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백두산정계비의 내용은 모호하게 만들어졌을까?
지난 포스팅에서간도 분쟁을 설명했지만 한가지 제대로 설명안하고 넘어간게 있습니다. 바로 청나라와 조선이 최초로 합의한 백두산정계비입니다. 왜 양국은 이미 협의를해서 백두산정계비도 만들어놓고서는 다시 분쟁을 발생시켰을까요?
먼저 백두산정계비가 생기기 이전의 배경을 봅시다. 최초의 발단은 강희제가 관심을 가져서 조선에 요청했다고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에선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숙종 38년(1712년) 3월 6일에 지경연 최석항이 ".... 미리 생각하여 충분히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압록강과 토문강의 두 강은 자연히 물로 한계를 지을 수 있지만, 두 강의 근원이 되는 첫머리에 여러 물이 뒤섞여 흐르는 곳은 확실하게 정하기 어려움이 있으니, ...."라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점은 나중에 논란의 대상이 되는 토문강이 나오는건데 이미 양국의 경계는 압록강과 토문강으로 자연스럽게 지어져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백두산의 발원지 근처가 애매하다는것이죠. 하지만 경계가 자연스럽게 있다면 왜 대책까지 필요했을까요? 8일에도 대략적으로 이유가 나오지만 23일에 본격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바로 백두산 근처에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주까지 조선인들이 진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시에는 만주는 커녕 백두산 이남지역도 사람이 없어서 걱정했던 것이죠. 세종때 개척했던 4군이 나중에 폐4군이라고 폐지되는것처럼 북쪽땅은 척박하고 추워서 살기도 힘들고 외부의 침입도 잦았기에 그다지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조선 정부는 이를 트집삼아서 만주는커녕 백두산 이남 지역도 빼앗길까봐 고심했던것이죠.
그리고 5월 23일이 되면 문제의 토문강이 어딜 가르켰는지도 나오는데 ".... 토문강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江)이 되었으니 분수령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 라며 토문강이 두만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조선 정부의 입장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자연적인 경계이며 청나라가 괜히 트집잡아서 이 밑에까지 달라고하는걸 막아야한다는거죠. 그리고 조선 정부의 계획은 잘풀려가는데 청나라에서 책임자로 온 목극등이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5월 15일의 기록을 보면 조선의 역관이 목극등에게 장백산(백두산)의 지도를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목극등은 장백산이 조선의 땅이라면서 그려준다고 하였습니다. 강희제가 백두산에 관심을 보였음에도 백두산의 조선 영유권을 인정하고 나아가 그 이남은 조선땅이라는걸 인정한거죠. 이렇게 양측의 협의는 무난하게 끝나게됩니다.
이렇게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고 끝났으면 끝이었겠지만 백두산에 국경 푯말을 박는 작업을 하던 중 문제가 있음이 발견됩니다. 12월 7일의 기록을 보면 겸문학 홍치중이 말하길 푯말을 세우는 곳을 살펴보았는데 당시에 두만강의 수원이라고 정계비를 세운 지점이 진짜로 어디로 어이지는지 답사를 해보았는데 두만강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확인한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6월 9일 3번째기사를 보면 조짐이 있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사헌부에서 백두산 정계의 일에 참여한 책임자를 탄핵하는 내용인데요 탄핵의 이유는 몸이 쇠약하고 늙었다는 핑계로 정계비를 세우는 장소에 올라가지 않고 부하들만 대신 보냈다는 것입니다. 즉 정계비를 세우는 장소에 조선측 책임자는 없이 진행되었다는거죠. 그리고 지리를 잘 모르던 목극등이 두만강의 수원을 착각해버린것입니다.
다시 12월 7일로 돌아가면 잘못된 정계비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가 시작됩니다. 잘못된 사실을 청나라에 알릴지 말지 논의를 하는데 대체로 영의정 이유가 주장하는데로 흘러서 일단 알리지 말것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것처럼 조선 정부는 국경을 정하는데 트집잡혀서 땅을 빼앗길걸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나라에 목극등이 잘못했다는 정보를 보낸다면 조선에 우호적으로 처리해준 목극등이 처벌받고 새로 온 관리는 목극등처럼 우호적으로 처리해 줄 보장이 없다는게 영의정 이유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후는 아시는대로 조선은 그대로 이 오류를 묻어버렸고 1800년대 후반의 감계회담으로 이어집니다.
대부분의 간도가 우리땅이라는 주장을 쓴 글들이 감계회담부터 다루는건 이런 이유입니다.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질때의 이야기를하면 당시 조선 정부의 생각이 어땠는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기때문에 생략하고 분쟁이 생기는 감계회담부터 말하는것이죠. 물론 적지만 백두산정계비 얘기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간조선에 올라온 이 기사도그런것인데 이 기사의 주장은 국제법에 의하면 조약에서 중대한 과실이 있어도 과실을 저지른쪽이 책임져야한다고 합니다. 양국의 조약을 주도한것도 청나라고 착각한것도 청나라의 목극등이므로 백두산정계비가 잘못되었다하더라도 효력이 있다는 주장이네요. 그때의 조약을 국제법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이런 조항이 적용되었던 유사한 사례인 프레아 비히어 사원 분쟁이인정된건 오류를 인지하고도 문제제기를 안했다는점인데 청나라는 문제가 있는줄도 몰랐으며 문제가 생긴 1800년대 후반엔 감계회담으로 문제제기를 하였으므로 이 주장이 적용되긴 어려워보입니다.
동북공정.. 예전 학교에서도 배웠던 주제인데, 살다보니 그새 까먹어버렸네요 ㅠㅠ 부끄럽습니다
포스팅 내용은 동북공정이 아니긴 합니다 ㅎㅎㅎㅎ
오..흥미로운 포스팅입니다 저도 중국 동북지역에 살면서 이런문제를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동북공정의 본거지에 사시다니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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