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소개팅

in #kr8 years ago

누구에게나 최악의 소개팅 경험이 있을거다.

상대방이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기본이고,
이런저런 우연 또는 필연이 겹쳐서 더욱더 떠올리기 싫은 기억으로 남은 .. 그런 경험.

나도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소개팅 경험이 있었는데,
오늘 있었던 소개팅이 이전 경험을 제치고 최악의 소개팅 1위 자리를 차지 할 것만 같다.

기 : 예상치 못한 소개팅 자리


대학교 때부터 쭉 연락을 이어오던 언니가 있다.
그 언니를 최근 세달정도 바빠서 못 만나고 있었는데,
언니한테서 얼마전에 신년회 겸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날짜랑 장소를 잡으면서 언니가 이상하게 계속 내 스케줄에 맞추는 것이다.
그 언니는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래는 내가 항상 그 언니 스케줄과 입맛에 맞추어 날짜/동선/음식점을 정했었다.
그랬던 언니가 갑자기 나한테 결정권을 넘기다니.
난 언니가 드디어 철이 든 줄 알았다 !!!!!!!!!

그래서 요새 통 못 간 OO하우스에서 고기를 먹기로 하고
언니랑 폭풍수다를 떨 생각에 눈썹 휘날리며 룰루랄라 음식점으로 갔다.

그리고 예약한 테이블로 갔는데....

어떤 남정네가 언니랑 같이 앉아 있는거다.

나는 언니의 새로운 남자친구라 확신했다.

그런데 언니 왈,

내가 예전에 한번 얘기했지? OO오빠 (=언니의 진짜 남자친구)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 있다고. 계속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니가 너무 바빠서 자리 못 만들었어 ㅠㅠ 그런데 오늘 너 만나기전에 이 오빠 생각이 나서 연락해 봤더니, 마침 이 오빠도 오늘 시간 된다고 하더라고 ! 그래서 같이 밥 먹자고 했어. 괜찮지?


언니는 속사포처럼 변명을 늘어놓더니, "괜찮지?"라는 질문 아닌 질문으로 대답을 강요했다.

역시나 언니답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언니를 만날때는 빡세게 꾸미고 나가야 그 언니 옆에서 '덜' 오징어가 되기 때문에,
그래도 상태가 폐인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승 : 소개팅남, 허세의 시작


음식을 시키고 본격적으로 언니의 사회 아래 호구 조사 및 간단한 소개를 마쳤다.

나이는 2살 많고, 거주지는 그 근처였으며, 미 동부쪽에서 졸업하고, 모 투자은행서 근무하는.
더 말을 안 나눠도 어떤 스타일일지 머리속에 그려졌다.
친구이자 아는 오빠동생으로는 재미있고 좋지만, 절대 이성관계로는 노노 인 스타일.

그렇지만 내가 요새 친구들한테 받는 지적 중에 하나가

니가 먼저 지레짐작으로 누군가를 평가하지마! 그건 니 선입견이자 편견이야!


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억누르고 새하얀 도화지같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려 노력했다.
(물론 상대방도 나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내린 '평가'가 있었겠지.)

그런데 이 사람... 해도해도 너무하게 자기 자랑이 심했다.
나에 대한 소개를 들었으면 내가 그쪽 생태계랑 이런저런 것에 빠삭하다는 것쯤은 '알텐데'
계속 umm 이랑 you know? 를 섞어가며 !!!!!!!!!!!!!!!!
자기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자기가 얼마나 잘나가는지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했다.

처음 30분 정도는 나도 리액션도 좀 해주고, (아 정말요? / 힘드시겠어요 / 그랬겠네요 등등)
최대한 상대방이 민망하지 않게,
놀라는 척,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 척 했다.

그래도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정도껏 해야지 !!!
들으면 들을수록 '나를 무시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렸다.

보통은 상대방에게 질문도 하면서 소개팅을 이어가는데,
이 사람은 자기 얘기를 끝낼 기색이 없길래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고기에만 집중했다.

전 : 불러서는 안될 이름을 부르고야만 소개팅남


그렇게 내가 먹을 것에 집중하던 때,
소개팅남은 내가 관심을 안 보이는 걸 눈치챘는지 이야기 주제를 바꿨다.

친.분.과.시.

소개팅남은 자기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랑 잘 알고, 형 동생 하는 사이라는 걸 떠벌리다가
'불러서는 안 될 이름'을 부르고야 말았다.

누구에게나 볼드모트와도 같은 이름.
He-who-must-not-be-named.

전 남자친구의 이름이 귀에 들렸다.

나는 굳었고, 언니도 젓가락질을 멈췄다.

설마 동명이인인가 싶어서 얘기하는걸 들어봤는데, 아무리 들어도 전 남자친구가 맞았다.

너무너무 짜증났다.

내가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사람이랑 소개팅이란 걸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화났다.
내가 너무 낮아진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그 소개팅남은 전 남자친구랑 친분은 개뿔.
어디선가 술 마시면서 명함이나 주고받은 정도겠지.
그렇게 친하면 나도 이미 그 소개팅남을 알았을거다.

내 표정을 보고 언니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이야기 주제를 돌리려 했다.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소개팅남은 눈치라는 게 1도 없는 사람이었다.

언니가 아무리 대화주제를 바꾸려 해도, 그 사람은 굳건히 친분과시를 계속했다.

결 : 당당하게 도망치자


결국 나는 상대방이 아직 고기를 먹고 있는 와중에 나홀로 식사메뉴를 시켰다.

마음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난 예의범절을 갖춘 교양있는 현대인이니까.^^

곧 자리를 뜨겠다는 신호를 주려고 냉면을 초스피드로 먹었다.

그리고 머리속으로 cpu를 굴리기 시작했다.

식사값을 어떻게 할 것인가.

  1. 남자가 식사값을 전부 낸다.
    보통 소개팅을 할때 1차는 남자가 내고 2차는 여자가 낸다고 흔히들 공식처럼 말한다. 그 공식에 따르면 식사값을 남자가 내야하지만, 난 그 소개팅남에게 얻어먹고 싶지 않았다. 빚지는 느낌이 싫다. 어차피 다시 안 만날건데도, 괜히 마음 불편하고 싶지 않다.

  2. 내가 식사값을 전부 낸다.
    상대방이 맘에 안 들 경우, 난 항상 내가 식사값을 전부 다 냈다. 욕 안먹으려고.
    그런데 오늘 식사값은.... 좀 많이 나왔다.
    내가 다 내기 부담스럽고, 그 남자 몫까지 내가 내기 싫었다.

  3. N분의 1 하기
    음식점을 내가 정했기 때문에... 무조건 나는 내야했다. 언니랑만 오붓하게 먹을줄 알고 비싼 고기를 먹자고 한 내 잘못이지...
    그렇다고 내가 전부 내기도 싫어서, 각자 더치페이를 하기로 나 혼자 결론을 내렸다.


화장실 가는척 하면서 식사값의 1/3만 계산했다. 사실 결제하면서도 그냥 쿨하게 다 계산할까 수도없이 고민했지만.... 내가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흑, 난 돈의 노예다. ㅜㅜ)

테이블로 다시 가니 소개팅남도 식사를 거의 마쳤길래, 일 때문에 빨리 집에 가봐야한다는 속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걸 도망치듯 나와서 집에 왔다. (아니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대체 어떻게 데려다주겠다고 한거지? 소개팅남은 차 갖고 왔댔고 술도 마셨는데?? 음주운전하려고 한건가 설마???)

너무너무 피곤하고 속상하고 화나는 하루였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불금 보낼 수 있는데...
이렇게 망친게 억울하다 ㅜㅜ

다시는 보지말자.

별첨 : 소개팅남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그사람도 내가 맘에 안들어서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는데.... 집 와서보니 애프터 문자가 와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지금 만나는 사람있다고, 죄송하다고 뻥치니, 갑자기 매너있게 보내주는 척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사람이다.
이곳에서 내 개인적인 얘기를 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친구들도 다 연락도 안받고 ㅜㅜ 말할곳이 점점 더 없어진다. 슬프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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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복잡미묘하네요

살다보면 신기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나봐요 ㅎㅎ

스팀잇이 이런 이야기 하라고 있는 곳입니다. ㅎㅎ
어차피 익명의 가상세계니까요.
많은 분들이 눈치없는 허세남 흉볼 수 있게 리스팀 해 드리겠습니다.

제 정체는 꽁꽁 숨겨두어야겠어요. ㅎㅎ 이런 흑역사를 공개했으니 ㅠㅠ 그래도 같이 공감해주셔서 정말정말정말 감사해요 ㅜㅜ

그냥 안 맞는 사람이었다 생각하시고 잊어버리세요~ 다음번엔 마음 맞는 분이 나타나겠죠! 너무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마셔요!!!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죠....? 저의 미래의 짝은...? ㅜㅜ

힘내세요! 짱짱맨이 함께합니다

항상 잊지않고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주말에도 너무 바쁘시겠어요 ㅠㅠ

1/3 빵. 잘하셨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사람은 가려 만나야 되는 거 같아요.
강백호 짤.jpg

그쵸, 생각할수록 잘 대처한거같아서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어요 ㅎㅎ

소개팅 한번도 안해봤는데.. 신기하네요😅 팔로우하고갈게요!

잉 한번도 안해보셨어요?! 한번쯤은...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아요. 인간사를 배울 수 있답니다 허허허

소개팅 참 힘들죠. 그 맘 다 이해합니다. 에휴

에휴, 소개팅으로 성공하는건 하늘의 별따기인가봐요 .. ㅜㅜ

사람의 만남은 그냥 물흐르듯 운명에 맡겨야 하나봐요.

남자가 여자 앞에서 잘난체를 하는건 관심이 없지 않기 때문일걸요. 재미있는 소개팅 이야기 잘보고 갑니다~

주변에 잘난체하는 사람들을 많이봐서 면역이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좀 심하셨어요 ㅜㅜ 전 그런 관심은 사양하는 편이라 그런걸까요 ㅠㅠ

의외네요 원래 동성친구들이 소개를 잘 해주는 법인데..

저는 이성친구에게 소개를 받았다가 된통 당한적이있습니다 하하..

보통은 동성친구들이 해주는 소개팅이 괜찮긴한데... 이 언니는 딱 겉모습만 보고 소개시켜준거같아요 허허허
jjang님도 된통당한 기억이 있으신가봐요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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