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판결을 보고..... 영화 <김광석>을 봤을 때의 경악이 떠올라서....
판결에 불만을 느껴..... 영화 <김광석> 후기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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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광석> 봤을 때 감상문 퍼 둠 천성이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직접 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일단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굳이 안봐도 될 걸 보기도 하고 보지 말아야 할 걸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많은 건 인생에 저주보다는 축복을 내리는 쪽이 더 많았다. 그런데 영화 <김광석>은 어느 쪽인지 지금도 말하기 어렵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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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을 본 이후 다시는 이상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보겠다고 투덜거린 바 있는데 워낙 화제가 되고 사람들이 소매를 걷고 타임라인이 들끓는데 그만 호기심이 시동을 걸어 버렸다.
호기심을 제한하는 건 보통 불편한 환경이다. 어디 독립영화 전문관에서 하는 거면 거리도 멀고 하니 스스로의 호기심을 달랠 수 있다. “왔다 갔다 시간이 얼만데.” 그래서 이상호 감독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아 글쎄 신정교만 건너면 우리 집인 신도림 롯데 시네마에서, 그것도 퇴근 후 저녁 먹고 알맞게 9시 20분에 상영한다는 안내가 친절한 것이다. 이건 운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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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이상호 감독의 집념에 탄복했다. 그가 말하는 ‘진실’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신삥 기자 시절 겪은 사건의 의구심을 잊지 않고 20년을 추적했다는 그 끈질김에 대해서는 손바닥이 아플 정도의 박수를 보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도 고 김광석의 어머니와의 만남 장면이었다. 초라한 집 난간에 기대 카메라를 바라보는 걸출한 가객의 쓸쓸한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 속에서 뭔가 툭 끊기는 듯한 아픔을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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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광석 ‘그 후’에 집중했더라면, 비록 그 아내 서해순의 저작권 독점으로 말미암아 김광석 본인이 지은 노래는 들을 수 없었다 해도 그가 불렀던 노래만 좀 더 들을 수 있었다면 나는 오히려 돈이 아깝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어머니의 아픔은 얼마였으며 가족들과의 추억은 또 얼마나 그득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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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김광석의 죽음 그것이 알고 싶다’를 표방한 프로그램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김광석에도 몰입하지 못하고 김광석의 죽음의 미스테리라는 주제에도 마음을 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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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나는 기대를 잔뜩 했다. 이상호 감독 자신이 99%의 진실에 접근했다고 이야기할 때는 그때껏 내가 습득했던 사전 정보를 다 까먹고 “야 진짜 뭔가 있나 보다.”하고 온몸의 신경을 솜털 끝까지 기울여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될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 몇 년 해 본 짬밥도 위장 속에서 곤두서기 시작했고 말이다. 마침내 김광석의 죽음의 날이 재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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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었다.”는 아내 서해순의 초반 인터뷰부터 그 십 수년 뒤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의 신경질, 김광석의 석연찮은 죽음 현장 기억과 부검시 발견된 사망 흔적과 증언의 불일치 등 다양한 재료(?)가 투척되고 프로파일러를 비롯하여, 가족들이 입을 모은 증언들도 흥미로왔다.
이상한 건 이상호 감독이 호언한 99%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타살’ 의혹을 제기한다는 건 “너 걔랑 사귀지?” 수준일 수 없다.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고 그 혐의를 제기하는 자체가 무겁기 그지없으며 그 무거움을 감당할 근거를 지녀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 감독님! 쇼우 미 더 클루 (Clue)”. 그러나 곧 멘붕이 왔다.
김광석의 죽음 직후 아내의 인터뷰 ‘장난이었다’는 기실 큰 함의가 없다. 뜻밖에 벌어진 일에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얘기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아니 타살이었다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영화 내내 표현 되는대로 그 사악한 악녀가 사람을 죽이고 그런 요령부득의 말을 내뱉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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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건 그렇다고 쳤다. 그런데 목을 죈 삭흔이나 기타 부검 현장에서 나온 발언들은 죄다 김광석의 매형이나 가족들의 이야기였다. 즉 사람 죽은 시체를 처음 봤을 게 뻔한 '일반인'들의 이야기고 몇 년 전의 기억에 의거한 회고다. 국으로 경찰 수사가 부실했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부실했는지, 수사관들의 입장은 어땠고 당시 부검을 한 의사의 입장은 뭔지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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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부검 자료에 접근하는 듯 했을 때 나는 엉덩이를 좌석에서 뗄만큼 긴장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부인의 반대로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인이 자신만이 부검 자료를 보게 해 놓았다는 것이다. 입이 떡 벌어졌다. 상속 등에서야 부인이 독점적인 지위를 지니지만 범죄 피해자의 가족들의 권리는 완전히 다른 문제일 테고, 부인의 반대로 자료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도시 말이 되는가. 그게 무슨 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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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혈질 이상호 기자같으면 나 이상으로 흥분했을 것이고 부검 자료가 보관된 곳을 둘러엎었을 것이다. 법적 근거를 대라고! 도대체 가족에게조차 부검 자료를 보여 주지 않는 것이 무슨 법이며, 더구나 아내가 거기에 자물쇠를 채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법 조문을 가져오라! 아내가 부검 자료 공개 금지 가처분이라도 걸었다면 그 판결문을 보여 달라! 그리고 서해순에게 무슨 요청을 받았으며 누가 그 요청을 수용해 가족들의 접근을 막았는지 책임자 이름을 밝혀라! 난리가 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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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추적의 집념의 이상호 감독이라면 결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수사관, 의사, 검사 다 찾아가서 마이크를 들이대고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거부하면 거부하는대로 이상호 기자 특유의 울먹이는 음성으로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외치며 그 심금을 울렸을 것이며 그들의 증언들을 빠짐없이 우리에게 전해 주어 대관절 무슨 문제였는지,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으며 서로 말이 안 맞는지, 그리고 당시 결론이 왜 그렇게 내려졌는지를 입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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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자막 하나로 끝이었다. 서해순이 막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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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서해순이 국정원장이라도 되나. 하다못해 최순실 조카라도 됐나. 대관절 무슨 힘을 동원했는지 그 의혹이라도 알려 줘야 할 게 아닌가. 타살의 흔적이 감춰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폭로해야 될 게 아닌가. 그게 없었다. 99%라는 팩트의 근거가 없었다. 팩트의 근거가 무너지면 정황조차 힘을 잃는다. (여담이지만 다이빙벨에서도 그랬다. ‘반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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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전과 10범인가 하는 서해순의 오빠가 현장에 와 있었던 문제라면 그 집 근처 콘테이너에서 머물기도 했다는 증언이 영화에 나오니 고개를 끄덕일 수 있고, 자살이라고 보기 어려운 집안 구조를 논한다면 화장실 수건 걸이에 목을 맸던 최진실은 뭐란 말인가. (발만 닿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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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했다는 서해순의 말이 신빙성이 없다고 이상호 감독은 따지는데 그럼 만취하지도 않은 남자가 일체의 방어흔도 없이 소동도 없이 얌전히 목 졸려 죽었단 말인가. 약이라도 먹였다면 부검에 안 나왔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여기서 또 부검 서류는 아내가 막고 있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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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처가 보기 드문 악처라는 소문은 김광석이 죽기 전부터 듣고 있었다. 나쁘다는 건 알겠다. 사악하다고 해도 믿겠다. 미국 공연 가서 김광석의 동창과 슥 사라져서 2박 3일 아주 대놓고 밀회 여행을 다녔다는 얘기도 들었고 저작권을 두고 그 시댁 측과 엄청나게 손발톱 세웠다는 것도 익히 접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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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녀가 99% 살인자라는 ‘합리적 의심’에 99% 동의할 수 없었다. 부검 자료조차 접근하지 ‘못한’ 취재에, 당시 수사를 하고 부검에 나선 ‘전문가’들을 단 하나도 만나지 않고 십 몇 년에 걸친 토막 인터뷰만 분석하는 ‘프로파일러’의 시각을 어떻게 수용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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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사망을 알리지 않고 그 존재를 내세운 소송까지 벌인 그녀의 행각은 ‘소송 사기’에 걸려 마땅한 행동이겠다. 하지만 딸의 사망 원인과 과정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서류가 남아 있는 한 여기에 ‘살인’을 대입하는 것 또한 결국은 상상의 영역이다. 이렇게 나쁜 년이 이런 짓인들 못하겠느냐 하는 상상 말이다. 상상은 자유이나 그 자유를 현실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면 무고(誣告)가 된다. 그 대상의 사악함이 하늘을 찌르든 지축을 흔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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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납득할 수 없었다. ‘합리적 의심’이라기보다는 ‘주관적 상상’이 앞서고 합리적 근거를 대기보다는 ‘마녀 만들기’가 먼저 제기되는 다큐멘터리였다고 본다. 즉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밝히고자 하는 진실에 접근하는 듯 보이나 결국 그 주변을 맴돌며 현란한 춤을 출 뿐이라는 얘기다. 말하고자 하는 사실은 비장하나 무엇을 위한 비장함인지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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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집념은 무엇을 파헤쳤단 말인가. 오로지 김광석의 부인이 악처였고 사악하고 음란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면 이 영화는 성공했다. 그 때문에 김광석이 사실상 자살로 내몰렸다는 식의 접근이라면 수긍하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타살’이라는 주제에 근접하지 못했다. 타살과 관련된 충격적 진실은 없었다.
네 너무 공감돼요.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을 때 재판에서 당연히 질거라고 예상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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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혹시나 했었는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