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렇게 죽을 수 없었다

in #kr5 years ago

그들은 그렇게 죽을 수 없었다.
.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알 일이라는 뜻의 관용어구가 있다. “그거 모르면 간첩이지.” 너희 또래도 이 말을 꽤 쓰더구나. 그런데 ‘간첩’이라는 말에 밴 싸늘함을 너희들이 얼마나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 세대는 간첩이라는 단어에 본능적 공포감을 지니고 있었거든.
.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라는 말의 대상이었고, “간첩은 표시 없다 삼천만이 살피자”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이웃집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라고 했던 불안의 시대를 살았으니까.
.
비단 한국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모든 나라는 간첩을 두려워했고 적발된 간첩과 그 협조자에 대해서 무거운 형벌을 내려 본보기를 보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모든 나라는 ‘간첩’을 운용하면서 자국에 유익한 정보를 수집하느라 여념이 없기도 했지.
.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이 블록을 형성하고 첨예하게 맞서던 냉전 시대는 첩보전의 극한을 달리던 시대라 해도 무방할 것 같아.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한 직후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심드렁하게 “‘특별한 파괴력을 지닌 신무기’를 개발했소”라고 말한다.
.
그 심경 알지? “특별한 무기를 만들었는데 이거 참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 하며 어깨에 힘주는 상황. 그런데 “대체 뭡니까?”라고 애가 달아야 했던 스탈린은 덤덤했어. 왜냐하면 스탈린은 이미 소련의 첩보망을 통해 원자폭탄 개발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거든. 오히려 그는 콧수염 씰룩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원자폭탄 개발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는 극비 중의 극비였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서거한 뒤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부통령 트루먼조차 대통령 취임 전까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그런데 스탈린은 자기 책상에 앉아 미국의 특급비밀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야.
.
원자폭탄 설계도를 소련에 넘긴 과학자 푹스가 체포되고 그 전말이 밝혀졌을 때 미국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과 분노’를 짐작할 수 있겠지?
.
미국인들의 신경이 칼날같이 곤두서고 매카시즘이라는 ‘공산주의자 사냥’의 폭풍이 휘몰아치던 1950년 5월, 소련의 거물급 스파이 해리 골드가 체포됐어. 소련 스파이망 일망타진을 원한 연방수사국(FBI)은 접촉한 사람을 다 불라고 그를 압박했지. 그 결과 또 한 명의 이름이 나온다. 데이비드 그린글래스.
.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일했던 기술자야. FBI는 그린글래스의 집을 덮쳤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지. “다른 간첩을 불면 당신의 죄가 가벼워진다”라는 회유를 받은 그린글래스는 자신의 누나 에설과 매형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간첩이라고 증언했다. 증언 내용도 명확했어.
.
“1945년 그들의 집에 갔을 때 식탁에 원자폭탄 설계도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원자폭탄의 기능을 설명하는 자료를 썼습니다. 누나 에설이 그것을 타이핑했습니다(〈세계사 속 범죄의 재구성〉 피에르 벨메르 외 지음).” 먼저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체포됐고 에설도 잡혀 들어갔다.
.

image.png

타이밍은 이들 부부에게 극히 불리했어. 줄리어스가 체포되기 3주 전 한국에서 전쟁이 터졌고 미국은 참전을 선언했지. 미국이 원자폭탄을 독점하고 있었다면 감히 소련과 공산권이 이런 도발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긴 미국의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어. 원자폭탄 개발의 비밀을 넘긴 간첩이라면 백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일 수밖에 없었어. 마침내 유명한 로젠버그 재판이 시작된다.
.
그런데 FBI와 검찰은 그린글래스의 증언 외에는 딱히 유력한 증인이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어. 당장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대가로 사형을 면하고 감옥살이를 하던 소련의 거물 스파이 해리 골드가 로젠버그 부부가 간첩임을 부인했거든. “나는 그들을 본 적도 없고 이름조차 알지 못하오.”
.
그리고 그들에 대해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을 한 그린글래스의 증언도 모순투성이였어. 1945년 원자폭탄 설계도가 깔린 식탁에서 식사를 할 때 누나 에설이 그의 자료를 타이핑했다고 하는데 그린글래스는 원자폭탄의 엄청난 비밀은커녕 수학 공식조차 잘 알지 못하는 임시 고용원이었단 말이지.
.
하지만 어빙 카우프만 판사는 이 엉성한 증거에 근거해 상상 이상으로 단호하고 냉혹한 판결을 내렸다. 로젠버그 부부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피고인들의 범죄는 살인 이상으로 나쁜 범죄다. 최고의 과학적 업적이었던 핵무기 자료를 유출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침공,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피고인들의 반역이 미국에 역사적 불이익을 가져온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로젠버그 부부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고 죽음 앞에서 의연했어. “당신이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보람찬 것이었소”라고 쓴 남편과 “우리의 사랑은 감옥의 벽돌과 시멘트와 강철에 의해 단단해지고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울 거예요”라고 주장하던 아내는 하필이면 그들의 열네 번째 결혼기념일에 전기의자에서 슬프게 생을 마치게 돼.
.
오래도록 그들은 무고하게 누명을 쓴 냉전의 희생자라고 알려져왔어. 하지만 후대의 연구와 공개된 비밀문서 등에 따르면 최소한 줄리어스 로젠버그는 소련의 스파이였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
.
일찌감치 소련 통치자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로젠버그 부부의 공로(?)를 찬양하는 것을 들었다고 회고록에 밝힌 바 있고, 로젠버그 부부의 공범으로 18년 가까운 옥살이를 했던 모턴 소벨이 2008년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자신과 함께 스파이 활동을 했음을 인정하기도 했어. 부인 에설은 몰라도 줄리어스는 자신의 비밀을 끝내 간직한 채 죽었다는 거야.
.
심지어 미국 정부는 아내 에설을 먼저 처형했는데 그 이유는 아내의 죽음 직전 줄리어스의 자백을 유도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어. 줄리어스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조차 감수할 만큼 ‘지독한 빨갱이’였다는 것이지.
.
그런데 줄리어스가 아내의 무고한 죽음조차 외면하는 지독한 공산주의자였다 하더라도, 아니 심지어 아내 에설조차 간첩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사형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야.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사람이라도 증거가 없이 처벌되지 않는다는 증거재판주의는 인류가 지난하고 기나긴 역사 속에서 성취한 절대적 가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야.
.
‘국가에 대한 위협’이든 수십 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든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라는 우리 형사소송법 제307조 1항을 벗어나서 처벌할 수는 없어. 이 원칙을 깰 때 우리는 미루어 짐작해 ‘저놈을 매우 쳐서’ 자백을 받아내거나, ‘증거 따위 필요 없는 대역죄인’의 목을 매달던 야만으로 복귀하게 되는 거란다.
.
하나 더, 로젠버그가 스파이였다 하더라도 원자폭탄의 비밀을 넘겼다는 확증은 나오지 않았어. “KGB 담당관이었던 페크리소프는 ‘줄리어스가 전자공학에 관한 최고 기밀을 제공하거나 산업 스파이 네트워크 구축을 돕기는 했으나 원자폭탄에 대한 기밀은 없었다’고 밝혀 논란을 원점으로 돌렸기(〈세기의 스파이〉 박상민 지음)” 때문이야. 즉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은 지은 죄만큼 처벌할 뿐 과잉 처벌을 규제하는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었어.
.
로젠버그 부부는 원자폭탄의 비밀이 소련에 흘러갔다는 분노에다가 유대인(로젠버그는 유대인이었다)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이 더해진 미국판 ‘국민정서법’의 희생자였다.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소련 스파이였다 해도 그에 대한 사형이 부당한 이유야. 아울러 로젠버그 부부의 죽음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무참하게 죽어간 수많은 ‘빨갱이’들의 죽음이 우리 역사의 야만으로 기록되고 기억돼야 할 이유이고 말이야. 그 모두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3
JST 0.077
BTC 61874.73
ETH 1626.75
USDT 1.00
SBD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