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이 부른 <블루시걸>의 추억

in #kr6 years ago (edited)

<인랑>이 부른 <블루시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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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개봉 영화에 <클레멘타인>이나 <리얼> 정도라는 혹평을 던지는 걸 보면, 또 보고 오신 분들의 아우성을 보면 <인랑>을 극장에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평이 더 심해지면 아마 아래 과거가 재연될 수도 있다 싶네요. 이놈의 호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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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이라는 표현은 언감생심 갖다 댈 것도 아니고, 영화 애호가라고 부르기에도 매우 찰진 어색함이 감도는 처지입니다만, 저도 왕년에는 영화 꽤나 보러 다니는 축에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적 허영 냄새가 풀풀 풍기기는 했습니다만, 허영도 부리다 보면 남는 게 있는지, 그 무렵 보았던 영화들은 그래도 제 문화적 자산의 밑밥으로 소담히 쌓여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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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보았던 은하수 별들처럼 많은 영화 가운데 최고를 뽑으라면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으음 소리를 내며 한참 동안의 상념에 잠기게 마련이지만 최악의 영화를 꼽으라면 저는 그 질문이 나온지 0.5초 안에 넉 자로 된 소리를 악을 쓰며 내뱉곤 했습니다. "블루 시발" 블루 시걸이라는 영화의 애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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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시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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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도(定都) 600년인가 뭔가를 기념하는 타임캡슐에도 들어갔다는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저는 구태여 볼 마음이 없었습니다. 보아하니 스토리가 빤한데다 다른 영화를 볼 때 묻어 봤던 예고편도 상식 이하였기 때문에 개봉관 순례 코스에서 일찌감치 배제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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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위에서 누군가 이 영화를 봤다고 하기에 호기심에 "어떻더냐"라고 물었을 때 저는 괴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 질문을 들은 친구 녀석은 블루 시발? 이라는 절규같은 반문을 하더니 제 어깨를 흔들어 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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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친구지?"
"이 자식이 미쳤나? 근데 왜."
"내 친구면 그 영화 보지 마라. 최악의 쓰레기다. 나 그 감독 만나면 때려 죽일 거다. 그 개새끼. 정말 최악이다... 최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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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의 눈에서는 지나는 파리 정도는 간단히 떨굴 정도의 살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해와 같은 침을 튀기면서 제게 거듭 다짐을 받는 녀석의 기에 눌려 알았다 알았어를 연발하면서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그렇게 최악이냐고 물었는데 이 자식은 정말 머리가 천정을 뚫도록 펄쩍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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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조차 갖지 마. 관심조차 가질 필요 없어. "
"그러니까 무슨 내용이....."
"으아아아아 말도 하지 말라니까. 궁금해 할 가치가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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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가 놀던 통신 동호회 채팅방에서 저는 제 친구의 웃기지도 않는 발작을 화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괴이한 것은 그 경험이 저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블루 시걸을 봤다는 친구들에 대한 묘사가 복사해서 붙여 넣기라도 한 듯 똑같았던 거죠. '블루 시발'은 열이면 열 똑같았고 어떤 녀석은 대체 어떤 영화길래 그러는지 한 번 봐야겠다는 말에 눈에 핏대를 세우고 주먹까지 부르쥐면서 악을 썼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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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시발 보면 죽는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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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시걸1.jpg

그러나 우리들의 호기심은 그 절절한 호소와 강렬한 경고와 필사적인 저지를 뚫고, 아니 그를 자양분삼아 무럭무럭 자랐고 마침내 우리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 한 번 보고 싶지 않냐? 대체 뭔데 그러냐고......" 로 시작한 논의가 어언 30분만에 "이번 영화소모임은 블루 시걸 보는 걸로 합시다"는 합의로 바뀐 겁니다. 그 논의를 주도한 것은 영화소모임 '영화벌레'의 여왕벌 (소모임 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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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영화도 있고 저런 영화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저렇게 난리를 치는 최악의 영화를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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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극장 앞에 집결했을 때 우리는 크게 놀랐습니다. 그 이전의 어떤 명화나 화제작 감상을 공지했을 때에도 참가자 수가 열 손가락을 넘어서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블루 시걸의 그 야시끼리한 간판 아래 극장 좌석 두 줄을 장악할만한 대병력이 집결한 겁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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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시간 반 이후 우리는 광분 모드가 되어 극장을 나왔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런 영화를 영화라고 내놓을 수가 있을까. 당장 타임캡슐을 파헤쳐 이 영화를 캡슐에서 꺼내 불태우고 말리라는 과격 분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애꿎은 영화벌레 소모임의 장 여왕벌에게 그 분노의 화살이 쓍 소리를 내며 날아갔죠, 누가 이거 보자 그랬어? 여왕벌!!!!!! 사실 여왕벌에겐 죄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하지만 어이없게도 그녀는 회원들의 불길같은 분노를 달래느라 수없이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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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왜 사과해야 되는 거지?"라고 특유의 웃음을 껄껄 웃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영화광답게 한국 성인용 에니메이션의 첫발치곤 개발이긴 하지만 그래도 개발이 첫발이라고 생각해 주자고 웃었었지요. "개똥도 약에 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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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던 대병력의 영화벌레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공간에 돌아가서 아마 똑같이 '블루 시발'을 외치며 주위에 뜨거운 호소를 했을 테지요. 열렬히 만류하고 목놓아 말렸겠지요. 덕분에 '최초의 성인용 에니메이션' 블루시걸은 50만이 넘는 인파를 동원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한국영화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영화의 마케팅 전략에 넘어갔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광분 모드로 만들어서 그 광분의 원인을 궁금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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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저는 영화를 볼 때 영화벌레 여왕벌에게 몇 번 자문을 구했습니다. 좋은 영화 없냐는 둥, 이 영화는 어떻겠냐는 둥...... 언젠가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개봉됐을 때 역시 여왕벌에게 물었었지요. 봤냐? 어떻디? 볼만하냐? 그때 여왕벌은 이렇게 말하며 제 정곡을 찔러 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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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예술 영화 좋아해요? 책임감으로 볼 영화는 아니에요. "
"뭔 책임감? "
"뭐 그런 거.... 나도 이 영화 봤다....는 책임감 킥킥"
"짜식이 날 뭘로 보고...... 괜찮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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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왕벌은 블루시걸 때와는 정 반대로 미소를 지으면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 보라고 해도 그저 보면 안다고 웃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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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의 무언의 호평에 자극받은 저는 모처럼 만난 대학 동기들을 충동질해서 코아 아트홀이었던가 하여간 작은 극장에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보았습니다......라고 얘기하기엔 어폐가 지대합니다. 4명 모두 보다가 잠들었으니까요. 저를 제외한 3명은 그래도 뒷부분은 좀 봤습니다. 제 코고는 소리에 다 깼거든요. 전언에 따르면 저는 깨워도 안 일어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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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경으로 영화 감상을 끝낸 다음 날 '희생'을 보았노라는 말을 들은 동료가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물어 왔을 때 저는 참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블루시걸 때와는 정 반대의 포지션을 취했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지그시 감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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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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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개봉되던 시절 이후에 저는 여왕벌을 제대로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장가 가고 직장에 목 매달고 동호회도 시들해지고 게시판마저 날아가고 하면서 소원해지고 종국엔 연락처조차 알지 못한 채 추억 속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죠. 아마 만났으면 저는 환한 미소와 고개 끄덕임으로 그 감상을 대신했겠지요. 코 골고 잤다는 말을 어이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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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그 미소와 끄덕임을 영원히 보여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벌레의 여왕벌 노릇을 했던 후배가 갑자기 세상을 떴단 소식 때문입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들려온 너무나 놀라운 소식에 그녀를 보지 못한, 아니 소식을 나누지 못한 시간을 재어 보니 7-8년은 족히 되겠더군요. 아니 10년이 가깝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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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토록 즐겨 어울리며 신촌 바닥과 종로 영화통과 대학로 까페를 훑고 다녔던 사람들과의 가는 선마저 끊어진 것이 그토록 오래 되었다는 것을 저는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야 조금은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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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나 되겠나 하면서도 끝내 눈 앞에 닥치고서야, 무협지 식으로 표현하면 "관을 보고서야" 무릎을 치며 슬퍼하거나 또는 분노하거나 아프게 깨닫는 이 어리석음은 블루 시걸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정 사진이 된 그녀의 결혼 사진, 그래서 옛날 모습에 '변장'을 보태 전혀 딴 여인처럼 성숙한 그녀의 사진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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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렇게 변해가도록 저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잊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틀든 말든 경운기 소리를 내면서 부족한 잠을 보충했던 '희생'의 관객처럼 말입니다. 핑계 댈 것도 많고, 따지고 보면 뭐 근 10년 소원했던 사람의 죽음에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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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생 속에서 살아가고 마주치는 인연들, 그 만남들에 대해서 조금은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바쁘고, 잠깐 얼굴 본 사람들일 수도 있고, 또 두 번 다시 안 볼 것이라 다짐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지만, '책임감' 마저 저버리고 곯아 떨어지는 노릇은 조금은 지양해 보리라 하는 생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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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타임라인에 어떤 젊은 여성의 뜻밖의 사고사를 애도하는 글들이 홍수를 이뤘습니다. 언뜻 봐도 명랑하고 쾌활한,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는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혼연히 가고 나면 함께 즐겁게 지낼 시간도 미치도록 아쉬울 지경인데 공적으로는 몰라도 사적으로 누구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속 끓일 이유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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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JPG

"첫발 치고는 개 발이지만 개 발이라도 첫발로 생각해 주자구요." 그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어느 발인들, 어느 사람인들 의미 없는 건 없다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랑>을 봐 줄까 말까 심각한 고민 중입니다. 아내는 안볼 거 같으니 혼자 보거나 누구랑 봐야 할 것 같은데 여자분 두 분과 함께 보려고 합니다. 한 분이면 스캔들 나서. (내가 그래도 영화를 남자랑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연사 강력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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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시걸이궁금해지네요
보고 욕이나와도 궁금하네요

아마 아이피티븨에 들어았지 않을까도 합니다만

인랑 영화평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봐야 하나 안봐야 하나 망설이는 중입니다 ㅋㅋㅋㅋㅋ

대충 망한 영화 감독이 제일 억울할 거 같습니다. 억수로 망한 영화는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새로운 희생자를 찾지만, 대충 망해서는 기억에도 안 남으니... 한편으로는 냉방 잘된 극장에서 한숨 자고 나오는 거도 이 더위에는 괜찮을 거 같네요.

음 한숨 자고 나오기 위해.... 허긴 뭐 까페에 앉아 있어도 돈 줘야 하니까... 맞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근데 시끄러워서 잠이 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도

아... 제 추억 하나 풀자면, 무슨 핀란든가 근 두 시간 짜리 실험영화였는데, 죽어라 나무만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음악도 잔잔하니, 참 잘 잤던 기억이 나서요. 나무를 시적으로 표현했다는 평론가놈팽이한테 속아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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