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11.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너의 이름은。] ([Your Name。])
0.
3억을 벌었다.
3억 원도 아니고 3억 엔도 아니고 3억 달러를 벌었다.
(더 정확히는 2017년 4월 기준으로 3.5억 달러를 벌었다)
미국의 간판 슈퍼히어로인 슈퍼맨과 배트맨 둘이서 엄마 이름을 부르면서 번 돈과 일본에서 고등학생 둘이 내 이름 네 이름 부르면서 번 돈이 똑같았다는 소리다.
이제부터 3억 달러를 벌고 싶으면 키워드에 '이름'만 넣으면 된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아마 다음번에는 강아지 이름을 부르면서 3억 버는 영화가 나올지도 모른다.
네? 이미 나왔다고요? 돼지 이름을 건 영화도 나왔어?
이런 세상에 맙소사.
1.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지금부터 나는 찾으러 간다.
─ 『너의 이름은。』 p.153 中
『너의 이름은。』은 단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두 남녀가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만난 적이 없는 사람과의 인연이라니, 얼핏 들으면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소리이다.
허나 우리 역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이어져있다. 당장 우리가 먹는 밥 한 공기를 보자. 이 쌀을 재배한 사람들. 쌀겨를 벗겨내고 포장한 사람들. 쌀을 전국의 가게로 운송한 사람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이 쌀밥을 먹고 내 몸 속에서 피와 살이 된다.
“실매듭은 시간의 흐름 그 자체라고. 꼬고 뭉치고 되돌리고 이어서. 그게 시간이라고. 그게……”
(중략) “그것이 무스비―.”
─『너의 이름은。』 p.150 ∼ 151 中
‘만물을 낳는 신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산령(産靈)과 같은 음을 지닌 단어 ‘무스비(結び)’는 맺음, 연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몸 속에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이어짐 즉 무스비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밥 한 공기를 먹는 것조차도 무스비다.
그것도 무스비, 그것도 무스비.
두 사람의 인연을 나타내는 무스비는 중국 당나라 때부터 이어져온 ‘운명의 붉은 실’ 이야기에 그 뿌리가 있다. 작중에서 무스비를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로 등장하는 ‘실매듭’은 시간의 흐름 그 자체, 즉 ‘인생’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인간의 생과 사를 실로 자아내어 관리하는 운명의 세 여신 이야기가.
그 이야기가 작중에도 반영된 탓인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자신의 인생을 함께해온 실매듭을 남에게 건네줘버린 소녀는 그 시점에서 운명이 끊어지고 만다.
그 실매듭을 건네받은 소년은 소녀의 운명을 손에 쥐고, 소녀를 구하는 여정을 떠난다.
그런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산 건너고 물 건너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동양과 서양에서 똑같이 '실'에 '운명',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는 게.
저기 저명한 철학자가 이미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이미 전세계 모든 인구가 하나의 '집단적 무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생부터. 전생의 전생부터. 전생의 전생의 전생부터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공통된 생각을 함께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동시에 ‘실’이라는 물건에 인간의 운명을 투영하다니. 이 또한 모든 인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이어져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인간의 인연이란 이렇게,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롭다.
2.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어. 지금 와서 기억하는 건 신기한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것뿐이지. (중략)”
할머니의 주름 가득한 얼굴이 어딘지 쓸쓸한 빛을 띤다.
“그러니까 지금의 너를, 네가 보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렴.(후략)”
─『너의 이름은。』 p.178 中
세상 어느 종교보다도 인연을 중요시하는 종교인 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일천겁 동종선근자 일국동출(一千劫 同種善根者 一國同出)’, ‘이천겁 동종선근자(二千劫 同種善根者 一日同行)’. 즉 같은 나라에 태어나려면 천 겁, 하룻길을 같이 걸으려면 이천 겁의 시간동안 인연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쌓아 이루어낸 인연을 소중히 해야 하건만, 우리는 어느샌가 그 인연을 잊어버리곤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 잊어버리려고 애쓰기까지 한다. “나 이제 걔 완전히 다 잊었어.”라고 술자리에서 자랑을 하기까지 한다.
만났다. 드디어 만났다. 이대로 있으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이미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눈물을 보고 그가 웃는다. 울면서 나도 웃는다.
─ 『너의 이름은。』 p.283 中
하지만 언젠가는, 그 인연은 ‘추억’, ‘그리움’, ‘재회’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3.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곗바늘은 우리를 흘겨보면서 똑 딱 하고 지나간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될까.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운명의 붉은 실’은 이 세상의 누구와 이어져있을까.
어쩌면 잊어서는 안 되었는데도 잊어버린 사람과 아직 이어져있지는 않을까.
이어진 실을 따라,
함께 그 사람을 찾으러 가자.
Written By 김누렁이 (12. July. 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