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n #kr-art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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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매년 설 연휴가 찾아오면 우리 가족들은 시골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당시엔 친가쪽 친척들이 모두 시골에 살았다. 전북 남원에 있는 100년이 넘은 한옥집. 온돌방도 있고 마루와 마당도 있는 집이었다. 마당에는 누렁이를 키웠고, 똥뚜깐으로 불리운 재래식 화장실도 있었다. 감나무와 밤나무도 있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차로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면서 중간 중간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과 반건조 오징어의 맛은 별미였다. 지금도 먼 데 갈 일 있어 고속도로를 탈 때면 꼭 휴게소에 들른다. 그 때 먹은 우동과 반건조 오징어의 맛을 잊을 수 없기에.

남원에 도착하면 이미 하늘이 온통 깜깜해진 뒤였다. 깜깜했지만,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거리며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남원집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골목길 중간 중간엔 노란 가로등이 따뜻한 빛을 흘리며 우리를 환영했다. 남원집 마당에 마침내 도착하면 그 당시 살아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주셨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었지만, 아이들끼리는 금방 친해져 어울려 놀았다. 늦었지만 저녁을 먹고 우리는 온돌방에 배를 깔고 누워 과일을 먹으며 티비에서 하는 설특집 만화 영화를 봤다.

이윽고 잘 시간이 되어 어른 따로 아이들 따로 잠자리가 준비 된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아이들은 들떠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내일 아침은 정말 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들 세뱃돈으로 뭘 살지, 뭐하고 놀지 어둠 속을 향해 서로 경쟁하듯 떠들어댄다. 우리들의 말소리 때문에 잠을 주무시지 못하는 어른들이 문을 두드리며 주의를 주셨지만, 우리들은 속삭이는 말투로 바꾼채 계속해서 내일의 일정을 논의하느라 바빴다.

설 당일날. 깨어보니 이미 어른들은 차례상을 준비하고 옷도 양복으로 모두 갈아 입으신 뒤였다. 아이들은 뒤늦게 세수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는다. 상 위엔 떡국, 토란국, 굴비, 갈비, 각종 전, 부침개들이 올라와 있다. 푸짐하게 마음껏 먹는다. 평소 맛보지 못했던 전라도식 매운 김치도 찢어 먹는다. 그 때는 그 김치가 너무 매웠는데..명절이 끝나 서울만 올라오면 다시 생각나는 맛이었으니..

식사 후 드디어 세배할 시간! 돌아가며 아이들이 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어른들이 좋은 말씀을 전해도, 아이들의 귀엔 이미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머리 속엔 얼마를 받을까란 생각으로 가득하다. 요즘 잘 나가신다는 고모와 작은 아버지께서는 두둑이 주신다. 아이들은 너무나 신난다.

점심때가 되면 아이들은 밖으로 나간다. 근처에 양림단지와 춘향골이라는 곳이 있다. 중간에 슈퍼에 들러 화약총을 사고, 딱지 같은 것도 산다. 평소에 사지 못했던 것, 먹지 못했던 군것질 들을 실컷 할 수 있는 날이니까. 땅바닥에 숫자판을 그려 땅따먹기 놀이도 하고, 커다란 나무 그네도 탄다. 하루 온종일 놀고 오니 어느덧 저녁. 큰어머니의 솜씨로 만들어진 또 한 번의 푸짐한 저녁상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방에 모여 아이들은 오늘 세뱃돈으로 밖에서 산 전리품들을 내려놓고 서로 자랑을 한다.

나이가 들어 우리가 어른이 되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들이 그 때처럼 어울릴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 연휴에 친척들이 모여 예전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그냥 어느 순간 부터 사라졌다. 앞으로도 설 연휴에는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나에게는 고향과 같았던 그 곳. 고향도 아닌 그 곳을 실향민처럼 그리워하게 된 것은, 순수했던 아이 시절의 즐거움이 그립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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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떡국보다는 만둣국이 좋아요!ㅎㅎ

만둣국도 맛있어요! ㅎㅎ

직접 그리신거낙요? 대단하십니다.
완전 금손이시네요.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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