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플래카드

in #kr6 years ago

그날의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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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의 해는 누구에게나 각별한 기억으로 남겠거니와 1987년 1월, 나는 가고 싶은 대학과 갈 수 있는 학교와 꿈도 꾸지 못할 학교를 가늠하며 ‘목표: 00대학교’를 쓴 수건을 둘러메고 있던 고3으로 가는 도중에 있었다. 그래서 1987년의 기억은 유난히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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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 대학생이 ‘쇼크사’ 했다가 ‘탁 치니 억하고’ 죽었고 알고 보니 두 명이 고문하다 죽인 것이었다가 더 까고 보니 여섯 명이나 되는 경찰이 가담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졌던 나날들, 전국에 태풍이 몰아치고 그 와중에 최루탄을 맞고 세상을 뜬 또 하나의 대학생의 장례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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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부산 사람들을 흥분시킨 사진 한 장이 있었다. 고려대학교 교문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턱걸이로 갈 수 있는’ 대학으로 선생님이 얘기한 대학이어서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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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플래카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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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쓴 플래카드였다. 그건 박종철 학생의 아버지의 마지막 인사였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건 석간 동아일보의 기자 수첩 같은 짤막한 글에서였다. 그 기사 다음날이었던가 며칠 뒤였던가 이 사진을 봤을 때의 마음 울림은 지금도 선명하다. 보충학습하던 겨울 방학, 한 선생님은 교탁에 올라 사진이 실린 신문을 읽으며 중얼거리셨다. “잘 가그래이....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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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화(感化)라는 단어의 뜻을 처음 몸으로 느꼈던 것 같다. 부산시 말단 공무원으로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아들 둘 다 대학 보내 어깨를 펴고 정년 퇴직을 준비하던 평범하디 평범한 환갑 나절의 아저씨가 급작스레 폭격처럼 퍼부어진 현실에서 무슨 할 말이 남아났겠는가. 할 말이 없다는 말조차 하는 게 기적이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그래 고생을 해서 대학 보낸 아들이 생똥을 바지에 지리고 숨막혀 죽였는데.” 우리 아버지의 멘트다. “얼마나 괴로웠을꼬. 얼마나 괴로웠길래 생똥을 싸고 죽었을꼬. 할 말이 있을 수가 없지 할 말이 있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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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운동권’ 학생들을 그렇게 하나 하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대개 이상한 복면을 하고 떼로 스크럼 짜고 알아들을 수 없는 구호를 외치거나 돌 던져대는 모습은 많았지만 말이다. 학생들은 돌을 던지지 않았고 경찰들도 그들을 진압하지 않았다. 플래카드를 든 학생들과 전경들은 차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 채 그들은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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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 플래카드를 쓴 장본인을 알았다. 뜻밖에도 자주 술 마시고 어울리는 선배였다. 믿기지 않는다고 혀를 내두르는 내게 선배는 자신이 그 플래카드를 썼던 날을 실감나게 돌이켰다. 당시 84학번으로 학생회관에서 꽤 짬밥이 높았던 그는 플래카드 내용을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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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내용을 써야 할까. 전두환 개새끼 살인마 종철이를 살려내라.... 온갖 투쟁적인 문구들은 흘러 지나갔지만 맘에 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때는 단골 술집에 가서 혼자 막걸리 마시며 단어들을 짚어 나갔다나. 그런데 전날 신문의 기사가 번득이며 머리를 지나갔고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플래카드 문구로 삼자는 결심이 섰다. 그리고는 득달같이 달려가 붓을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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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에게는, 그리고 나를 넘어서 대한민국 전체의 역사가 된 사진.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플래카드 뒤에서 “우리는 할 말이 많다 이 시발놈들아.”라고 부르짖는 듯한 사진 속 플래카드를 쓴 이가, 허구헌날 술 먹자고 전화오고 전화하고 지금은 술병 나서 술도 못 먹게 된 저 선배란 말이렸다. 그 얘기를 들으며 역사란 정말 누구의 겨드랑이에서 돋아날지 모르는 날개와 같고, 누구의 어깨 위에 내려앉을지 모를 파랑새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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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열심이었고 학교 다닐 때 지도부 노릇도 했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시민의 손,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영감이 낳은 플래카드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고, 천 리 밖에서도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으며 뭐라 할 말이 없다 절망하면서도 이러면 안되지 않느냐고 고개를 쳐들게 만드는 주요한 도구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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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카드 하나가 역사를 바꿨다고 말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내 기억에 선연히 남았을 만큼, 그리고 기억 속에서 플래카드에 격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만큼, 그 플래카드는 6월항쟁이라는 모자이크를 구성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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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40도를 넘었다고 기상 관측 이후 가장 더운 날씨라는 아우성이 자자하다. 아마 이 사실만으로 2018년은 역사에 남으리라.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를 탄생시켰던 1994년의 더위는 이제 한 계단 내려앉았다. 이것도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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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운운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거창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 누구도 태어나기 이전에 있은 적 없고, 죽은 뒤에 뭘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바. 역사란 결국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일상의 총합일 뿐이다. 그 일상에서 두드러지는 것들이 오늘의 기온처럼 진한 글씨로 쓰여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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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플래카드를 썼던 선배의 일상에, 아들 둘 번듯한 대학 보내고 노후는 좀 편하겠지 허리 펴던 부산시 수도국 말단 공무원의 일상에 역사는 모기같이 내려앉아 필요한 자양분을 획득하며 독수리처럼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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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슬프고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뒤 아버지는 아들의 운동 경력보다 열 배의 세월을 보내며 아들이 이루고자 한 세상을 위해 투쟁했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는 할 말이 없었으나 그 부활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쳤다. 그리고 30년 전 아버지의 슬픔을 담은 플래카드는 다시 아버지의 영전에 바쳐졌다. 당시의 플래카드는 며칠 뒤 사라졌겠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복원했다고 한다.

박종철플래카드복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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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플래카드의 글씨를 보면서 슬몃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어붙은 강 위에서 아들의 유해를 뿌리며 울먹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라서, 술집에 앉아 머리를 짜내다가 유레카!라도 외치듯 학교 안으로 달려들어가 그 목소리를 검은 천에 담아내던 선배의 떨렸을 손이 느껴져서, 그리고 당시 신문에 실리지는 못했으나 추도식에서 종을 치며 절규하던 박종철의 어머니와 누나 모습이 살아와서.

박종철어머니누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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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할 필요는 없겠으나 생각은 하고 있어야겠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내려앉을지 모른다는 것.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욕설과 비난, 노력과 외면이 뜻밖의 역사를 이룰 수도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 박정기 어르신 . 일찍 간 아들 몫 하시고도 많이 남았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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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서는 아드님과 행복하시길...

아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기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저 고등학교초반만 해도 전경이 대학교 입구에서 서있는거 많이 봤는데 그때는 관심이 없어서 무슨일인지 몰랐지만요
우리나라도 힘든시기를 거쳐 여기까지 왔군요

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 정말 지난하고도 구불구불한 역사의 고갯길을 거친 겁니다..... 그 점은 우리 현대사가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아픈 숙연해지는 이야기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잊어 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제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군요
자식이 커서 그의 나이가 되고 나니 그의 죽음이 그 어르신에게 어떤 의미인줄 알 것 같습니다. 살아도 산것이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겠지요.

그냥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어르신의 명복을 빕니다.
이 세상에서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잊혀졌다 싶어도 다시 선연하게 일어서는 기억들이죠. 그 아픔... 그 분노.... 경험한 사람들은 다 그럴 겁니다. 아예 그걸 못느꼈다면 모를까 우병우 같은 넘들처럼

가슴이 아련한 이야기네요.. ㅠㅠ
박정기 아버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네 하늘에서는 좀 더 편안해지시길... 막내아들과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이 평화라면
평화를 위해 아들의 유업을 아버지가 물려받는 비극을
희생이라는 글자에 담는 것으로
우리의 몫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벌써 날씨만큼 뜨겁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들보다 훨씬 더 긴 '운동'을 끝내고 돌아가신 아버님을 그 막내아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을 겁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밑거름이 되어 꽃을 피우는 민주화의길!
하늘에서 바라보고 계실거에요

네 그러실 겁니다. 앞으로도 그래 주실 거구요

모두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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