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태도이다.

in #christianity6 years ago

믿음이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태도라는 필자의 주장이, 별 차이가 없는 말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천국은 심판에 앞에서야 여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목회자들이 천국을 기정사실화하며 떠들어댄다고 하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잣대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물론 그들도 성경구절을 들이대며 말하고 있지만, 성경에는 우리네 교회의 주장에 도전하고 충돌하는 구절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들은 이런 구절에는 침묵하거나 다른 뜻이라며 교묘하게 돌리고 있다. 왜 우리네 목회자들은 성경에 나온 천국의 조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섞어서 넓이고 있는가? 그 이유는 자신의 교회를 수많은 교인들로 채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천국을 바겐세일하면 많은 이들이 북적일 것이지만, 성경대로 좁디좁은 문이라고 말한다면 많은 이들이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교인들의 영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회성공을 이루게 해줄 사람들과 돈이 필요할 뿐이다. 성경은 이런 목회자들을 삯꾼목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분별력이 없는 대다수의 우리네 교인들은 삯꾼목자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기고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오늘은 천국의 자격을 만족시키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믿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눅17:5~10)

위의 구절은 믿음에 대한 설교의 주제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잣대를 말해주고 있는 내용임에 틀림없다. 먼저 사도들이 자신들에게 믿음을 더해달라고 말하자, 예수님은 겨자씨만큼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영접기도를 하고, 정규적으로 교회예배에 참석하고 있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대다수의 교인들은 자신이 이런 믿음이 있으니까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교회봉사와 십일조, 새벽기도 등의 희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은혜도 적지 않았으며 기도응답도 더러 있었다는 것을 믿음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그러한 믿음도 믿음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의 근거는 아니다. 예수님은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신가? 그렇다면 이 근거를 당신에게 적용해보시라. 당신의 믿음으로 기적과 이적을 일으켜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고,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계신가? 뭐,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믿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잣대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잣대가 아니라, 교회에서 목회자들에게 주워들은 잣대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인 목회자의 말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보다 더 믿고 신뢰한다는 뜻이 아닌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일이다.

위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복종시키는 종의 이야기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의 수준을 말하고 계시다. 이 종은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을 하고 나서, 해가 져서 어두워지자 피곤에 찌든 몸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집에서조차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그늘나무 밑에서 놀던 주인은 종을 보자마자 저녁상을 차려내라고 명령을 한다. 그러자 이 종은 군말 없이 부엌에 들어가 저녁상을 내어 놓고, 주인이 식사를 다 할 때까지 옆에서 수종을 들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더라도 주인이 그 종에게 감사하다고 하지 않으며, 도리며 가혹한 주인의 명령이라도 군소리 없이 순종하여야 하는 것이 종의 마땅한 태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의 태도가 바로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라는 것이,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 종의 태도로 하나님을 섬기고 계신가? 거의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힘차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행한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이 정도까지 철저하게 순종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이 종처럼 자신의 의중하고는 전혀 무관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성실하게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한 목적은, 이미 영접기도로서 천국의 자격이 확정되었으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얻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한, 성공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서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종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리고 싶은 주인의 태도이다. 자신이 소원하는 장밋빛 인생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러한 교인들의 속내를 읽고, 목회자가 요구하는 신앙행위를 충족시키면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질 것이라고 선동하면서, 대형교회를 꿈꾸는 목회자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행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내세우는 믿음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예수님은 제자의 조건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소유를 버리고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놓는 결연한 마음의 각오를 요구하고 계시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의 방식은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목표, 선호, 희망사항, 소원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런 인생관이 없는 교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으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 중에서 이런 제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드높은 교회직분을 드러내고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싶어서 교회마당을 부지런히 밟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는 영적 능력이 없는 이유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마가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종의 믿음은, 자신의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종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자신이 죽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의 조건이나 사도바울이 말하는 삶의 태도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각오가 없다면 이런 믿음을 드러낼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은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주셔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그래서 성경은 당신이 교회에서 거행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제사(예배로 번역한 헬라어 ‘라트레이아’의 뜻)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자신의 삶을 지워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죽도록 순종하는 제자의 태도를 말하시고 있으며,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는 날마다 십자가에서 육체의 소욕을 추구하려는 자아를 죽여야 가능하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살고 계신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솔직히, 당신의 능력과 의지와 노력으로는 이런 믿음을 소유할 수 없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성령이 함께 하시는 자녀들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구하며 성령의 내주를 혹독하게 요청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 길만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믿음이 주어지며, 천국의 백성이 되는 유일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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