 같이하던 우리의 놀이는 그것으로 끝이났다.

나에게 놀이였던 그때를
머리큰 대학생이 되어서야
왜 20대 형님들과 누나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그곳에 섰던 것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박종철과 이한열을 열사로 부르는 이유는
지금의 우리가 당연스레 누리는
자유를 위해 젊음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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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패스티벌로 생각했던
생각없던 중학생시절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영화 1987

우리의 역사이기에 꼭 한 번 관람을 권한다.

덧붙임


나는.. 운동권도 아니었고
데모대의 사수대, 주동자, 배후세력등 암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20대의 패기와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꼭 같이 느꼈음 좋겠다는 생각에
어줍잖은 나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관람을 권한다.

지금의 암호화폐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기성세대들에게 탄원함도 비슷하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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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up XD

백골부대는 내가 제대한 부대고.
1987년은 대학 졸업반이었지.
까불구 있어
중삐리가!!!

ㅋㅋ 골파님
그때 저와 같이 뛰어다니셨을지도 ^^

그래도 그 시절
백골이 멋지게 보이기보다 손수건 입에 쓰고 치약 눈밑에 묻히고 구호외치던 형과 누나들이 훨씬 멋지게 보였답니다.

학교에서 백골이 멋지게 보인다고 떠들던 녀석을 밟아주었던 기억도 있네요~
중삐리였기에 ㅋ

경례할때 '백골'하면서 외치는 최전방 부대지요.
그 부대 출신들은 뭔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거 같았습니다.
힘든 병영생활 때문이겠지요.
'백골단'과 '백골부대'는 다르지요.
철책을 지키는 그 용맹한 군대는 '백골부대'
후방에서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그 깡패들은 '백골단'
이렇게 정리가 되겠네요^^

그게 뭐시랄까...
자부심이라기 보다는
그냥 103보 보충대에서 뽑혀서(?) 끌려간데가 하필 3사단 수색대.....
기녕 우리때는 "백골" 이라 안하고 "팍콜" 이라고 외친생각이 나네유.
진짜루 힘들기는 ㅈㄴ 힘들었시유.
근디 대한민국 군발이 어딜가나 다 힘들지유.
똑같여라. 어딜가나.....

그게 아마 군기가 세게 들어가다보면 발음이 그렇게 날거 같습니다.
고생 하셨네요.

아그게 쫌메 지나면 다 그렇게 되드라구유.
고생은 뭐.... 누구나 다 하는건데유.
neojew님두 비슷하실거 같네유.....

저는.. 306 보충대였었는데 ㅎ
제 앞 라인까지 전경으로 끌려갔던 기억도 납니다.
다행스럽게 저는 걍 땅개로 ㅎㅎ

백골부대 경례는 익히 알고있습니다.
친구들이 백골, 이기자 출신들이 많아서

그나저나 군발이는 얘나 지금이나
예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백마부대원으로 베트남전 가셨을때 얘기도 생각나는게

ㅋ 역시 군대얘긴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나봅니다

분명 국가의 녹을 먹고있음에도
너무나 상반된 이미지

하긴.. 루시퍼도 천사였었죠.
결국 악마가 되었지만 말이죠.

악마의 길은 달콤하고
천사의 길은 지루하고 힘들고

소철님같은 깨어있고 용기있는 시민들이 있었기에
성공한 저항이었습니다.

아드님두 기신디 양아치가치 밟아줬다라는 표현은.....
그거보다는....
생각이 안나유...
두꺼비 한잔 해써유....^^

자라나는 새싹만 밟지않음 되죠
요즘 그랬다간 빵에가서리 ^^

예전에는 친구끼리 싸우다 박터져도
지금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

그나저나 골프다님 미쿡에 계신거 아니셨나요?
두꺼비 구하시기 힘드실텐데 ^^

80년대 초반 '삼청교육대' 출신 깡패들이 동원되었고
중반으로 가면서 기동대로 대체되었을 겁니다.
시위도 처음엔 투석전에서 85년 경부터 화염병이 등장했지요.
학과룸에는 언제나 음료수병이 몇박스씩 쌓여있었고
참 심란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분노와 슬픔이 대학가 전체를 휩쓸고 다녔지요.
부탄까스통에 불을 붙여서 던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새총에 다마를 한주머니 가지고 다니면서 시위를 촬영하는
경찰을 겨냥해서 쐈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쳘시된 셔터에 충돌한 알다마소리에 놀라
주위를 돌아보며 도망치던 그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80년대 초반의 학생들은 온건하고 순진했습니다.
공권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요.
결국 87년의 비교적 평온했던 시위로 끝이 났지만,
권력층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으면 결과는 참혹했을 겁니다.
어쩌면 그랬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요.
머리에 허옇게 취루탄 가루를 뒤집어쓰면
매운것은 둘째치고 숨을 쉴수가 없어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소철님이 보신 그 사과탄의 일부는 아직도 제 몸에 달고 다닙니다.
이한열의 죽음뒤에는
수도없이 많은 부상자들이 감춰져 있지요^^
소철님의 에피소드가 담긴 영화소개 감사합니다.
어쪄면 길에서 마주쳤을지도 몰랐겠네요^^

기억합니다 네오쥬님
머리에 하얀 최루가스가 살포시 내려앉으면 제 몸 구석구석 모든 구멍에서 무언가 쏟아져나오는 듯한 그 느낌을..

치약을 눈에다 동그랗게 바르고 랩을 오려 눈에다 붙이고 다니기도 했지요.
그때 물티슈가 나왔더라면 정말 동이나게 팔렸을텐데 말이죠. 달랑 치약하나 필수품이라 생각하고 가지고 다녔더랬죠.

뭣모르고 대학생 형과 누나들을 따라다녔던 그때
기억이 선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꺽꺽 울어대던 50대 남자분을 보았습니다.
감히 그 마음에 담긴 것이 무엇이었을런지 상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린 마음 그때로 돌아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있을것 같았습니다.

그나저나.. 백골은 무서웠는데 말이죠 ^^
한참 치기에 놀던때라 제가 무서운게 없었나봅니다.
아마도 어렸기에 그랬겠죠.
.
.
.
참! 그러잖아도..
글쓰며 네오쥬님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
찾아와주심에 감사드리며
그때 그 시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셨음에 고맙습니다!

백골단은 민주화를 위한 시위뿐만 아니라, 제가 사는 지역에선 노동자들의 데모 현장에도 투입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직접 대면한 기억은 없는데 어린 시절 동네에서 놀고
있으면 어디에 또 백골단이 왔다더라. 하는 얘긴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얘기가 들리면 얼마 안가 최루탄의 매케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우리 동네까지 날아들곤했죠.
이렇게 대놓고 폭력으로 진압하는 부대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하나의 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까지 폭력진압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일이 드러나면 최소한 부끄럽게 여기긴 하니까요.
덕분에 옛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ㅎ

백골단이 백골부대 출신이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도 있었더랬죠.
지금은 경찰기동대가 되었지만..

당시 그들도 권력의 가장 아래에서 명령을 받던 이들이었겠지만
전경으로 군복무를 마쳤던 친구들이 자신들이 하는 짓에 대해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었노라고 하듯이 그들도 그러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미친 권력에 의해 가해자나 피해자나 양쪽 모두가 희생자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ky님 보내주신 글처럼
시위의 현장에서 자신의 가족에 맞서고 있을지 모를 젊은 전경의 심정은 어떨까 싶네요.

갑자기 ky님의 댓글을 읽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덕분에 ㅎㅎ

읽는내내 소름이었네요.. 전 영화보고 마음이많아아팠고 무서웠고 그랬는데 그때 역사의현장에 존재했다니..신기하기도하고 더무섭기도하고그렇네요.. 멀쩡했으니다행입니다ㅜ 풀보팅드리고 갑니다

살아있기에 힐리스님께 풀보팅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이만큼 누릴수 있는거겠죠 ^^

저도 주말에 관람 예정입니다. 그당시 저는 완전 갖난애기였어요ㅎ 단성사 오랜만에 들어보네요.즐거운 하루 되세요^^

꼭 보시고 관련자료도 한번쯤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형님 누님들의 이야기거든요.

참 팔로우했습니다 담번에도 처음인 것 처럼 인사하지 않으려고 ㅎ

넵. 저도 팔로우했습니다. 영화 빨리보고 싶네요.

아니 이와중에 나는 '친구는 필요 이상으로 노안이었다'때문에 홀로 빵터짐요..가라앉히고 1987보러 가야겠어요..저는 감이안오긴하거든요 영화보고 좀 느끼고오께요

해피포님..
저는 놀기위해 함께했던 현장이었지만
영화 말미의 그 느낌
어린 나이에 뭣 모르는 상황에서 느꼈던 그날의 감정..
영화보며 눈시울 붉어지더라구요 ㅡㅡ

안그래두 1987 보고와서 후기 남길까 했는데 ^^a 1987은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꼭 봐야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
영화도 잘 만들은것 같구요'ㅁ';;

로미님도 보려고 준비중이셨군요 ^^
네 좋은 관람되시기를요.

그 시절 우리보다 먼저 세상에 태어나 싸웠던 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누릴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
꼭 담아오셨음 좋겠습니다.

저는 어렸을적 집이 신림동이어서 S대 학생들 덕분에 최루탄을 수시로 마시고 컸지요. ㅎㅎ
그래서 군대가서 가스실 훈련(?)때도 내성이 있을거라 자신하고 들어갔다가 구멍이란 구멍에선 다 질질 싸고 나왔던 기억이... ㅎㅎ

ㅎㅎ 기억합니다 신림동 부근도.
어린시절 을지로 부근이 집이었던지라
회현에 살던 친구들과 항상 명동, 시청, 을지로를 돌아다녔더랬죠.
생긴것과 다르게 나름 중학교 시절에는 잘 나갔었거든요 ㅋㅋ

그 시절 암것도 모르면서 따라다니던 그 어린시절 그 느낌에 감동이었습니다.
이땅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아들과 함께 한번 더 보려고요.

소철님 나이가 어느정도 계산되는군요...근데 페스티벌 같았다니요 ㅎㅎㅎ
요즘같으면 상상도못할 일들인데 ㅎㅎㅎ
근데 백골이 백골부대는 아니죠???

백골부대는 육군
백골은 하얀 하이바를 썼기에 백골로 불렸죠
지금의 경찰기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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