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말고보통]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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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야근을 끝내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고 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졸음운전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쿵’하는 소리가 났다. 아뿔싸! 육교 밑으로 무단횡단을 하던 노인을 친 것이 아닌가!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 아닌가? 비단 교통사고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되었을 때,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왜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지. 우선 죄책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에게는 공감능력이 있어서 일 게다. 사고를 당한 사람을 보며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자신 역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누군가 교통사고를 내게 되면, 그는 결코 되어서는 안 되는 형편없는 부류의 인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혹은 해를 끼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를 내면 깊숙이 받아들이고 있다. 교통사고를 낸 후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자신이 결코 되어서는 안 되는 형편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자기부정의 감정에 기인한다. 이것이 죄책감을 느끼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다.

결국 죄책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실제 행동의 간극만큼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을 죽이게 되었을 느끼는 죄책감보다 무단횡단을 하고 난 뒤에 느끼는 죄책감이 현저히 작은 이유도 이제는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가치는 아주 확고하게 옳은 것이고, ‘무단횡단을 하면 안 된다’는 가치는 비교적 확고하지 않게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죄책감은 우리네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운전을 할 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않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조심하게 된다. 또 급한 일이 있어도 가급적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죄책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스스로 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부터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게끔 말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고 나서도 다시 또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죄책감은 건강한 것이기도 하다. 죄책감 덕분에 옳다고 믿는 삶을 살려고 하고, 잘못되었다고 믿는 삶을 피하려고 하게 되니까. . 죄책감이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생각에 부합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 발생하는 감정 아닌가? 그러니 죄책감이란 것은 일종의 제동장치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건강하고 훌륭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제동장치 말이다. (종교적 죄책감의 기능처럼) 죄책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훌륭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고, 결코 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 나쁜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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