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조선왕조실톡 7편 (마지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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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글감 검색


조선왕조실톡 7편, 시리즈 마지막 편.




순조, 헌종, 철종, 고종, 흥선대원군, 명성왕후

몇 달 전, 드라마 '철인왕후' 재밌게 봤는데, 철종이 보니 반갑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이후의 왕들은 무기력하거나 무능하거나 요절했다.

허수아비 왕들을 대신하여 안동 김씨를 비롯한 권세가들이 나라의 모든 것을 장악했고, 수많은 탐관오리들이 나라를 좀먹어 들어감.




조선이 쇠약해져가는 시기, 세계는 '제국주의'의 폭풍에 흽싸임.

서양 열강들은 무력을 통해 중국과 일본의 문호를 열어 젖혔고, 조선까지 찾아오게 된다.

개화파, 갑오개혁, 동학농민운동, 을미사변, 독립협회, 대한제국 선포.




정조 1800년 6월, 머리와 등에 작은 종기가 났다.

보름이 넘어가면서 종기가 점점 커지고 피고름이 흐르며, 온 몸에서 열이 남.

'덥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짐, 6월 28일 죽음.

현대 사회에서는 별 것 아닌 질병들이지만, 과거에는 최고의 의학 혜택을 받는 왕까지 종기로 인해 사망했다.




조선 후기, 본격적으로 천주교가 유입되었다.

서쪽에서 온 학문이란 뜻으로 '서학'이라 불렸으며, 나중에는 올바르지 않은 이단이라 하여 '사학'이라고까지 불렸다.

조선에는 네 번의 큰 천주교 박해가 있었다.

  • 신유박해(1801) :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 등이 사형 당하고, 정약용은 귀양 갔다.

  • 기해박해(1839) : 프랑스 신부 세 명이 조선에 몰래 들어와 선교를 하다가 체포된 것을 이유로 박해가 벌어졌다.

  • 병오박해(1846) :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이 처형당했다.

  • 병인박해(1866) : 조선 최대의 천주교 박해, 6,000~8,000명이 넘는 신자가 처형 당했다.

한 번 박해가 일어날 때마다 수백, 수천 명이 죽었다.

조선은 오가작통법을 채택해 다섯 집을 1통으로 묶어 천주교 신자 발생과 고발에 있어 서로 연대 책임을 지도록 했다.




정조가 남긴 유산, 세도정치.

정조가 죽기 전, 그가 총애했던 김조순의 딸과 아들(순조)을 혼인시키기로 했다.

혼인하기 전 정조는 죽었지만, 혼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순조의 왕비가 된 순원왕후 김씨, 그녀가 안동 김씨 60년 세도정치의 받침돌이 된다.




조선 백성들, 성별 나이 불문하고 담배를 즐겨 피웠다 한다.

<하멜표류기>에, 조선에서는 네다섯살 아이들조차 담배를 피운다고 쓰여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담배라는 이름은 포르투칼 말 '타바코'가 일본을 거쳐 '담바고'가 되었다가 변한 것.

그 전에는 '남령초'라 했다. 남쪽에서 온 신령한 풀이라는 말.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밥을 짓는 일도 매우 흔했는데 다 만든 밥에 담뱃재가 떨어져 음식을 망치기도 했다.

'다 된 밥에 재 빠뜨린다' 라는 말이 아낙들의 흡연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회충을 앓는 아이들이나 입덧을 심하게 앓는 임산부를 치료하는 데 좋다며 담배 피우기를 권하는 일도 있었다 함.




정약용은 신유박해(1801년) 때 사교도로 찍혀 유배 갔다.

유배지에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했다.

과학, 문학, 의학, 언어, 천문, 역사, 지리, 철학, 윤리, 음악, 그림까지 다루었다.

정약용이 남긴 저작은 500여권이나 됨.

유배생활 14년째에 순조가 정약용을 석방하라고 명했으나 '석방 대상 죄인 명단 삭제 사건'이 발생.

4년을 더 유배지에서 보내다가 1818년 이태순의 상소로 겨우 풀려났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이나 정조의 초상화들은 실제 얼굴이 아니고, 모두 화가들이 상상해서 그린 것이라 한다.

조선 왕들은 어진(초상화)를 그렸는데, 임진왜란 등 몇 번의 전쟁으로 그 어진들이 불타 없어졌다.

임진왜란 후 간신히 구해낸 어진은 세조, 문종, 태조의 어진 뿐, 그 외 조선 전기 왕들의 어진은 모두 다 불타 없어짐.

세종대왕의 어진도 이때 불타 버려서 이후 그려진 세종대왕의 얼굴은 작가의 상상이지 진짜가 아니라 함.

조선 후기 임금들도 꾸준히 어진을 그렸지만, 이 그림들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시 한국 왕들의 어진을 모아다 부산의 관재청으로 보내 보관했다.

휴전 협정이 지난 1년 뒤, 부주의하게 켜 둔 촛불이 번져 불이 났고, 숙종, 정조의 어진들을 포함 수많은 보물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한다.

순조, 문조(효명세자)의 그림은 세로로 절반이 다 타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고, 철종과 원종의 것은 얼굴이 일부 남아있는 정도.

흠 없이 말짱하게 남은 것은 태조, 영조, 고종, 순종 뿐.




남편 잃은 부인을 '미망인'이라고 부르면 안됨.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안 죽은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헌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23대 순조와 24대 후손 중 왕족을 찾았으나 적당한 인물이 없었다.

22대 정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적절한 왕족이 나타나지 않음.

결국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 후손까지 찾고나서야 '이원범'이란 후손을 찾게 됨.

사도세자의 증손자, 사도세자와 후궁 사이에 태어난 은언군의 아들의 아들.

그 당시, 이원범은 강화도에서 평민처럼 농사일 거들며 살고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왕이 되었다.

이 사람이 드라마 철인왕후의 그 25대 왕 철종이다.

철종 또한 왕이 된 후 아이를 몇 낳았지만 모두 일찍 죽었다.

결국 철종도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34세에 사망.




후사 없이 철종이 죽고 난 후 22대와 정조의 이복 동생의 양자의 후손인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을 다음 왕으로 지목.

이 사람이 26대왕 고종, 그 당시 12세.

사실상 고종의 아버지인 이하응 '흥선대원군'이 고종 나이 20세가 될 때까지 국정을 이끌고, 각종 개혁을 실시.

이때 안동 김씨 세도를 밀어냄.

고종의 아내가 명성왕후.

고종의 어릴 적 이름은 '이개똥'이었다 한다. 진짜로.




지금 일본의 남쪽에 별도의 국가가 있었다.

티이완과 인접한 섬들로 이루어진 '류큐' 왕국이었다.

조선처럼 별도의 독립국가였는데, 1879년 일본에 의해 완전 점령되어 버렸다.

조선의 일제강점기가 이루어지기 불과 20여년 전 일이다.

그 '류큐'왕국이 현재의 '오키나와' 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대한독립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오키나와' 처럼 대한민국은 일본의 한 변방 도시가 되었을테다.




을미사변

1895년 을미년에 벌어진 명성왕후 시해사건.

고종의 아내인 명성왕후가 일본 병사들에 의해 살해 당하고 시체마저 불탄 사건.

이 참혹한 일에 일본 뿐 아니라 조선인 협력자들이 있었다 한다.

첫번째로는 흥선대원군(고종 아버지, 명성왕후 시아버지)

두번째로는 '우범선'을 비롯한 대대장들.

을미사변 협력자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했는데, 일본 여자와 결혼해 자식을 두고 살다가 자객에 의해 살해당했다.

우범선의 자식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한국으로 가서 농업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육종학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고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소개한 '우장춘' 박사이다.




'노다지'의 어원

No Touch = 노 터치 = 노 다지

고종 시대, 조선에서 손꼽히는 운산금광의 채굴권을 따낸 미국.

수많은 금을 캐냈지만 정작 힘든 일을 해낸 조선인들은 손도 대지 못하게 하느라고 미국인들이 수도 없이 "노 터치"를 외쳐, 노 터치가 변한 노다지가 황금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머슴과 노비는 엄연히 달랐다.

노비 : 자유가 없는 천민

머슴 : 돈 받고 일하는 자유인, 직장을 때려칠 수 있었다 한다.

'직장 노비'가 아닌 '직장 머슴'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이완용.

원래는 친미파였다가 친러파가 되었고 결국은 친일파가 되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99%84%EC%9A%A9

1909년 이재명이 이완용을 덮쳐 그의 옆구리와 어깨 등을 순식간에 3차례 찔렀다.

이완용은 살아났지만, 이때부터 얻은 폐쪽의 지병이 천식과 폐렴으로 발전하여 평생 동절기마다 크게 고생했고 훗날 사망 원인이 된다.

1926년 사망 당시 이완용의 나이 67세.

그의 재산은 늘어나기만 했는데, 특히 땅 재산은 1억 3천만 평까지 불어났다.

당시 조선인 가운데 왕을 제외하고 가장 부자라는 소문.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이완용과 이병길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

1992년부터 이완용의 후손들은 캐나다로 이민 간 장손주 이윤형을 대표로 조상 땅 찾기 소송을 시작.

그들은 1992년 서울대학교를 상대로 경기도 고양시 임야 2만 5천평에 대한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가 패소.

다시 1998년 7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일대 토지 2372m2(약 712평)에 대한 반환청구 소송을 내 승소했다.

반환받은 토지는 즉시 제3자에게 매각, 약 30억원의 매매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아직도 이완용과 송병준 등 친일파의 후손들은 친일 환수 재산 반환 소송을 여러 개 준비 중이다.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건국하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

고종을 마지막으로 조선 왕국, 막을 내렸다.

고종이 생각하는 조선이란 어디까지나 자신, 그리고 전주 이씨가 왕으로 군림하는 조선이었다.

고종의 5남인 의친왕은 독립운동을 하며 죽었지만, 그외 모든 조선의 왕족들, 흥선대원군의 손자들이자 고종의 조카들, 고종의 7남 영친왕 등 이들은 후작 작위를 받고 성실한 친일파로 살았음.

대한 독립 후 조선왕조가 부활하지 못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한다.

해방 이후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 외국에 있는 조선 왕족들 귀국 금지 시켰다.




고종의 며느리이자 순종의 아내인 순정효황후.

고종의 며느리이자 영친왕의 아내 이방자 여사.

고종의 딸 덕혜옹주.

이들 세 명의 여성은 마지막 황실의 공주이자 황후였으나.. 대접받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다 죽는다.




조선왕조실톡을 다 읽고 나니,

조선은 그냥 전주 이씨.. 안동 김씨..의 나라였단 생각이다.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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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 success go! go! go!

천주교 박해사건이 4차례나 있었네요. 언젠가 꼭 봐야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웹툰을 단행본으로 낸 책이지만, 은근 내용도 많고 유익한 책입니다.

지금도 그 세도를 잊지 못하는 토착 왜구 세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정순왕후말고도 순원왕후도 있었군요? 쯔즛....

이렇게 공부하셨으니 자녀의 한국사 공부는 아빠가 하겠드아... ㅎㅎ

읽고 기록한 후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습니다.
그냥 전주 이씨와 안동 김씨만 기억에 남네요. ㅎㅎ

어쩌면 저랑 증세가 그리 똑같을까요?
그래서 여기다 후다닥 기록해야 해요. ㅎㅎ

담배가 약인줄 알았다고 나라에서 권했다고 하죠~

오~ 그랬었군요.
그 당시 담배는 진짜 약효가 있었던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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