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본격 취재원 비망록 : 서문 - 어떤 전문가
지난 금요일 내 글도 남의 글도 아닌 글을 썼다. @noctisk님은 이일 하다 보면 일상다반사라고 했지만 이 짓도 10년 다 돼가는데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취재원들 이야기를 좀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포스팅은 '서문' 정도가 되겠다. (사실 1회를 거의 다 써놨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가독성 떨어질까봐 이 부분만 뺐다.)
원고청탁 차례는 없는 집 제사처럼 돌아온다. 오늘자로 어제까지 출고가 돼야 하는데 지난 화요일에 간신히 섭외를 했다. 그런데 수요일 밤 11시 43분에 자려고 누웠는데 문자가 띡 왔다.
이밤에 너무 죄송한 말씀 올립니다. XXXX관련한 기고는 의미도 있고 해서 써 보려 했는데 사실 제가 이번주 안으로 학교기업 형태로 XXXX 회사를 설립하고 담주 화에 런던 독일 출장을 가고 하자니 도저히 집중도 안되고 이제까지 수많은 창업관련 서류작업을 하고 퇴근합니다. 아직 할일이 너무 많다 보니 이번에는 좋은글을 쓸 여유가 없네요.
목요일에 이렇게 나오면 다른 사람 섭외를 어떻게 하냐는 고민과 함께 분노와 욕설이 올라왔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다시 문자가 왔다.
아침에 스토리 생각났어요. 오늘 오전 써 볼게요.
다행이었다. 일요일 마감인 원고를 목요일에 어디 가서 섭외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한 군데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2번에 소개한 B교수. 그 분이라면 불만없이 3일 동안 시간을 들여 원고를 토해낼 것 같았다. 하지만 원래 섭외했던 사람이 쓰겠다는데 쓰지 말라고 하고 B교수를 섭외하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그날 저녁 메일을 보냈다는 연락을 받고 금요일에 기쁜 마음으로 확인을 해봤다.
그런데...
간단히 적어 보았읍니다. 생각이 정리 된줄 알았는데 막상 쓰다보니 졸피이 되었내요. 보시고 코멘트 주시거나 마음껏 고치셔도 됩니다
불길했다. 갑자기 '읍니다'라는 철지난 맞춤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되었내요'는 또 뭔가... 그리고 마음껏 고쳐도 된다고? 토씨 하나 손대도 불같이 화를 내는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불길함은 곧 눈앞에 실제로 펼쳐졌다. 이 칼럼은 총 원고지 9매 분량(1800자)을 써야 한다. 당연히 처음 섭외할 때 알려줬다. 그런데 달랑 4.4매(880자)... 그것도 내용이 그냥 일반 독자 수준이었다. 혹시 그냥 다른 사람을 섭외하든가 말든가 상관 않겠다는 거였나? 아니다 그는 따로 보낸 메일에 사진과 이름, 직함을 정확하게 담았다. 그나마 이 양반이 무엇을 뭐랑 엮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이디어는 알 것 같았다. 시간도 없다. 어떻게든 원고를 마감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마음껏 고치셔도 된다'고 했다. 좋다 마음껏 고쳐주마.
금요일에 야근을 하면서 꾸역꾸역 썼다. 기분이 참 묘했다. 잘 써도 내 것이 아니요, 못 써도 내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글. 내 주장을 쓰되 내 생각대로 써선 안 되고, 이 글의 원래 주인이 조금 써 놓은 수준에 준해서 써야 했다. 미리 써서 올려 둔 원고는 오프였던 어제 출고됐다.
이 교수 참 재밌다. 오늘자니까 보통 독자들은 오늘 찾아봤을 텐데, 가판을 보고 어제 연락이 왔다. 보통 가판은 타사 선수들이나 업계 관계자 등 기사에 이해가 걸려있는 분들이 보는데, 이 분은 원고를 그렇게 보내놓고 또 어떻게 들어갔나 궁금했는지 가판을 확인했다. 그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내가 묻기에 문자를 보여줬다.
넘 멋지게 글을 마무리 하셯어요
제가 새로 연구실 창업으로 마음이
부산 해서 그러는데 담에 다시
기회 있음 열심히 해 볼께요
나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 보냈다. 나는 좀 어색할 때 '^^'를 붙인다. 죄송하지만 그 분에게 다음에 다시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갑자기 고민이 생겼다. 이 분이 원고료를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오잉 어떻게 교수가 되신거지...놀라울 뿐이네요... ㅠㅠ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바닥에서 흔하다는 말씀이네요..
종종 어떻게 교수가 되신건가 궁금한 분들을 만나게 되죠. ㅋㅋㅋㅋ
good story and very helpful for us
thanks
세상에는 무책임하고 뻔뻔한 사람이 많네요. 원고료를 원한다면.장난감돈 1억원을 주세요.
좋은 생각이네요 ㅋㅋㅋ 참고하겠습니다.
그 교수가 보내온 글을 보면서 참 답답했을꺼같군요 ...
슬며시 걱정되는게 또 저런 사람이 원고료같은건 잘 챙길거같은 느낌이드는군요 ...
후속보도 하겠습니다. ㅋㅋ
분량의 두배면 거의 새로쓰셨다고 봐도 무방하네요...정말 책임감이 없네요... 고료도 절반만 드리면 될듯 그것도 아깝지만ㅋ
한번 물어보려구요. ㅋㅋㅋ 고료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냐고
원고료는 880/1800 만큼이면 차고 넘치겠네요!
솔로몬??
좋은 생각이네요 ㅋㅋㅋ
남의 글을 대신 써주고, 원고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 ㅎㅎ
참 난감하시겠네요.
많은 필자들이 고료 생각 안하고 글을 써주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꼼꼼하게 챙기더라구요. 이 분은 어느 쪽일지
읍니다에서 불길함을 느끼셨다니ㅋㅋㅋ
요즘엔 장난으로 읍니다를 쓰는경우도 있는데 저분께서는
리얼하게 읍니다를 사용하고 계시는군요....ㅋㅋㅋㅋㅋ
남이 쓴것처럼 써야하는 글은 정말 어떻게 써야할지
저로써는 감도 안잡히네요...
뭔가 그분이 써서 보낸 부분보다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돼서 쓰기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ㅋㅋ
어쩌면 그분은 좋은 인연이 될 기회를 영원히 잃으신거나 마찬가지네요.
행동, 언어 패턴상 원고료 연락이 반드시 올 것같아요ㅋ
맞습니다. ㅋ 연락 올 것 같아요. 꼼꼼하게 가판을 챙겨보신 걸 보면...
처음부터 새로 쓰는건 이바닥 일상다반사 아니겠슴까 -_-)y~ 그나마 제도권 신문사는 덜한편이에요. 영세하거나 특화된 작은 업체는....
예전에 경찰청에 있을 때 기고 좀 실어달라고 하도 민원을 해서 받아보고는 뺀찌를 놨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