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사고

in #kr-psychology7 years ago (edited)

doughnut 206.png

대문 이미지 by @gamiee

어떤 사물이나 대상 혹은 상황 간의 유사성을 짚어낼 수 있는 능력이 추상적 사고입니다. 학자들이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부르는 능력과 이 추상적 사고 능력이 받쳐줘야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업기억은 쉽게 말해 컴퓨터 램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다양한 정보를 동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려면 램 용량이 커야 하겠죠. 램이 크면 보다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작업기억이 램과 유사한 기능을 하다 보니 학업 성취뿐만 아니라 감정조절, 상황 판단 등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추상적 사고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추상적인 사고는 단순히 유사성을 짚어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과학적 탐구의 근간이 되는 게 이 추상적 사고입니다. 영수는 죽었다. 갑돌이도 죽었다. 길동이도 죽더라,라는 개별 현상의 반복적 관찰에서 '사람은 죽는다'라는 가설을 도출할 수 있겠죠. 제가 이해하기로 추상적 사고는 일종의 귀납적 사고이며, 귀납적 사고를 통해 가설 형태의 일반적 개념이나 원리가 도출됩니다.

추상적 사고는 추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개별적인 현상을 아우르는 고차적인 개념이나 원리를 도출함으로써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일 전에도, 2일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모두 아침 7시경에 해가 떴다면 내일도 아침 7시경에 해가 뜰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데이비드 흄 같은 철학자는 내일 해가 뜬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내일도 아침 7시에 해가 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과거의 개별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내일을 예측하게 된다는 것이죠. 떡락 뒤에는 상승장이 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만 계속 떡락이 지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왠지 흄의 견해가 타당해 보이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쿨럭).

추상적 사고 능력은 과학적 사고를 하는 데 필수불가결하고, 자연스럽게도 일상에서 적절한 상황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보통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이라는 것이 일차원적인 경우가 거의 없게 마련이고, 다차원적인 현상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황의 단면들을 포괄적으로 종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자가 개별 현상들의 공통점을 뽑아내듯이 복잡한 현상의 면면들의 공통점을 뽑아낼 수 있어야 보다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볼일이 있어서 구청에 갔는데 구청 공무원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영 달갑지 않게 느껴집니다. 퉁명스럽고 건성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대기자들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내 뒤로도 많은 대기자들이 있는 것을 떠올립니다. 공무원 책상 칸막이에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고, 다크서클이 얼굴을 뒤덮고 있습니다. 날도 더운데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탁상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지만 시원찮아 보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공무원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겠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정황 정보를 토대로 '공무원이 현재 번아웃 직전이다'라는 가설, 즉 상위 개념을 도출해낸 것이죠. 이런 가설은 공무원의 반응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도우면서 화를 가라앉히고 얼른 내가 처리해야 할 것을 처리하고 나오자는 데로 생각을 이동시킵니다. 추상적 사고를 통해 분노를 촉발시켰던 사고 틀에서 감정조절 및 문제해결에 보다 적합한 사고 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가상의 예지만 추상적 사고 능력이 일상생활에서의 판단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드리고자 써봤습니다.

교과서적으로는, 주로 피아제라는 스위스 발달심리학자의 이론에 근거하면, 초기 청소년기(만11세~15세)부터 이런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기 시작하는 때와 비슷하죠? 사춘기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엄마 말에 따박따박 반대하는 것인데, 이건 당하는 엄마 입장에선 불쾌한 일이지만 인지적 발달의 측면에서 보면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엄마 말에 반대한다는 것은 엄마가 세운 가설에 도전하는 것이지요. '너는 왜 이렇게 동생을 괴롭히니'라는 가설을 엄마가 제시하면 아이는 '내가 언제 괴롭혔어. 며칠 전에도 엄마 시장 보러 갔을 때 얘랑 놀아줬는데'라며 가설에 배치되는 근거 자료를 제시할 것입니다. 추상적 사고는 다른 사람의 가설에 반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내세우는 가설(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까려면 가설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여러 개 제시하면 되는 것이죠.

이런 사례를 통해, 개인의 판단뿐만 아니라 건전한 토론을 통해 사회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도 추상적 사고 능력이 중요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추상적 사고가 너무 과하면 어떻게 될까요? 추상적 사고가 과하다는 것은 추상적 사고를 통해 도출된 개념이나 원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이는 것까지 근거로서 포함됐다는 말입니다. 심리학 용어로 과도하게 포괄적인 사고(Over-inclusive Thinking)라고 하는데요. 근거로 사용하기 어려운 정보까지 근거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비논리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과학자와도 같죠. 다른 사람 눈에는 몽상가로 보이기 쉽습니다.

과도하게 포괄적인 사고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는 정신장애가 바로 조현병입니다. 이 역시 기회가 되면 다루도록 하죠. 이웃 스티미언님들 불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Sort: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오치님 덕분에 즐겁게 스티밋 생활 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본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머리에 정리가 되니 좋네요~
저희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서 삐딱하게 나오더라도 너무 뭐라하면 안되겠군요.

아드님이 사춘기를 겪고 있군요. 추상적 사고가 발달 중임을 염두에 둬도 아이가 너무 반항하면 부모로서 힘들 것 같아요.

뀨형. 여기 계셨군요.
ㅋㅋㅋ 잘 지내시죠??
저 어제 술 많이 먹었는데...음악이 필요합니다.

어디엔가 잘 숨어계시다가도 불쑥불쑥 잘 나타나시는군요 ㅋㅋ

찿아 다닌거에요 ㅋㅋㅋ
댓글 끼어들기 들어갈만한 포스팅만 들어 갑니다.^^

과도하게 포괄적인 사고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는 정신장애가 바로 조현병입니다.

예를 들면

옆집 사람이 저녁 8시마다 내 방쪽 창문을 내다본다->한달째 그러고 있다->그러고보니 아침 7시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이웃이 나를 따라 같이 출근한다->저 둘은 아는 사이일까?->둘은 나를 감시하는 정부요원?

............이렇게 되는 건가요 ㅋㅋ

네 지금 말하신 내용이 관계사고(idea of reference)라고 부르는 것이고 관계사고나 피해망상은 과포괄적 사고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죠. 어디서 배우고 오신 것 같아요. 이해를 금방하시네요.

우와 맞췄다 ㅎㅎ 그냥 평소에 이것저것 읽는 걸 좋아합니다 ㅎㅎ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딸아이에 심리가 그런 상황이군요. 환영해야 겠네요
오늘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네요
좋은 사실 배웠습니다.

아드님과의 대화 포스팅에서 저도 배우는 바가 있네요. 존경하는 사람이 아빠라는 건 평소에 아드님이나 아내분께 잘하셨다는 증거겠죠~

제가 잘한것 보다 와이프가 아주 잘
합니다. 와이프 도움으로 아빠를
이해하는 그리고 대화할 마음을
가지는 아들이 된거죠.
와이프에 항상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딸아이가 요즘 항상 노노
가끔은 고십스럽게 노를 얘기해서
좀 불편했는데 .. 이젠 이해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와이프에게 감사하지 않고 뭐든 당연하게 여기는 남편도 사실 많으니까요. 가볍게 써내려간 글인데 따님을 이해하는 데 다소간 도움이 됐다니 저도 기분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저도 딸이 있는데(갓 돌 지난 아가지만) 멀지 않아 제게 노노를 연발하는 그런 날이 오겠죠.. 마음의 준비를 단디 해둬야겠습니다.

포스팅을 보면 충분히 이해하시고 기뻐 하실것 같은데요,.
전 이 포스팅으로 우리 딸이 새롭게 보입니다.
이녀석이 이젠 많이 컷구나 ..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드립니다.

아 심리학에 관심이 많습니다.글이 굉장히 재미있네요

저도 추상적 사고에 좀 많이 기대는 성향이지 싶네요.

감사해요 앞으로 종종 찾아 뵙겠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3
TRX 0.33
JST 0.034
BTC 110944.89
ETH 4288.17
SBD 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