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진 살갗, 감정] 감정의 문명화, 그리고 향유의 한계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 감정에 대해 수치스러워하게 되었을까. 우리 감정을 숨기며 조절하고 통제하는 걸 문명의 화두로 삼게 되었을까. 엘리아스라는 사회적 문명학자가 있어. 이 분의 관점에 따르면 중세의 기사들은 본래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었다는 거야. 그들은 무자비한 야만들이라서 폭력적일 따름이었지. 여자들은 그들의 육체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말야.
이런 야만스러운 이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예법이 등장하기 시작했어. (물론 동아시아도 마찬가지). 자신들의 충동을 예법에 따라 조절하는 능력을 갖는 게 일종의 사회적 자산이 된 거야. 그때부터 이상적인 여인에 대한 기사도라는 게 생겨났다고 해. 즉 자신의 욕망을 조절할 줄 아는 사회적 화폐를 보여줘야 했던 셈이지. 그래야 그 사회적 화폐를 써서 더 지위가 상승할 테니 말야.
이들을 예로 길들이기 위한 건 17세기 루이 14세때 절정에 달했다고 해. 루이 14세는 무대연출가였지. 문화를 만드는 신이었어. 귀족적인 취향이라는 애매한 것에 바탕을 둔 문화를 통해 지배하려했던 거야. 그 취향을 감지하고 아는 자는 지위가 높아지고 그렇지 못한 자는 지위가 낮아지는, 취향의 정치를 한 거지. 이 취향은 인간의 본래적인 감각이라기보다는 길들어진 감각이라는 게 맞겠다. 즉 왕의 취향을 카피한 취향인거지. 이 취향을 얼마나 카피하느냐에 따라 귀족들의 지위가 달라지고, 그 귀족들의 취향을 얼마나 카피하느냐가 서민들의 지위가 달라지는 뭐 그런 사회가 형성된 거야. 그게 문명이라는 거지. 경쟁적으로 취향의 예를 카피하고 카피하는 게.
그러나 인간은 각기 다 달라서, 취향도 다 다르겠지. 즉 향락을 누리는 지점이 다 다르겠지. 어느 하나로 통일될 수 없는 게 인간의 취향이잖아. 그런데 재밌게도 인간이 각기 다른 취향을 따라 향락을 누릴려고 해도, 스스로가 멈춰버리는 지점이 있어. 쾌락의 원리지. 인간이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정해진 쾌를 넘어서는 향락을 추구할 때, 그 향락은 불쾌로 변해버리거든. 그럼 인간은 그 지점에서 멈춰버리지. 그래서 라캉은 '향락에 한계를 긋는 것은 쾌락이다'라고도 해.
그런데 기억할 게 있어. 한계를 정한 취향에 머물러 있으면 스스로도 힘들다는 걸. 그 한계 속에서 박제화된 교양을 누리다가 문득 삶이 덧없어 진다는 걸 느낀 다는 걸. 자기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다는 진실의 얼굴이 떠 오른다는 걸. 그 순간을 피할 순 없다는 걸. 잘 정리되고 조화로운 교양 속에 자신을 가두면 삶이 보복한다는 걸.
Baeutiful
^^~
어떻게 사는게 좋은건지 참 난해하네요..
질문을 품고 욕망의 주체가 되어서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 내야죠.
향락은 한계가 없고 쾌락은 하나에 고착해있다는 의미인거 군요. 그치만 둘다 樂을 쫒는 욕동인건 분명하구요
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