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기념일

in #kr5 years ago

XL-5.jpeg



 조용히 떠올리고 있다. 자정이 지난 깊은 밤, 작업실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조용히 춤을 추는 사이토 하루미치를. 오래 전에 읽었지만 아직 그가 내 마음속 어디선가 춤을 추고 있다. <서로 다른 기념일>을 읽고 나서 한 가족 안에서도 이렇게나 언어와 감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참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루미치와 그의 아내는 같은 농인이지만 각각 음성언어와 수화언어를 쓴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아이를 아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지켜주며, 꾸준히 글로,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서로 다른 기념일>은 그렇게 해서 모인 시간들의 자취의 모음집이다. 처음 이 책을 집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아빠의 에세이'란 점은 다양하게도 나의 수많은 편견과 예상을 빗나갔기에 적어둔 책 메모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었다. 거진 한 계절동안 마음에 아련하게 품어왔나 싶다. 그러므로 이 책을 추천해준 스텔라님께 감사를 슬쩍.

‘세계를 오로지 보면서 살아왔는데 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게 전부라는 생각으로 그 배후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무시한 셈이었다.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표면을 눈이 훑은 것에 불과하다. <서로 다른 기념일 중>



 책을 펴고 읽으며 가장 먼저 탄식했던 이 대목은 내가 늘 갈망해온 ‘통찰력’또는 ‘현명함’에 비추어 사유할 수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닌,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통찰력을 갈구해온지 오래다. 이 글은 ‘장애’와 연결된 맥락에서 쓰여졌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스스로 걸리고 넘어져온 지난 과거에 대한 성찰과,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빗대어 생각했다. 청인 이기에 청인중심 문화에 익숙하고, 또 그러한 시선을 가지고 살아온 내가 여태까지 놓치고, 무시하고 걸어온 상황과 디테일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정상가족(이성애로 결합한 부부아래)의 자녀로, (비교적 유년기엔) 중산층으로, 또한 이성애자로, 다양한 선택지를 골라 자랄수 있었던 배경을 갖고 지나쳐온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관찰하게 된 나의 과거는 참 부끄러운 순간이 많다.


 선천적 청각장애와 그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또 다른 모습과 생각들을 읽어 내려간다. 청각장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소리를 느끼는 기관인 내이에 장애가 있는 ‘감음성 난청’, 외이와 내이 사이에 무언가 이물질이 있는 ‘전음성 난청’, 이 둘이 한데 섞인 경우를 ‘혼합성 난청’ 이라고 한다. 원인에 따라도 설명하고, 책 곳곳에 난청에 대한 정의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일종의 치료나 방법 등 수 많은 일화들을 읽을 수 있다.


 수어 라는 음성언어와 다른 체계인 언어에 대해 오래 전 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책에서 처럼 청문화에서 자라온 나는 사실 수어가 '필요'한 적이 거의 없다. (얼마나 무심했냐면, 문자음성 자동변환 앱이라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을 정도니까...) 기억해보자면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었던 일은 한 두 가지 정도. 파리에 살 적, 하루는 우버를 잡아 탔는데 드라이버가 청각장애인이었다. (청각 장애인이 주변에 없다고 착각하고 살때였으니, 살짝 당황했었음) 어차피 내 목적지는 우버 어플과 그의 네비게이션에 자세히 나와있었고 심지어 결제도 자동등록 되어있었기에 이내 아, 그렇구나. 뭐가 문젠가 싶었다는 것.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할 줄 아는 수어 ‘고맙습니다’ 정도를 하고 내렸던 기억이 있다. 이 정도로 무지한 내게 <서로 다른 기념일>은 꽤나 울림이 큰 책이었다.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도 그렇지만 사이토 하루미치라는 사진작가이자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본 것도 좋았고.


 그는 세계는 ‘말’로 되어 있으며, ‘말’의 바다에서 태어나는 것이 ‘언어’라고 한다. 진정한 말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나에게 언어란 소통이었다. 촉감이든, 말이든, 시각적인 그 무엇이든, 상대방과 통하려 노력하는 것. 이 소통의 기본엔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진심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의 말을 잘 전달하려는 노력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면 대화는 통하지 않을 리 없다. 지난 날 나의 언어에 과연 배려가 충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사상, 종교, 성별, 나이를 초월한 인연을 쌓고, 눈빛으로 통하고, 마음으로 전하고, 대화로 나누는 그런 마음을 기술로서가 아닌, 사랑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살아왔다. 나의 ‘말’과 ‘소통’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길에서 만난 하루미치의 고요한 세계는 놀랍고, 부끄러웠으며 잔잔하지만 단단했다.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84
BTC 60995.11
ETH 1571.77
USDT 1.00
SBD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