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6] 조현병 : 조현병을 지닌 사람의 긍정적 정서 경험 part 1

in #kr-psychology6 years ago (edited)

무쾌감으로 주로 번역되고 있는 anhedonia는 조현병을 지닌 사람이 즐거운 경험을 하더라도 긍정적 정서를 잘 느끼지 못 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쾌감은 조현병의 음성 증상에 포함되며, DSM-IV에서 부수적 특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현병 환자가 정말 긍정적 정서를 잘 느끼지 못 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즉각적으로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것에서는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과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보다 미래의 긍정적 사건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 한다는 것이 서로 다른 연구자의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한 비교적 최신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 어떤 경험으로 인해 즉각적으로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것을 완료쾌감이라고 부르고, 미래의 긍정적 사건을 기대하고 원하게 되는 데서 야기되는 긍정적 정서를 예기쾌감이라고 부르겠습니다.1 둘 간의 차이를 쉽게 비교하자면 liking와 wanting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것을 먹을 때의 즐거움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기대할 때 느끼는 즐거움은 다르다고 보는 것이죠.

캐나다 출신의 Silva와 동료 연구자들(2017)은 조현병을 지닌 사람이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과 완료쾌감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예기쾌감에서는 차이를 보일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연구를 했습니다.2 즉 조현병을 지닌 사람이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낮은 예기쾌감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가설1). 그에 더해 예기쾌감에서의 손상이 조현병 환자 중에서도 무욕증이 더 심한 환자 집단과 관련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가설2). 참고로 무욕증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현저하게 줄어든 상태로, 조현병의 DSM 진단기준에서 감정 표현에서의 감소와 함께 음성 증상 중 하나로 명시돼 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은 조현병이나 조현정동장애를 지닌 외래 환자가 84명,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 81명이었습니다. 환자 집단은 Apathy Evaluation Scale(AES)로 측정한 무욕증의 수준에 따라 고/중/저로 나뉘어서 분석이 진행됐습니다.

완료쾌감과 예기쾌감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 도구는 Temporal Experience of Pleasure Scale(TEPS)입니다.3 18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자기보고식 질문지입니다. 이 질문지에는 완료쾌감과 관련된 문항이 있고 예기쾌감과 관련된 문항이 있는데, 완료쾌감 문항은 이를 테면, “따뜻한 침대에 누워서 듣는 창밖의 빗소리를 사랑한다”, “야외 산책을 할 때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것을 즐긴다”입니다. 주로 신체적인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기쾌감 문항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 새 영화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될 때, 난 빨리 그 영화를 보고 싶어진다”처럼 미래 경험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완료쾌감과 예기쾌감 모두에서 외래 환자 집단과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일반인 집단 간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래 환자 집단을 무욕증 수준에 따라 고/중/저로 나누어 이차적으로 분석하였을 때, 고수준의 무욕증 환자 집단은 일반인 집단과 저수준의 무욕증 환자 및 중간 수준의 무욕증 환자 집단보다 각기 유의미하게 낮은 수준의 완료쾌감과 예기쾌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완료쾌감과 예기쾌감 각각에서 중간 수준의 무욕증 집단, 저수준의 무욕증 집단, 일반인 집단 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Adapted from Da Silva et al. Psychiatry Res 2017;254:112-117.

또한 연구에 참여한 전체 인원의 데이터를 놓고 볼 때 무욕증의 수준은 완료쾌감과 예기쾌감의 수준을 예측했습니다. 무욕증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낮은 수준의 완료쾌감과 예기쾌감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Adapted from Da Silva et al. Psychiatry Res 2017;254:112-117.

가설1에서 조현병의 유무에 따라 완료쾌감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지지됐습니다. 다만 조현병의 유무에 따라 예기쾌감의 차이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연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설명이 필요한데, 저자들은 다른 두 연구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례적인 결과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차이가 났던 연구의 환자 구성을 살펴보면 차이가 나지 않았던 연구에 비해 정형 항정신병 약물을 사용하는 환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자들은 정형 항정신병 약물이 뇌의 보상 체계에 기능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정형 항정신병 약물의 사용이 예기쾌감을 경험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조현병을 지닌 사람에게서 예기쾌감의 손상이 나타나는지 여부는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 같습니다.

가설과 달리, 병의 유무에 따른 예기쾌감에서의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조현병의 유무와 관계없이 무욕증의 수준은 완료쾌감과 예기쾌감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죠. 이는 가설2를 지지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욕증 고수준 집단에서 완료쾌감과 예기쾌감의 수준이 다른 집단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았다는 것에 대해 저자들은 높은 수준의 무욕증으로 인해 즐거움 추구 행동이 감소되는 것이 무쾌감의 한 측면일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무욕증과 무쾌감이 연관되고, 무쾌감을 무욕증이라고 하는 동기 결핍의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인 것 같은데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잘 안 됩니다. 더욱이 무욕증 고집단에서 다른 집단에 비해 예기쾌감뿐만 아니라 완료쾌감이 현저하게 낮았던 것에 대한 설명도 안 돼 있는 듯합니다. 무욕증이 현저한 조현병 환자는 그렇지 않은 조현병 환자보다 예기쾌감뿐만 아니라 완료쾌감을 경험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요? 질문에 대한 답이 또 다른 질문을 낳았네요.

이 연구를 세 줄로 요약하고 글을 끝맺고자 합니다.

  • 조현병을 지닌 사람도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처럼 즉각적인 즐거움, 즉 완료쾌감을 경험합니다.
  • 조현병을 지닌 사람은 예기쾌감을 경험하는 능력이 손상돼 있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 연구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신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과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조현병 유무와 관계없이 무욕증이 심할수록 더 낮은 완료쾌감과 예기쾌감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의 예기쾌감에서 이상이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가 많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기억과 관련하여 말이죠.

우리가 앞으로 벌어질 즐거운 사건에 대한 기대를 할 때는 그와 유사한 과거 경험에 기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생크림케잌을 먹을 생각에 즐거운 아동을 떠올려 봅시다. 이 아동의 머릿속 어딘가엔 생크림케잌을 먹고 즐거웠던 자서전적 기억이 저장돼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서야 앞으로 먹게 될 생크림케잌이 즐거움을 주기 어렵습니다. 조현병을 지닌 사람은 즐거웠던 기억을 상세하고 명료하게 떠올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예기쾌감에서도 손상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4 다음 글에서 소개할 내용입니다.

  1. Klein, D. (1984). Depression and anhedonia. In D. C. Clark & J. Fawcett (Eds.), Anhedonia and affect deficit states(pp. 1–14). New York: PMA Publishing.
  2. Da Silva, S., Saperia, S., Siddiqui, I., Fervaha, G., Agid, O., Daskalakis, Z. J., ... & Foussias, G. (2017). Investigating consummatory and anticipatory pleasure across motivation deficits in schizophrenia and healthy controls. Psychiatry research, 254, 112-117.
  3. Gard, D. E., Gard, M. G., Kring, A. M., & John, O. P. (2006). Anticipatory and consummatory components of the experience of pleasure: a scale development study.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40(6), 1086-1102.
  4. Painter, J. M., & Kring, A. M. (2016). Toward an understanding of anticipatory pleasure deficits in schizophrenia: Memory, prospection, and emotion experience.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125(3), 442.

*이 글은 교차 게시물(cross-posted material)로 http://slowdive14.tistory.com/1298729 에 동시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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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애서는 추후 연구과제를 던져주셨군요. ㅎㅎ 어쨌든 조현병 환자라 해도 긍정적 정서경험을 하는데 차이는 없겠네요.

네 맞아요. 지식 소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추후 연구를 해야 할 텐데.. 논문만 생각하면 가슴이 턱턱 막히네요 하하

어떻게 보면 meta-analysis가 필요한 지점일 수도 있겠군요. 물론 그만큼 대상 풀이 많아야하겠습니다만...

예기쾌감에서의 이상은 거의 정설로 굳어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메타분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찾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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