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연재대회 출품작 | 오즈의 수달 4. 첫 위기

in #kr-series6 years ago (edited)

"그래, 사랑. 나도 자세하게는 몰라. 글린다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 외엔 아는 게 없어. 하지만 라그나로크가 마법이 아니라는 건 확실해. 그러니까 광야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이 할아버지 알고 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 아냐? 혹시 무늬만 마법사 아닐까?

"라그나로크를 배워서 마오와 상대한다고요?"

"그래. 바로 그거야."

오르아가 도로시의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어. 그래, 그 당연한 것 라그나로크. 그러니까 어떻게 연습해야 하냐고.

"스달아 자신 있지?"

"네?"

"라그나로크를 배울 자신 말이야."

뭐야. 나보고 전설의 마법인 라그나로크를 배우라는 거네. 잠깐, 마법이 아니지. 그럼 전설의 기술? 암튼, 마법인지 기술인지를 나보고 배우라는 걸 이미 다 결정해놓고 물어보는 건 뭐야. 자신 없다면 어쩔 건데? 날 그냥 집으로 보내주기라도 할 건가? 그럼 나야 고맙지. 사실, 내가 오즈랑 무슨 상관이야. 오즈가 망하든 불바다가 되든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사람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나? 내가 왜 이 위험한 모험을 해야 하지?

"어,,, 그거야... 음... 그러니까..."

내가 머뭇거리자 도로시가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는 내 손을 덥석 잡았어. 아~~ 따뜻해. 왜 얘는 결정적일 때마다 내 손을 잡고 그러는 거야. 난 당연하게도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판단력이 흐려졌어. 그리고 내 입은 자연스럽게 실언을 했어.

"그야 당연하지. 도로시, 걱정하지 마. 내가 널 지켜줄게."

아~~ 환장하겠네. 뭐가 당연하다는 거야. 난 축구선수지 마법사가 아니라고. 이런, 망했다. 모두 내 대답에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었어. 뭐, 물론 흑기사의 얼굴은 안 보였지만 그렇게 보였어. 근데, 흑기사 얼굴은 안 보이니까 내가 그냥 모두라고 하면 흑기사는 그렇게 느껴졌다고 생각해. 일일이 설명하려니 손꾸락 아프잖아.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자고, 내일 공 없이 공 차는 법을 알려줄게."

"공 없이 공을 찬다고요?"

이건 무슨 말이야? 공 없이 어떻게 공을 차?

"라그나로크를 배우기 위해 먼저 익혀야 하거든."

오르아는 간략하게 설명해줬어. 라그나로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글린다가 내게 공 없이 공을 차는 법을 알려주라고 했다는 거야. 나의 대포알 슛을 공 없이도 하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면서. 일단 설명은 여기까지만 듣기로 했어. 더 말할 생각도 없어 보였거든.

오르아의 집은 넓지 않았어. 그 덕분에 우린 거실에 모여 각자의 이불을 덮고 잘 수밖에 없었어. 오르아만 자기 방에서 잠을 잤어. 도로시는 일이 술술 잘 풀린다며 기뻐했고, 흑기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흑기사는 잘 때도 갑옷을 입고 잤어. 투구도 벗지 않고 말이야. 못생긴 게 확실해. 너무 못생겨서 얼굴을 보이기 싫은 거야.

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잠이 오지 않았어. 엄마가 많이 걱정하시겠지? 친구 집에서 하룻밤만 잔다고 했기 때문에 내일도 못 들어가면 많이 걱정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문자라도 보내려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어라, 꺼져 있는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된 건가 싶어서 전원 버튼을 눌렀어. 그런데 아무런 반응도 없는 휴대폰. 아~~ 망했다. 이런 허름한 집에 전기 콘센트가 있을 리 만무하고. 이제 어쩌나. 엄마가 많이 걱정하실 텐데.

그러다가 잠이 들었나 싶을 때였어. 난 고막을 울리는 굉음에 눈을 떴어. 눈을 떠서 확인해 보니, 이 정체불명의 굉음은 술이 떡이 된 웬 아저씨가, 문을 열면서 고래고래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는 소리였어. 도로시와 흑기사도 눈을 떠서는 '저 미친놈은 뭐 하는 작자인가 노려보는 것 같았어. 상황이 이러한데 정작 집주인은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

"바이킹 아저씨, 여긴 왜 또 오셨어요? 술이 다 떨어진 거예요?"

도로시가 술이 떡이 된 아저씨를 보며 물었어.

"뭐? 술? 아, 참. 내가 술이 떨어졌지. 이 영감탱이야, 술 내놔."

저 꼬락서니 장난 아니군. 바이킹이라는 작자는 비틀거리며 오르아의 방문 앞으로 걸어갔어. 그러곤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 거야.

"이 영감탱이야,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술 내놓으라고."

뭐야 저거. 미친 거 아냐?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침을 질질 흘리는 꼬락서니에, 뿔 달린 투구는 삐뚤게 썼고, 등에는 자기 몸을 가릴 정도로 큰 방패와, 역시 자기 키 정도의 칼을 메고 있었어. 말이 자기 덩치 정도의 방패와 칼이지, 키가 너무 작아서 내 가슴팍에도 오지 않는 크기였어. 150 되려나. 바이킹이 소란을 피우자 흑기사가 일어섰어. 넌 죽었다.

"어! 흑기사네. 야, 너 술 좀 가진 거 있어?"

이 미친 바이킹이 흑기사를 보더니 방향을 돌려 흑기사에게 걸어갔어. 흑기사는 심기가 불편한지... 는 아니고... 아 씽, 얼굴이 보여야 심기가 불편한지 알 거 아냐. 암튼 심기가, 얼굴이 안 보여서 표현하기 짜증 나는 흑기사 갑자기 무기를 꺼냈어. 으잉? 여기서 한 판 붙으려고? 여긴 좁단 말이야. 흑기사가 꺼낸 무기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둔기였는데, 한 대 맞으면 아작날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긴 둔기였어. 참, 아까 내가 흑기사는 칼을 등에 차고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둔기는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저기, 내가 치매는 아니고, 내가 상황 설명을 잘하고는 있으니까 그냥 둔기라고 하면 둔기라고 읽으면 될 것 같아. 나도 내가 지금 오즈에 있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 중이니까.

"자라."

오~~ 흑기사가 말을 했어. 입 무거운 흑기사가 말을 할 정도면 얼마나 화났다는 건지 알겠지?

"뭐야 그 자세는? 나랑 붙어보자는 거야? 너 이 시키. 너 응애응애 하고 태어났을 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알아? 넌 어른도 몰라보냐? 이 새끼가 버릇없이 말이야. 너 혼나볼래?"

술에 떡이 된 바이킹이 의외로 빠른 손놀림으로 방패와 칼을 꺼내서는 방어 자세를 했어. 와~~~ 진짜 0.1초도 안 걸린 것 같았어.

"에이, 왜들 이러세요. 오랜만에 만나서는. 기분들 푸시고 일단 앉으세요. 네?"

도로시가 나서며 말리려고 했어.

"너 도로시, 너 글린다님 후계자라고 요즘 겁을 상실했던데. 너 내가 누군지 잊었나 보구나. 나 바이킹이야. 내가 별거 없어 보여도 얼마나 잘나가는 놈인지 알아? 너 나보다 술 잘 마셔? 너 나보다 힘 세? 까불지 마라. 글린다님도 누워 있는데 너까지 눕고 싶은 거냐?"

바이킹의 말에 갑자기 도로시가 놀라더니 바이킹을 노려봤어. 예사 째려봄이 아니었어. 마치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갈 것 같았거든.

"저기요, 바이킹 아저씨. 밤이니까 일단 주무시고 내일 얘기해요. 오르아 할아버지도 방에서 안 나오시는데 내일 다시 오시면 안 될까요?"

난 도로시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바이킹을 말려보려고 입을 열었어. 용기를 내서 말이야.

"어이, 거기 처음 보는 찌질이는 입 닥치세요. 딱 보니 전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구먼."

뭐? 찌질이? 와~~~ 나 보고 찌질이래. 와~~~!!!

"저기, 저 찌질이 아니거든요. 축구선수 수달님이시라고요. 유소년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난 힘줘서 말했어.

"뭐? 축구선수 달수?"

"수달이요. '수' '달'"

"스달?"

아 정말. 여기 오즈 인간들은 왜 다들 스달이래? 다들 귀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바이킹은 갑자기 내 눈을 노려보기 시작했어. 한참을 노려보더니 실실 웃는 거야. 아주 기분 나쁘게 말이야. 비웃는 것 같기도 했어.

"스달? 네가 스달이라고? 껄껄껄. 스달이라고? 껄껄껄."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더니 이젠 배꼽이 빠지게 웃기 시작했어. 숨이 넘어갈 듯이 웃어대는 바이킹을 보며 이게 무슨 상황 인가 했어. 그런데 상황이 이런데 오르아 할아버지는 방에서 안 나오는 이유는 뭘까? 한 번 잠들면 지진이 나도 안 깨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일부러 안 나온 거?

"이봐, 오르아! 오르아~~~ 이 영감탱이야!!!"

바이킹은 한참을 웃더니 갑자기 실성을 한 듯 오르아를 부르짖기 시작했어.

"미안해 오르아. 날 용서해줘. 이게 다 먹여 살릴 가족이 많은 탓이야. 내 가족들 입에 풀칠은 해줘야지. 내가 매일 술만 퍼마셔도 가장이라고. 내겐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어. 그래서 미안해 오르아~~~"

난 바이킹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도로시와 흑기사의 표정을 살폈어. 뭐 당연히 흑기사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도로시는 왠지 불안해 보였어. 바이킹이 저러는 이유를 아는 것 같아 보였어. 당황한 표정이라고나 할까.

"오르아~~~ 내가 마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줄 거야. 그럼 마오가 술과 음식을 주겠지. 내가 스달을 봤다고 말할 거야. 스달을 봤다고. 내 눈으로 저 비실비실하고 찌질하게 생긴 스달을 봤다고. 전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닌, 그저 나약하기만 한 꼬맹이 스달을 봤다고. 으하하하하. 그럼 잘 있어. 부디 죽지만 마. 껄껄껄."

아~~ 그런 거였어. 도로시가 불안한 이유가 이거였어. 바이킹도 마오 편이었던 거야.

쾅~~~

바이킹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기사의 둔기가 바이킹의 투구를 강타했어. 한 대 맞은 바이킹은 눈이 풀리더니 그 자리에 바로 쓰러졌어. 죽었나? 도로시는 쓰러진 바이킹을 보며 비명을 질렀고, 비명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어.

그때 갑자기 굳게 닫혔던 오르아의 방문이 열리며 오르아가 소리쳤어.

"어서 도망쳐. 오거들이 몰려오고 있어. 어서!"

"오거들이 어떻게 우리 위치를..."

도로시가 당황해하며 울먹이며 말했어. 그러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어. 이 바이킹 개자식. 네가 감히 도로시를 울렸다 이거지? 내가 라그나로크만 배워봐. 널 첫 번째로 상대해주지.

흑기사는 바이킹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때려눕혔어야 했는데 옛 정 때문에 못했다는 걸 후회하는 표정이었어. 음, 표정이 없지. 암튼 대충 들어.

그리고 몇 초되 안 되어 갑자기 공룡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미친놈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여러 번 울려댔어.

크아아아~~~

"세 놈이야." 오르아가 다급하게 지팡이를 꺼내며 말했어. "어서 도망쳐. 여긴 내가 막을 테니까. 어서."

"오르아님 혼자서는 세 놈을 못 막습니다. 저도 남겠습니다."

흑기사가 다급하게 말했어.

"안 돼. 자넨 도로시를 지켜야 하잖나.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 어서 자리를 피해. 어서. 시간이 없어. 빨리."

"그럴 순 없습니다. 세 놈입니다.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이 몸이 부서진대도 막아내겠습니다. 저도 남겠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서 가라. 명령이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진 말아라."

크아아아~~~

굉음이 점점 더 크게 들렸어. 바로 코앞까지 왔다는 걸 느꼈어. 가깝게 들릴수록 굉음이 아니라 괴음처럼 들렸어. 고막이 찢어질 것 같기도 하고 으스산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소리. 아, 그러니까 남든 안 남든 둘이서 해결하고 도로시와 나는 도망가면 안 될까? 저 두 사람 왜 저러는 거야?

"안 됩니다."

"니 아비 안 죽는다. 어서 가라. 여긴 내가 막는다."

오르아가 낮은 목소리고 강하게 말했어.

크아아아~~~

정말 문 앞에까지 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해도 이 정도 소리는 못 낼 것 같은 크기였어. 우린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에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어.

크아아아~~~

다시 한 번 울음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지진이 난 듯 집이 흔들리며 한쪽 벽이 무너졌어. 난 너무 무서워 덜덜 떨며 무너진 벽 쪽을 봤어. 어두움 속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오거. 어른 키 두 배 만한 괴물이 송곳 같은 이를 보이며 굉음을 질러대고 있었어.

"아버지."

아, 그러니까 두 부자는 알아서 해결하시고 나랑 도로시는 도망가겠다니깐.

"가라. 네 아빠 안 죽는다."

오르아의 말이 끝나자 무언가가 내 손을 잡더니 달리기 시작했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난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어. 오거들의 굉음이 점점 작게 들렸고 흩날리는 바람에서 눈물 냄새가 났어.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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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재대회 출품작 <오즈의 수달> 소개
천하제일연재대회 출품작 | 오즈의 수달 1. 모험의 시작
천하제일연재대회 출품작 | 오즈의 수달 2. 마법사의 나라 오즈
천하제일연재대회 출품작 | 오즈의 수달 3. 전설의 마법사 스달


5천자의 약속.
저는 천하제일연재대회 명성에 맞게 회당 분량을 반드시 5천자 이상으로 작성하겠습니다.
본 회는 5864자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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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항상 1등으로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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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어 보진 못했지만 오천자라디 대단하십니다!

천천히 읽으셔도 됩니다. ^^

캐릭터들이 재미있어요 ㅎㅎ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

코믹으로 잘 가시다가 갑자기 왜 눈물나게 하세요 ㅠㅠ
오르아님 살리기 운동 1/10000000000

앗,,, ㅎㅎㅎㅎㅎ
오르아님, 아니 할아버지 무능 마법사는 과연 진짜 무능 마법사였을까요? 다음 회를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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