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3만 피트 상공위에서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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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공 위, 비행기안에선 분명 앞으로 그 어떤 물체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이 공간이 멈춰있는 듯한 착각이 든달까. 이 착각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얼 할까, 조용히 둘러보았다. 우연하게 빈 내 옆자리 덕분에 살짝은 여유있는 자세로 앉아 숨을 쉬고, 음악을 튼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이러한 때 가장 유용한 면모를 보여주는 듯. 3만피트가 넘는 상공의 기압으로 힘들어하는 내 귀를 조금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앞의 모니터는 계속해서 비행기가 앞으로 움직일 루트를 바꿔서 보여주는데, 참 세상 좋아졌다 싶다. 어떤 항공에서는 와이파이도 된다는데, 아직까지 이용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된다면 참 신기할것 같다. 어디에요? 물어보는 연락에 태연히 나 지금 블라디보스톡 위야, 할 수 있는건가? 세상은 참 다양하고 많은 방법으로 지어져있고 굴러가는데 그 속의 작디 작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간다. 이 당연한 걸 깨닫게 해주는 곳이 나에겐 상공 위 비행시간이다.

 보통은 미국, 유럽 횡단을 주로 하는 나에게 3-4시간의 짧은 비행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짧아도 10시간, 길면 13시간 이상을 날아가는 비행을 주로 타기에 그 긴 시간동안 뭘 하느냐,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내느냐는 꽤나 중요한 이슈라고 볼 수 있다. 며칠 전, 아니 몇 주 전부터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가지만 또 이런 일은 막상 부딫혀 보면 (한달 전 13시간 비행을 마쳤을때는 다시는 밤낮 시차 바뀌는 이 지겨운 일을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며 돌아왔는데) 또 언제 걱정했느냐는듯 잘 굴러간다. 늘 머릿속 생각이 복잡하고 어렵지, 현실은 담담히 나를 반겨준다는 말.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잠을 청하거나 (또는 눈을 그냥 감거나), 영화로 시간을 때우기를 선택하거나 또는 책을 읽는다. 비행기 위에서 아이처럼 곤히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을 난 부러워한다. 이유로는 예민한 잠자리로 평소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나는 온갖 기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1시간 같은 1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여태 꽤나 많은 비행을 경험했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일 중 하나.

 컴퓨터에 쓸 글 목록을 꽉꽉 채워넣고, 들어야 할 앨범들을 정리하여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놓고, 읽을 책을 두권 챙긴다. 처음 비행기를 타자마자 읽을 한 권, 어쩌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을 때 피곤한 눈을 달래주기 위한 용으로 한 권. 확실히 모션픽쳐(영화)같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가야 하는 일보다는 글자를 읽는 것이 눈이 덜 피롭다.

 안타깝게도, 이번 비행때는 들고 탈 책이 없었다. 정신없이 나오기도 했지만서도, 한국에서 이북을 살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또다른 종이책을 살 생각을 못했다. (세상에 읽을 책이 없나, 의지가 없는거지!) 그래서 한편으론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잠을 단 한숨도 못자고 열 몇시간을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꽤나 괴롭기 때문에 이번엔 그 전날밤을 꼴딱 새고 비행을 택했다. 잠을 자고 시차를 맞추는게 몸에 무리가 더 안갈거라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신적인 괴로움보다야 그래도 피곤함에 지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낫지 않겠나 싶어 시도 해본 것이다. 결과는...뭐, 그럭저럭 만족. 11시간 반 비행중 6시간은 잔듯 하다. 물론 내 집 내 침대 위에서 편한 옷을 입고 깊은 잠을 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수면이였겠지만 그래도 벌게진 눈으로 그 시간 내내 상공 위에서 버티는 것보다는 훨 나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바로 인천에 도착 한 후의 시차적응이였다.

 몸은 단순히 자는 시간을 하루만에 달리한다고 해서 그에 따라 맞춰지는 것이 아니다. 주기적인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이기 때문에 밤낮 바뀌는 시차를 가진 곳으로의 장거리 비행은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에 한번 정도가 적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늘 적당히가 어렵다는..) 중간에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는데, 며칠 전부터 무리한다고 몸에 불균형이 일어났는지 피부가 뒤집어졌다. 가장 약한 부분은 피부이기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바로 표시가 난다. 스트레스를 조금만 받아도 바로 붉은끼가 슬금슬금 올라오고, 잠을 좀 푹 자고 스트레스에 비교적 자유로웠던 며칠을 보내고 나면 눈에띄게 매끈하게 피부가 차오른다. 거울 속 얼굴 컨디션이 신경이 쓰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손대지 않고 일단 서울에 도착하면 푹 쉬고 사우나로 지지기로 결심을 했다.

 매번 한국을 가면 늘 지키는 루틴으로는 몇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목욕탕과 바나나 우유, 그리고 떡볶이다. 목욕을 즐기는 편인 부모님, 또는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손을 잡고 동네 목욕탕을 간다. 아예 이용권까지 끊고 다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도 갈 수 있다는 좋은 점. 한국의 좋은 점 중의 굉장히 큰 비율을 차지한다 (자랑) 지금 사는 파리의 아파트는 욕조가 없기 때문에 참 아쉽다. 그 한(?)을 매번 한국에 갈때마다 조용히 푸는 것.

 사우나를 하는 도중엔 딱히 무언갈 먹지 않는데, 옆에 누군가가 계란을 먹는다면 예외다. 옆에서 까먹는 그 계란의 매끈한 속살을 보고 있자면 신들린듯 카운터로 걸어가서 천원어치 구운계란과 바나나우유를 주문하게 된다. 예전엔 천원에 세개였는데, 이젠 천원에 두개. 아직 한국 물정 모르는 나는 목욕탕의 계란의 가격으로 한국의 비싼 물가를 짐작할 수 있다.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면 갓 태어난 아기마냥 몸이 가뿐해지기에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드는…동시에 미세먼지로 급격히 더러워지기 때문에 다른데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간다. 마치 돈들여 미용실에서 머리하고 나서 집으로 가서 누워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모양새랄까? 가능한 깨끗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 친구들이 날 보고 싶다면 집으로 부르면 되니 노 프러블럼. 나 방금 목욕해서 엄청 깨끗하니 너가 집으로 오렴! 그리고선 친구들과 떡볶이를 시켜먹는다. 매운 떡볶이가 이젠 조금 버겁기에 살짝 중간 맛의 떡볶이를 택하는 약해진 모습. 예전에는 몇번 해먹기도 했는데 혼자 오래 살다보니 남이 해주는 음식이 좋기 때문에 받아 먹는 쪽을 택한다.

 떡볶이와 튀김을 먹고 친구와 이번 비행은 얼마나 괴로웠느니, 영화는 얼마나 볼게 없었는지, 다음엔 뭘 먹을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웃다보면 하루가 흘러간다. 말 그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나만의 루틴이다. 이 루틴을 겪지 않고 바로 바쁜 일정, 약속등을 소화하자면 분명 몸은 탈이 난다. 몸이 말한다. 얘! 너 한국왔는데 목욕탕도 안가고 너무 혹사하는 거 아니니? 계란에 바나나 우유 한번 가야지! 그럼 나는 예예, 그래야지요, 본부대로 합지요 하고 항복하는 수밖에.

 몸이 아프면 그 아무리 기다렸던 여행이라도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살살 쉬어가며 굴려줘야 한다. 피부 뒤집어지지 않고 비염과 각막염 편도염 이번엔 피해서 조용히 있다 오자 얘들아. 눈에 띄게 한국 공기 질이 급격히 나빠진 느낌을 최근에 받는다. 느낌만이 아니라 수치로도 보여주고 있으니 참 답답할 노릇이지만...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싶다. 공장식 축산이 문제인가, 중국발이 문제인가, 차 매연이 문제인가. 대기오염의 주범들은 쭉 나열되어 있는데 대책은 보이질 않으니...

 이럴땐 참 파리의 하늘이 그립다. 우울하고 회색빛이 가득한 하늘이지만 공기만큼은 맑고 시원하기에. 비가 내리고 난 후, 강가를 산책하면 조용히 올라오는 비 냄새 흙냄새가 그렇게 좋다. (물론 건물 사이사이 숨어있는 있는 복병 냄새는 알아서 잘 피해야 함)

 현재는 집이 두개인 셈이다. 파리에 하나, 서울에 하나. 내 마음 속에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확실히 두개가 된 것. 이쪽 어디를 정리하던 아니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늘어나던, 그냥 그 안에 채워져 있는 것들은 사랑으로,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또 어떤 시공간을 보내게 될지, 마음을 단단히 먹지만 또 시간이 지나 부딫히면 알아서 흘러갈 일이다. 담담해지고, 후회하지 않고 또 사랑을 전파하고 기운을 받고 돌아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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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서로 다른 나라에 집이 있으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지네요. ^^

저같은 경우엔 두곳이지만.. 더 많은 분들은 여행다니는 기분이려나요? ^^ 좋은 점보단 안좋은 점이 더 많은듯 해요.

장거리 여행할때는 식사 시간을 현지에 맞추면 보통 시차적응에 도움이 되더라구요. 주로 한국-미국 시차에서 쓰던 방식이라 한국-유럽은 다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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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ㅎㅎ 유용한 팁 감사합니다. 역시나 시간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더라구요. 한 일주일 걸리는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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