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은 나쁜 것일까?
“넌 항상 왜 그러냐? 다 그게 니 피해의식 때문이야”
“너 진짜 피해의식 쩐다”
누군가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기분이 어떨까? 우리의 어떤 행동에 대해 “그거 피해의식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때, 어떤 이는 뜨끔 할 수도 있고, 떠 어떤 이는 기분이 나쁠 수 도 있다. 아니, 뜨끔해서 기분이 나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누군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넌 피해의식에 빠져 있어’라고 말할 때 적어도 유쾌한 사람은 없을 테다.
우선 이것부터 점검해보자. 누군가 “넌 OOO야”라고 말할 때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우리가 OOO를 부정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넌 뚱뚱해”라는 말에 기뿐이 나쁘면, 그는 뚱뚱함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고, “넌 무식해”라는 말에 기분이 나쁘다면 무식함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이 부정하고 싶은 것을 자신과 동일시했을 때, 기분이 나쁘다. 그러니까, “넌 피해의식에 빠져 있어‘라는 말에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자신이 ’피해의식‘을 부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달리 말해 ’피해의식‘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라 믿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의식’은 자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부정적인 것일까? 피해의식은 뭘까? 그건 과거 어느 시점에 실제로 피해(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발생한 의식 구조다. 열렬히 사랑했던 첫사랑에게 비참하게 버림받은 이는 사랑에 대해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돈이 없어서 천대받고 냉대 받았던 이는 돈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피해를 받아서 생긴 의식이 피해의식이다. 그러니 피해의식은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른 것처럼 말이다.
이제 의문이 생긴다. 피해의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왜 “너 그거 피해의식이야!”라는 말에 기분이 나쁠까? “너 배고프구나!” 혹은 “넌 배부르구나!”라는 말에는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서 말이다. 혹자는 이리 답할지도 모르겠다. “피해의식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떨어뜨리기 때문이에요”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과도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감,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첫 사랑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년(놈)들도 다 나를 갖고 놀다 버릴 거야!”라는, “돈이 없으면 사람들은 나를 개처럼 취급할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을 리가 없으니까.
묻자. 세상 살면서 단 한 번의 피해와 상처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단연코 없다. 그 피해와 상처의 크기, 깊이, 종류는 다 다를 수 있을지언정 단 한 번도 상처 받고 피해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피해의식이 있다. 물론 받았던 피해와 상처의 크기, 깊이, 종류에 따라 피해의식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우리가 피해의식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건, 그것이 한 사람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저해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피해의식’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이유가 있다. 그건 타인의 시선에 관련되어 있다. 살면서 피해의식 '쩌는' 사람을 한 번은 만나본 적이 있을 게다. 그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 사람 별 일 아닌 일에 왜 저렇게 과도하게 흥분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은 ‘저 사람 참 세련되지 못하구나!’라는 느낌에서 온다. 그렇다. 우리가 피해의식을 부정하게 된 건, 그것이 ‘세련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의식 때문에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것이 촌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누군가 우리를 피해의식과 동일시하려고 할 때 불쾌한 것이다. 타인이 나를 세련되지 못한 사람으로 볼까, 촌스럽게 볼까, 달리 말해 미성숙한 존재라고 볼까 두려운 것이다. 이것이 ‘넌 피해의식 덩어리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실제 자신이 갖고 있는 피해의식을 되돌아 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불쾌해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