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마 부자와 춘희(春姬)

in #kr6 years ago

1824년 7월 27일 아들 뒤마 태어나다

몇년 전 많은 사람들의 폭소를 불러일으킨 동영상이 있었어. 어느 초등학교 학예회 같은 행사에서 한 쌍의 남녀 어린이가 오페라 곡 하나를 기묘한 동작과 표정으로 립싱크(?)하는 동영상이었지. 뜻도 모르는 가사지만 그 벌어지는 입이나 기괴할만큼 진지한 표정과 유쾌한 오버스러움은 다시 봐도 낄낄 웃음보를 열게 만든다.

이 아이들이 부른 노래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야. 여러 가사로 둔갑하는 가운데 “마누라 마누라 때리지 말아 빨래랑 설거지 다해 놨어~~~” 하는 공처가의 노래로 불리기도 하는 그 유명한 노래

오페라는 베르디의 것이지만 그 원작은 <춘희> 희곡 (원제는 ‘동백꽃을 든 여인’인데 일본 사람들이 제멋대로 춘희라고 번역했고 우리도 그렇게 쓰고 있다. 여기서도 편의상 그렇게 쓴다) 이고 이를 지은 사람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다. 1824년 7월 27일생. 소(小) 뒤마라고도 불리우지. 그럼 대(大) 뒤마는 누구냐? 역시 이름은 같은 알렉상드르 뒤마. 우리가 어렸을 때 참 많이 읽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 <철가면> <삼총사> 등 엄청난 다작을 남긴 소설가지.

아들 뒤마.jpg
소 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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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마는 흑인 혼혈이었어. 그 할머니가 흑인이었거든. 언젠가 뒤마를 다룬 영화에서 제라르 드 빠라디유가 나와서 이건 사기라고 중얼거리게 한 적도 있지. 작가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는 흑인 혼혈이라는 콤플렉스를 평생 안고 살았어. 그 보상심리였는지 그는 어지간히 여자들을 쫓아다녔고 유혹하고 버렸단다. 어느 날에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여자 재봉사 카트린이 표적이 됐지.

카트린은 뒤마의 아이를 낳았지만 뒤마는 인정하지 않았어, “내 아이라고? 어림짝도 없는 소리!”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일곱 살이 돼서야 뒤마는 이 가련한 아이를 자신의 아이임을 인정해. 하지만 그 뒤의 결정은 또 한 번의 상처로 남지. “내 아들을 천하고 무식한 계집에게 맡길 수는 없어.” 아들 뒤마, 즉 뒤마 피스(아들이라는 뜻)는 기숙사에 맡겨진다. 일곱 살이 돼서야 호부호형을 허용받은 사생아, 거기에 흑인 피 섞인 유명한 작가 뒤마의 아들이라는 그의 신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주목의 대상이 됐지. 그 이후로도 아버지 뒤마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며 아들의 감수성을 건드렸고. 오죽하면 후일 아들 뒤마의 희곡에 이런 대목이 나오겠어.

“자식의 행복을 보장할 마음이 없이 멋대로 자식을 낳게 하는 남자는 도둑이나 살인범의 부류에 넣어야 할 악인(惡人)이다.”

아버지 뒤마가 놀라운 상상력으로 기상천외하고도 흥미만발의, 그래서 지구 반대편의 어린이들의 세계 문학 전집에서도 베스트에 들어가는 작품들을 남긴 데 반해 아들 뒤마의 분위기는 좀 어두웠어. 사회의 그늘과 그 속에 시들어가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그의 주목의 대상이었지. 바로 그 대표작이 <춘희>가 되겠지.

<춘희>는 읽어 봤겠지? 이 춘희의 주인공 남녀는 모델이 있었어. 남자는 짐작하겠지만 아들 뒤마 자신이고 비련의 창녀 마르그리트의 모델은 마리 뒤플레시라는 여자였지. 직업은 희곡 중의 마르그리트와 같았다. <춘희>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받아들여 어떻게든 화려한 화류계 생활을 청산하려 노력하다가 남자의 아버지를 비롯, 주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다시 창녀 생활로 돌아간뒤 쓸쓸하게 숨을 거두는 것으로 나오지만 현실은 좀 달랐지.

마리 뒤플레시스 1.jpg

우선 당시 실제 인물 마리 뒤플레시스나 극중의 마르그리트의 직업은 ‘창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코르티잔’이라는 이들이야. 요즘의 우리 말로 하면 ‘공인된 애인’이랄까. ‘조건녀’라고 할까. 남자의 경제적 후원을 전제로 하고 결혼은 꿈도 꾸지 않고 자식도 가지지 않는 것을 경계로 한 관계지. 후원이 끊기면 자동적으로 관계도 끝난다. 뒤마 피스가 목놓아 사랑한 마리 뒤플레시도 화려한 후원자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지. 그 리스트 가운데는 피아노의 대가 프란츠 리스트 (이 사람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도 후일 얘기할기회가 있을 것)도 있었고 기라성같은 귀족들이 올라 있었지.

하지만 뒤마 피스는 이 여자에게 반했다. ““약간 큰 키에 날씬한 몸매, 가는 허리, 백조와 같은 목덜미, 화려한 다이아몬드 반지와 팔찌에 빛나는 드레스덴 도자기 인형”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우리가 말하는 바 콩깍지가 시멘트처럼 씌워졌다고 봐야겠지. 그녀의 살롱에 드나들던 뒤마 피스는 이 여자가 자신들의 후원자에게들마저 당당하고 쌀쌀맞게 구는 걸 보고는 더욱 뜨거워진다.

이렇게 접근해 오는 철모르는 나이 스무살의 뒤마 피스에게 마리 뒤플레시스는 이렇게 방어막을 친다. “난 병들고 음란한 여자여요. 피를 토하고 일 년에 10만 프랑을 써요. 그래도 오케이?” 여자한테 빠진 남자라면 에볼라인들 두려우며 저 하늘의 달인들 못따오겠어. 아버지한테 얹혀 사는 처지지만 뒤마 피스의 고개는 상하로 크게 끄덕였을 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춘희>에서와 같이 아버지 뒤마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아들 뒤마의 답은 “이 여자를 끊느니 아버지를 끊겠어요.”라는 식이었어,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아들 뒤마,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천한 여자”에게서 태어났고 그것 때문에 온갖 비방과 풍문과 손가락질에 시달려야 했던 그로서는 마리와의 사랑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거야.

왜 그런 경우 있잖냐. 알콜릭 아버지 밑에서 알콜릭이 나는 게 당연하지만 가끔 술에 대한 적대감마저 지닌 도덕군자가 자라기도 하니까. 아마 아들 뒤마는 정말로 사랑을 통해 사람을 바꾸는, 순수한 사랑을 열망하고 시도했는지도 모르겠어. “이 여자는 사랑하므로 나는 이 여자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니 바꿔야 한다.”는 의무감일 수도 있었겠고.

하지만 일찍이 농촌의 얼치기 주술사이자 포주의 자식으로 태어나 집시에게 팔려갔고 다시 파리의 양장점으로 팔려온 이후 몸뚱이 하나로 파리 사교계의 여왕으로 등극한 마리는 그 사랑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시 바꾸기에는 너무나 멀리 가 있었어. 뒤마 피스가 그녀를 좋아하는만큼 그녀도 뒤마에게 호감을 가졌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뒤마 피스에게 엄청난 금액의 생활비와 유흥비와 선물을 요구한 건 맞아. 어설픈 뒤마의 풋사랑은 곧 나가 떨어진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그대를 사랑할 수 있는 부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만큼만 내게 주는 사랑에 만족할 만큼 가난뱅이도 아닙니다.”
.
이게 뒤마 피스의 절교장 중 일부야. 마리는 이 글을 읽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허이고 뒤마 도련님. 곧 죽어도 자존심이쩨요?” 하면서 코웃음을 쳤을까? 아니면 “그래요 뒤마. 나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 이제 당신 갈 길을 가세요.” 하면서 펑펑 울었을까.

뒤마 피스와 헤어진 뒤에도 병든 그녀는 여러 사람을 전전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스물 셋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 자신의 월경일을 붉은 동백꽃으로 알리고 그렇지 않은 날은 하얀 동백꽃으로 장식하던 파리의 유명 인사는 여러 남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죽었지. 아버지 뒤마와 함께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 뒤마 피스는 뒤늦게 그 소식을 알았고 그 짧은 살랑의 추억을 바탕으로 <춘희>를 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뒤플레시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희생한 비운의 동백꽃 마르그리트로 거듭나게 되지.

그런데 이 희곡은 처음에는 ‘금지극’이었다고 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데 발군이었던 아버지와는 또 달랐던 뒤마 피스의 희곡은 프랑스 상류 사회의 모순을 사정없이 헤집고 권력층이나 부르조아지들의 비위를 거슬렀던 거지. 상연되지 못하던 뒤마의 희곡은 후일 프랑스의 황제를 자임하는 루이 나폴레옹의 정권이 들어서서야 해금된다. 아버지 뒤마의 친구가 고위직에 있었거든. 어쩌면 이때 아들 뒤마는 아버지 뒤마에게 “제 아버지가 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했을 수도.

이 연극을 본 베르디가 영감을 얻어 만든 오페라가 <라 트라비아타>다. 그런데 이 오페라는 초연에서 참패했다고 해. 이유가 뭔지 아니? 동백꽃 가슴에 달고 피를 토하는 폐병쟁이 여자 역을 연기한 오페라 가수의 체형이 남산만했던 거야. 당연히 감정이입이 안됐겠지. 베르디는 각고의 노력 끝에 날씬한(?) 오페라 가수를 섭외했고 그 뒤 성공을 거두었다지.

라트라비아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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