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이 밝아오다

in #kr-1000club7 years ago (edited)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할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어려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순신 장군의 글귀입니다.
입에서 읊조려 본지도 꽤 오래 되었네요.

누란의 위기를 맞아 멸망의 지경에 처했던 조선에서
전후내내 유일무이하게 소임을 다하고 전장에서 돌아가신 분.

오래전 회사를 물러날 무렵에
전장중에 옥고를 치루셨던 장군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정리를 하면서
집어들었던 책입니다.

위대한 분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방식으로 생활하셨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이책을 읽으면서 충무공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 접한 충무공은 이렇습니다.

업무상 관련있는 사람들과 술자리가 많았다.
의외로 건강으로 인한 고통을 계속 겪었다.(심리적+속병)
세심하게 직접 챙기고 확인하는 스타일이다.
근본적인 과오를 저지른 자는 가차없이 처벌 하였다.
정보를 입수하고 군대의 책임자로서 군사력을 최대한 정비했다.

Ka914.jpg

임진년이 밝아오다 [서해문집 송찬선 엮어 옮김]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마음에 위안을 얻었습니다.
충무공을 다시 보면서 진심으로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충무공께서는 왜 전장에서 숨을 거두셨을까?
전장에서가 아니라면 아마도 역모죄로 숨을 거두셨겠지?" 라고 생각하니
참담 하더군요.

전쟁이 터지면 일단 도망을 가고,
전쟁이 마무리되면 열매나 나눠먹으려들었던 당시의 지배계층은
지금도 곳곳에 살아서 활개를 치고 있지요.

책에서 가져온 임진년(1592년)일기의 일부분 입니다.

1/11일
..방답진의 병선 군관과 색리들이 병선을 고치지 않았기에 곤장을 때렸다.
..성밑에 사는 병졸 박몽세는 석수장이인데 선생원에 쓸 돌 뜨는 데로 가서는
동네개를 잡아먹는등 민폐를 끼쳤으므로 곤장80대를 때렸다.

2/21
..공무를 마친 뒤에 주인인 홍양 현감이 자리를 베풀고 활쏘기를 하였다..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겼는데 술자리는 밤이 깊어서야 끝났다.

2/25
흐리다. 사도진의 여러 가지 전쟁 방비를 살펴 보았더니 결함이 많았다.
군관과 책임을 맡은 서리들을 처벌하였다. 첨사는 잡아들이고 교수는 내보냈다.
방비가 다섯 진포 가운데에서 제일 못한데도 순찰사가 잘 되었다고 장계를 올렸다니..
죄를 제대로 검사하지 못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2/26
..방답진에..무기를 점검하였는데,
장편전 가운데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어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3/21
..심기가 편안하지 못하여 아침 내내 누워 앓다가 늦게야 동헌에 나가 일을 보았다.

3/27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해 보았다.

4/2
맑다. 밥을 먹은 뒤 몸이 몹시 불편하더니 차츰 더 아팠다.
하루 내내 아픔이 계속되었고 또 밤새도록 신음하였다.

4/12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거북선에서 지자포, 현자포를 쏘아 보았다.

4/15
맑다. 나라의 제삿날 이어서 관청에 나가지 않았다..
해 질 무렵 경상 우수사가 통첩을 보냈는데,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정박..
경상 좌수사의 공문..왜선 350여 척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

4/16 부산진 함락

4/18
경상 좌병사와 경상 수사가 군사를 이끌고 동래 뒤쪽까지 이르렀다가
곧바로 되돌아왔다고 하니 더욱더 원통하였다.
저녁에 순천 군사를 거느린 병방이 석보창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오지 않으므로 잡아다 가두었다.

4/19
..방비할 곳에 구덩이를 파도록 아침에 군관을 정해 보냈다.
나도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동문 위로 나가서 방비할 곳의 일을 직접 독려하였다.

5/2
군관 송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와,
남해 현강과 미조항 첨사, 상주포-곡포-평산포 만호등이
왜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벌써 달아났고,
무기 등 온갖 물자도 죄다 흩어져 남은 것이 없다고 했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5/29
..군관 나대용이 총에 맞았으며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았다.
탄환이 등을 뚫고 지나 갔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사부와 격군 가운데도 탄환 맞은 사람이 많았다.
적선 13척을 불태우고 물러 나왔다.


임진년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조선의 남쪽 끝 여수에서 수군을 이끌고 계시던 장군의 일기를 보면서
참 많은것을 느꼈습니다.
한동안 한국사회를 혐오했지요.
조직의 앞날을 걱정하고 준비를 하는 사람을
경직되고 위기감만 조성하는 사람이라 비판하고
상황이 좋아지니 모든 것을 잊고 열매만 챙기려드는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 퍼져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정녕 답이 없구나"라는 결론만 나오더군요.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쫒겨나고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주가지수가 3천을 향해 나아가는 첨단의 시대이니
사람들의 의식도 그만큼 발전 했겠지요..

임진년의 참상이 일어나기전에
전국에 걸쳐
고위 관료에서 지방의 나졸들까지
조금이라도 권력이 있으면
힘없는 백성을 뜯어먹을 개뼉다귀로 여겼던
조선의 지배구조..

돈으로 벼슬을 사고팔고
건수만 생기면 앞뒤 안가리고 나라돈을 착복하며
잘못을 지적하면 역모로 몰아 죽이던
멸망하기 직전의 조선의 지배구조..

지금은 아니겠지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국민의, 국민에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인데요.
그렇게 배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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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무심결에 이순신장군을 보러 왔다가 마지막의 '지금은 아니겠지요....'의 문구에 생각이 많아지네요... 아직까지 그 말씀에는 동의가 어려운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변하는 것은 수백년으로는 부족한 걸까요?

수백년이 지나도 안될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죽고, 다른 사람이 그걸 답습하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바뀌는 것이 문제네요..

넵....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모든지 사람이 문제인듯요..... 모든걸 깨달을 때는 이세상에서 떠나야할 때이니깐요...

어느시대나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있었던것 같아요. 안타까운 사실이죠.

사람은 언제나 같은실수를 반복하죠 ㅎ,,ㅎ ..
예나 지금이나 -ㅁ-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기지요.

그렇게 배웠는데요.
그렇게 듣긴 했습니다.
처음에...

배운대로는 되지 않네요.
충무공께서는 부하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도
백성에게 폐를 끼치거나 잘못을 범하는 자들은
엄벌에 처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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