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와 은화 그리고 주화

in #kr6 years ago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24시간짜리 시계로 나타낸다면, 화폐의 등장은 아마도 마지막 18분 쯤일 것입니다. 화폐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인쇄술과 인터넷 이상으로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화폐의 역사랄 것까지는 없고, 금화와 은화 그리고 중세의 주화에 대한 일화들을 간략히 소개해 볼까 합니다.

글린 데이비스의 책 “화폐의 역사”에는 화폐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1. 거래의 단위
  2. 가치의 일반적 지표
  3. 교환 매개 수단
  4. 지불 수단
  5. 후불을 위한 표준
  6. 가치 저장 수단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화폐(지폐 또는 주화)는 이 중 여섯 번째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투자하지 않는 주머니에 넣어 둔 화폐(원, 달러, 유로 또는 엔)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가 줄어듭니다. 현대의 화폐는 난데없이 세상에 나온 추상화 같은 것이며, 더 이상 무언가에 의해 담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폐는 역사상 대부분 기간 동안 어떤 기초 상품에 의해 담보되었습니다.

주화(동전) 형태로 시작된 화폐가 등장한 때는 거의 2,600년 전에 불과합니다. 역사상 다양한 시점에서 종이, 주화, 금, 은, 소금, 소, 사슴 가죽, 보드카, 상아, 조개 목걸이 및 향유고래의 이빨 등이 화폐로 통용되었습니다. 형태는 달랐지만 모두 시대마다 귀중하고 희귀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 군인들의 급료로 지급되었던 소금은 다른 식품에 맛을 내줄 수 있는 귀중한 상품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급료(salary)’라는 말은 소금(salt)을 의미하는 라틴어 ‘sal’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각 시대마다 화폐는 물물교환 보다 훨씬 더 간편했고, 교환 수단으로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게 표준화되었습니다. 화폐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방탄소년단이 소 1마리, 돼지 3마리, 닭 44마리, 사과 5천개, 오이 1만개 등등을 공연료로 받아가는 모습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금화와 은화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640년 경 리디아와 이오니아 왕국(현재의 터키) 남쪽 해안에서 등장했습니다. 이 주화는 호박금(금과 은의 자연 합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호박금은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 인근의 팍톨루스 강에 많이 존재했기 때문에, 최초의 주화를 만드는데 이상적인 금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미다스 왕이 자신의 황금손을 씻어내기 위해 이 강에서 목욕을 했고, 그 과정에서 강 바닥에 금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후 리디아인들은 크로이소스 왕 시절 금과 은을 분리할 방법을 알아냈고, 금과 은으로 주화를 만들었습니다. 표준화된 주화는 그리스 제국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과학과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초의 주화가 금과 은이었기 때문에 이들 두 금속이 다른 어떤 것들 보다 거래의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금과 은을 하늘을 지배하는 태양과 달을 지상에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문명이든 금과 은에 큰 가치를 부여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금의 색은 태양을 닮았고, 말 그대로 천상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금은 지각 표면과 멘틀에만 존재하며 지구가 만들어지고 수 억 년 동안에 걸쳐 지구로 추락한 운석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잉카인들은 금과 은을 “태양의 땀”과 “달의 눈물”이라고 부르면서, 이들로 주화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금과 은은 희귀할 뿐만 아니라, 분해되지도 않고, 철이나 다른 금속처럼 부식되지도 않습니다. 인류는 항상 금을 욕망해 왔습니다. 플리니우스의 이야기에는 자기 친구 그라쿠스의 목에 그 무게만큼의 현상금이 걸렸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의 머리를 자른 다음, 현상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잘린 머리의 입을 납으로 채웠다는 탐욕스런 로마인 셉투물레이우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고 문화에서 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금의 양이 생각보다 엄청 적습니다. 금을 녹여 상자에 담는다면, 그 크기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0.4미터에 불과한 작은 건물 하나 수준이라고 합니다. 금의 양이 이렇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금의 가치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높아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금을 기준으로 한 통화제 또는 금본위제는 유연성이 없습니다. 역사속의 왕들, 황제들, 그리고 대통령들은, 금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자국 화폐의 가치를 계속 떨어뜨려 왔습니다. 그중 한 사례가 버니 매도프도 부끄러워할 만한 역사의 진정한 괴물 로마 황제 네로 행한 평가절하입니다.



네로의 집은 금으로 만들어졌고, 아내 장례식에 사용한 향수는 아라비아 전체에서 한 해 동안 생산한 것보다 더 많았으며, 스스로 32.3미터 크기 자기 동상을 세웠습니다. 로도스의 거상 보다 한 뼘 정도 더 컸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벌이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네로는 기존 주화를 녹여서, 중량을 줄이고 자기 초상화를 새긴 새 주화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로마 디나르의 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키페어 운트 비페어자이트

네로 황제가 했던 일이 중세 유럽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국가들이 30년 전쟁(1618-48)의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은화를 변조한 것입니다. 이를 통칭해서 “키페어 운트 비페어자이트(The Kipper und Wipperzeit)”라고 부릅니다.

키페어(Kipper)는 은화를 깎아낸다는 뜻이고, 비페르자이트(Wipperzeit)는 은화의 무게를 재는데 사용하는 일종의 저울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무게를 속인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한 은화 변조는 실제 위기를 부추겼습니다. 하나(키페어)는 은화를 깎아내 변조함으로써, 다른 하나(비페르자이트)는 은화를 녹인 후, 저급 금속과 혼합해 다시 주조한 다음 이를 유통시킴으로써 은화의 가치를 떨어뜨렸습니다.



위기가 번져가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그레셤 법칙의 초기 예가 발생했습니다. 이윽고 농부들도 쟁기를 내려놓고, 생계로 은화를 깎아내기 시작했고, 은화의 가치 저하, 하이퍼인플레이션, 통화 전쟁, 그리고 정부의 자본 통제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의 많은 국가들은, 새로운 주화를 만들어 보조 주화는 변조시키면서, 고액권 금화와 은화는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게 남겨둠으로써 30년 전쟁에 군비 조달을 시도했다.

보조 주화

또 하나가 은화를 보조한 보조 주화의 등장입니다. 이 보조 주화도 처음에는 은으로만 주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은에 구리를 섞게 되었고, 점차 구리의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금이나 은본위제에서 명목화폐 시대로 바뀌었을 때, 주화는 사실상 구리에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보조 주화의 은 함량 변화가 액면 가치와 주화에 함유된 금속의 가치 사이에 큰 차이를 발생시켰고, 다시 주화의 급속한 가치 하락을 가져왔습니다. 국가들도 변조된 악화를 주변국에 사용하여 양화로 교환했고, 이웃 국가들도 자국 주화를 변조해 이를 방어했습니다.

교역이 발전하고, 자본 통제나 법령도 미비했기 때문에, 여러 도시의 주화가 뒤섞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위조 주화가 빈번하게 발견되곤 했습니다. 따라서 국가들은 더 많은 주화를 주조해 해외로 가져가 교환하고, 교환된 주화를 국내로 들여와 다시 주조함으로써 시뇨리지(seigniorage), 즉 생산 비용(주화에 함유된 금속 가격)과 주화의 액면 가치 사이의 차이를 통해 수익을 도모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 내의 국가들의 시뇨리지 수익이 증가하자, 다른 지역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한 국가에서 주화의 가치를 저하시키면 이어 인접 국가에서는 그보다 좀 더 높은 할인률로 주화 가치를 저하시키고 이런 과정이 더욱 악화되었던 것입니다.



1622년까지 주화의 급속한 가치 하락이 유럽의 호황을 불러일으켰고, 1622년과 1623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인플레이션의 규모는 은화 1마르크 당 9.5길더에서 무려 46길더로 증가해 주화 가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주화의 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지다 보니, 은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구리 주화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도 물가가 폭등하여 가치가 사라진 주화를 받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소비가 줄어들었고, 인플레이션도 약간 진정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무지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농부들을 착취해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다시 교역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변조되어 가치가 떨어진 주화를 받기싫은 농부들이 농작물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상 간략하나마 금화 은화 그리고 주화에 대한 몇 가지 일화를 알아 보았습니다.

모두들 일요일 오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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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보라색을 좋아라 합니다...

ㅎㅎ 네 저는 보라색과 눈을 좋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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