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다의 모스크바
1983년 7월 8일 사만타의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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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이래 소련, 그리고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들의 두발 상태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일단 대머리였던 레닌을 이은 것은 빈틈없이 새카만 머리숱에 콧수염 기른 스탈린이었고 그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한 것은 대단한 대머리 후루시초프였다. UN총회에서 “여러분들은 공산주의를 거부할지 모르나 여러분들의 후손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살게 될 것이다.”고 열변을 토하던 이 대머리 후루시초프가 물러선 뒤 오랫 동안 정권을 장악한 것은 브레즈네프였고 이 사람은 당연히 머리 숱이 많은 편이었다.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장본인이자 아프가니스탄 침공까지 감행했던 이 제국주의적 공산주의자가 죽은 다음 권좌에 오른 것은 역시 또 다시 대머리 안드로포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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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후 집권했던 체르넨코는 대머리가 아니었지만 얼마 못가 역사적인 대머리 고르바초프가 들어섰고 그의 치세에 무너진 소련 이후의 러시아 대통령 옐친은 덥수룩한 머리였다. 그런데 또 아니나다를까 그 뒤를 이은 푸틴은 율부린너 급의 대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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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거된 위인 가운데 유리 안드로포프라는 사람은 소련 지도자 가운데 유일하게 빨치산 활동을 했던 강골로서 그 유명한 KGB 의장 출신이었다. 즉 서방 세계와의 치열한 첩보전을 치른 KGB의 총책임자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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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일찌감치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못 박아 두고 스타워즈 계획이다 뭐다 돈을 쏟아부으면서 소련을 밀어붙이던 레이건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 헬기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무자 헤딘에 제공한 스팅어 미사일에 의해 수없이 떨어졌고, 소련도 SS 20 미사일을 전진배치하면서 소리없는 으름장을 놨으며 미국 역시 미사일을 들이대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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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와져만 가는 냉전의 한 귀퉁이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메인 주에 사는 사만타 스미스라는 소녀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TV에서 툭하면 등장하는 소련의 위협과 그들에게 즐비하게 늘어선 무기들을 보고 들으면서 “왜 소련은 미국을 공격하려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질문을 들은 어머니가 “네가 직접 물어 보렴.” 한 마디 한 것이 지구를 흔드는 이벤트로 변한다. 소녀는 맹랑하게도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님께 편지를 썼고 안드로포프가 그 편지를 받은 것이다.
안드로포프는 이 편지를 읽고 “소련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네 모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쓴 소설 속 톰 소여의 친구 베키처럼 정직하고 용감한” 사만다 스미스에게 “소련은 평화를 원한다.”는 답장을 써 보낸다. 그 뿐 아니라 네가 와서 직접 보라면서 소녀를 그녀의 부모와 함께 소련으로 초청한다. 안드로포프가 정말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사만타 스미스는 높아만 가는 냉전의 담벼락을 넘나드는 평화의 사절이 되어 소련으로 향한다. 1983년 7월 8일 열 한 살의 미국 소녀는 소련 매스컴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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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언론은 정규 뉴스 시간에 사만타의 도착 소식을 엄청난 시간을 할애하며 보도했다. 소련 언론의 태도로 볼 때 그렇게 개인적인 조명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른바 노력 영웅들이 탄생해도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조명보다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접근했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대접이었다. “소련에 오면서 러시아 어 배워 온 것 없어요?” 라는 질문에 사만타는 씩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스파 시바.” 고맙습니다.
사만타는 2주일간 곳곳을 구경하며 환대를 받았지만 정작 안드로포프는 만나지 못했다. 안드로포프와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 그녀는 안드로포프를 만나면 주려고 했던 책 한 권을 내민다. 그건 마크 트웨인의 연설집이었다. 소련 측도 한아름 선물을 안겨 줬고 그녀의 소련 방문을 기록한 사진들을 건네 줬다. 그녀가 떠나기 전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미국 사람들이나 소련 사람들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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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포프가 그녀를 왜 만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안드로포프는 사만타를 초청함으로써 레이건에게 한 방 먹인 셈이 됐다. 지미 카터도 “레이건 대통령이 선수를 빼앗긴 것을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 방 먹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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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담벼락에 피어난 꽃은 예뻤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녀가 소련 인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소련을 누빈지 불과 두 달 뒤 대한항공 007편이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공군기에 의해 격추되고, 세상은 다시 시베리아의 겨울처럼 얼어붙은 것이다. 그리고 1984년 안드로포프도 세상을 떠난다. 사만타는 “커다란 충격”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을 초청했으나 만나지 못했던 대머리 아저씨의 죽음을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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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도 곧 안드로포프의 결으로 간다. 1985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냉전의 와중에서 한 소녀는 뜻하지 않은 평화의 사절이 됐고, 당시의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경험을 통해 전쟁이 없는 세상의 짧은 꿈을 꾸게 해 주었다. 1983년 7월 8일 사만타 스미스는 “고맙습니다.”라는 서툰 러시아 어를 말하며 모스크바에 도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