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하림의 음악처럼 나이 들고 싶다
하림 1집 ‘다중인격자’는 2001년에, 2집 ‘Whistle In A Maze’는 2004년에 발매됐다. 2018년 오늘 그의 음악을 듣는다. 글쓴이에게 하림의 음악은 현재도 살아 움직인다.
정말로 위대한 작품을 가려내는 방법은 탈맥락화de-contextualization, 즉 새로운 맥락으로 옮겨졌을 때 얼마나 잘 살아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멈춰라, 생각하라, 슬라보예 지젝>
멜로디·가사 모두 세련하다. 가사는 가볍거나 즉흥적이지 않다. 숙성된 생각이 노랫말을 구성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멜로디이다. 마음이 동動하는 가사를 지닌 소위 명곡의 멜로디도 시간의 풍화에 낡게 마련이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떠올려보라.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로 시작하는 그의 노랫말은 글쓴이의 심정을 건드린다. 잘 쓴 가사는 멜로디에 견줘 수명이 길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하림 음악의 멜로디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뿐더러 세련하기까지 하다.
물론 취미趣味는 저마다 다르다. 하림 음악이 자기 취향의 범주에 귀속되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다.
제목을 하림의 음악처럼 나이 들고 싶다고 붙였다. 늙었다고 하기엔 민망한 나이이지만, 문득 늙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유년 시절 그렸던 모습처럼 나이 들고 있는가?” 던져 놓은 질문에 쉽사리 긍정의 답을 내놓지 못하겠다. 몇 가지만 짚어 본다.
① 발설發說의 양이 늘었다. 친구들조차 글쓴이의 말이 많아졌음을 언급한다. 청자聽者였던 글쓴이가 점점 화자話者화되고 있는 것이다. 풍성해진 말이 가치를 품고 있다면 또 모르겠다. 그야말로 시답잖은 말의 향연일 때가 잦다.
② 언제부턴가 단편적이고 휘발성 강한 텍스트만을 취한다. 양서良書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모르겠다. 그러나 좋은 책을 읽으면 속절없는 시간에 차분함과 여유와 체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③ 내뱉은 말을 고수固守하는 근력이 부실해졌다. 최근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GRIT>을 읽고 있다. 책에 제시된 그릿 척도를 글쓴이에게 적용해보니 형편없는 점수가 나왔다.
글쓴이가 스팀잇에 가입한 지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매일 글을 쓰진 못하더라도 빈도 높게 글을 쓰려고 했다. 이 역시 지키지 않았다. (‘지키지 못했다’라고 쓰려다, ‘못’을 ‘않’으로 고쳤다. ‘능력 부정’이 아닌 영락없는 ‘의도 부정’이기 때문이다.)
자괴自愧를 전시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하림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 이따금 찾아왔다. 그것을 적어둘 요량으로 펜을 들었다.
시간을 이기진 못할지라도, 못나게 늙고 싶진 않다는 것.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 세련함을 갖춘 채 나이 들고 싶다는 것.
젊은 시절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쳤던 홍사중 선생은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일흔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그는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 한다.
- 없는 체 한다.
- 우는 소리, 넋두리를 잘 한다.
-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중략) 만약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만 한다면 노인이든 청년이든 똑같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
짱짱맨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