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저
기분부전장애를 지닌 저자의 정신과 치료 기록입니다. 특이한 것은 치료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아니라 환자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점입니다. 많이 축약된 것 같긴 한데 기본적으로 축어록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자와 정신과 의사의 치료적 대화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책 말미에는 정신과 의사의 소감(?)도 한 꼭지 담겨 있네요. 자신의 치료 내용이 그대로 책으로 출판된다는 데 대한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치료적 대화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허락을 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치료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초보이든 베테랑이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치료가 잘 진행되려면 치료자도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진실되게 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저자만큼이나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다만 저는 치료자 관점에서 이 책을 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재미가 상당 부분 반감된 면도 없지 않습니다. 상담이라기보다 심리교육(psychoeducation)에 가까운 치료적 대화 내용이 담겨 있는데, '당신이 이런 것은 이러이러하기 때문이다'라고 직접적으로 해석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네요.
상담에서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해석을 전하는 타이밍과 어조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 두 가지가 적절하지 않으면 그게 맞는 해석이라 하더라도 내담자가 자기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이 책에서도 저자가 치료자의 얘기를 듣고도 까먹거나 치료자가 열심히 설명하는데 다른 주제로 주제를 전환시켜버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내담자가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줘도 안 들린다는 것이죠.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이분법적 사고 등에 대해 반복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치료적인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나 사고를 이분법적 틀에 가두지 않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쓰고 변화의 노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치료자가 내담자 문제를 보편화하거나(즉 누구나 경험할 수 있을 만한 문제로서 '정상화'하거나) 너무 자기 문제를 파고들며 주지화하는 내담자에게 때로는 남탓도 하라면서 시야를 넓혀주는 부분도 치료적으로 저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내담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보기보다 치료자의 관점에서 보다 보니, 초보 상담자 주제에 자꾸 '아.. 여기서 이렇게 말하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나..', '이 부분은 좋네. 나라면 이렇게 말하지 못 했을 텐데..' 라며 마음속으로 주석을 달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우울증을 지닌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책입니다. 어떤 장애든 그렇지만, 우울증이 나타나는 양상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적 사고라고 할 만한 보편적인 사고 내용을 공유합니다. 저자의 용기 덕분에 그런 보편적인 사고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우울증을 지닌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우울증을 지녔든 안 지녔든 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사고의 왜곡을 직시하는 책이기도 한바, 우울증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이 책을 읽는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접적인 교육을 필요로 할 때도 있더군요. 전 너무 안 하려 해서 수퍼비전 후에는 좀 설명도 해 줘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상황이
중요하죠. 이래서 다른 사람의 치료를 평가하기도 쉽진 않습니다.
맞아요. 치료 정황을 백프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텍스트만으로 판단하긴 어렵죠. 그럼에도 수퍼비전 받으러 가면 텍스트만으로도 제가 내담자 본 것보다 더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서 많은 경험이 역시나 중요하구나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해요. 아무튼 이렇게 축어록 형식의 텍스트들이 상담 장면에서도 많이 출판이 돼야 초보나 후학들이 도움이 될 텐데, 그런 게 너무 부족한 게 아쉽다는 생각을 이 책 보면서도 하게 됐어요.
학지사에서 나온 ‘만남과 성장’이던가 그 책 말고 사례집 보기 어렵네요. 혹시 좋은 거 있음 포스팅할께요. 괜찮은 책 포스팅 해도 좋겠네요.
예 상담 쪽 좋은 책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상담 및 심리치료 대인과정 접근 많이들 읽는 책이라고 해서 읽어볼 생각이에요. 저도 읽어보고 포스팅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책 선물을 하기 위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마주쳤던 책인데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긴 케이스 같은 책이려나요?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길진 않아요. 원래 텀블벅 프로젝트로 탄생한 책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요.
읽지 않은 책이지만 관련하여, 진료실에 녹음기 들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라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트윗을 보기도 했습니다. slowdive14님 말씀대로 치료자의 용기가 이 책의 탄생에 상당 부분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예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베테랑의 상담 시연 기회 같은 것도 더 많이 생기면 좋을 것 같고요.
요즘은 '나도 정신과에 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ㅠㅠ
가족 지키느라 힘드시죠 ㅠ
책 제목을 보고 일상에 관한 짧은 에세이가 아닐까 하고 지나쳤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네 이런 책은 국내에서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태풍이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