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의 기웃4] 내게 맞지 않는 옷 – 치킨왕국

in #kr6 years ago (edited)

1년을 꾹 참고, 마음속에 고이 고이 접어두고, 한자 한자 꼭꼭 눌러쓴, 정성스런 사표를 던졌지만, 오히려 관심을 더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나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년 간 일을 가르치고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회사 대표의 지시가 있었고, 난 그것도 모른 채 사표를 던졌으니, 나나 회사나 양쪽모두 그야말로 헐~ 이었던 거다.

매일 술은 안 먹겠구나 싶었고,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간다는 말도 있는데, 나름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내민 손을 덥석 잡고, 서울로 고고씽, 영업사원으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서울로 가자고~!!!)

고객사를 찾아 다니며, 이런 저런 교육도 해주고,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몇 년을 정말 재미있게 일했다. 주말이면, 봇짐 하나에 카메라를 둘러매고, 서울 곳곳을 구경 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성남의 복정동으로, 두 번째 자취방을 마련했는데, 그곳은, 대학교를 두개나 끼고 있고, 직장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었다. 자취방 근처엔, 늘 사람들로 붐비고, 누가 봐도 장사가 잘 되는 치킨집이 있었고, 사바사바 치킨이었다. 이름도 참…사바사바라니…

하지만 당시에, 통닭이 5,500원이었고, 가성비 최고, 맛도 훌륭, 그야말로 나에겐 땡큐 베리 머취였다.
퇴근 길에 한 마리 사 들고, 집에서 TV 보면서 맥주 한잔을 할 때 그 기분은….캬~

1,3,5,7,9…. 그런 말이 있다. 직장 생활 1,3,5,7,9 년째 슬럼프가 온다는 말…
신기하게도 딱 맞아 떨어지는 건지, 나에게도 그러했고, 다시 “나만의 일”이라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결혼 후엔, 성남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그렇게 장사가 잘되던 그곳이 자꾸 떠올라, 직접 발 품을 팔아, 조사를 하기 시작했었다.


(보신적 있으시죠?)

당시 사바사바 치킨은, 부산의 경성대학교점을 제외한 대부분이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가맹점들이 늘어나는 추세였고, 조사 당시, 전국에 98개의 가맹점들이 있었는데, 퇴근 후나, 주말이면, 본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가맹점 주소를 확인하고 직접 찾아다녔다.

두어 달 돌다보니, 50개가 넘는 가맹점들을 찾아가서 장사가 얼마나 잘되나 지켜봤고, 괜찮아 보이는 곳은 직접 들어가 먹어도 보고, 사장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그 중 장사가 잘되던 집과 잘 안되던 집만 적어 볼까 한다.

장사 잘 되던 집

조금 늦은 일요일 밤에 찾아 갔다. 손님도 뜸한 시간이라, 우선 주문을 한 후,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께 말을 걸었다.

“직장을 다니지만, 그만 두고 부산에서 저도 이 치킨집을 해볼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만약 아드님께서 이런 말을 한다면, 응원해주실 겁니까?”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부산에서 할 거니까, 경쟁의식 가지지 마시라는 뜻과, 조카 뻘 되는 내가, 아들을 들먹거리며 응원해주겠냐는 말은, 그만큼 장사가 잘 되냐는 의미로, 나름 머리 굴려 던진 질문이었다.

웃으시면서, 말없이 닭 튀기고 있는 젊은이를 가리키더니, “저 놈이 내 아들이오” 그러는 거다.

대학 졸업반인데, 취직대신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해서, 그렇게 함께 일하고 있고, 친동생 가족과 처남 가족들도, 자신의 가게가 잘 되는 걸 보고는, 다른 동네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나보고도 결혼을 했느냐, 아이들은 몇이냐며 친근하게 대화에 응해 줬는데, 자신도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며, 그래도 젊은 사람이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물어봐 주니, 자신을 알아주는 듯해서 고맙다며, 환대 아닌 환대를 해주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만... ^^)

아내분을 갑자기 부르시더니, 뭘 가져오라고 하시고는, 건내 받은 노트를 펼쳐 보이며 자랑을 했다.

“매출 장부”

“이렇게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여길 봐요… 총 월매출이랑 순수익…”

다른 건 기억 안 나고, 월 순수익이 1,000만원이 넘었다. 지난 해 역시 1,000만원 이하로 떨어진 적 없는…

사바사바 치킨은 배달은 하지 않고, 치킨을 내세운 술 파는 가게다. 사바사바의 컨셉이 그렇다.

향후엔, 패밀리 레스토랑스럽게 인테리어를 꾸미기도 했지만, 어쨌든, 치킨을 내세운 술집이다.

즉, 술 매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잘되는 집의 비법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친근하게 대해 주는 사장님의 모습과, 아내분과 아들 역시 밝은 표정으로 내 집에 온 귀한 손님 대하듯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손님들에게는 손주만난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더 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 모든 장사의 기본이자, 장사 잘되는 필수 요건이 이런게 아닌가 싶다.

장사 잘 안 되던 집

이곳은 같은 사바사바였지만, 분위기가 사바사바스럽지 않았다.

마흔 중반 정도로 보이던, 여사장은, 흡사 Bar의 사장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양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오후 5시쯤 오픈을 할 때 찾았는데, 손님이 없어,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손님 보다는 퇴근하고 오는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라고 했다. 손님들의 네임태그가 붙어있는 양주 병들이 벽면 한 켠에 진열되어 있었고, 뭔가, 치킨집이라는 편안함 보단, 뭔가 어색한 조합의….

치킨집이 맞긴 맞는데, Bar 느낌이 느껴지는 정체가 모호한 그런 술집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짙은 화장에 메니큐어 칠한 손톱, 화려하게 차려입은 의상까지…

누가 봐도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의 모습과는 많이 멀었다. 닭은 고용한 아주머니가 튀기고, 주방일도 함께 본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아주머니가, 이곳 사장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장사는 어떠세요?”

“뭐, 단골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되긴 하는데,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그래요.”

“본사에서 양주도 공급해 주는 건가요?”

“아…이건 그냥 제가 따로 구해서 판매하는 거예요. 가끔, 양주 찾는 손님들이 었어서, 가져다 놨는데, 한 병 두 병 늘어나네요”

이 사장님은 그냥 Bar를 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두 팔 걷어 주방을 관리하고, 홀을 관찰하고, 손님들을 대접하는 게 아니라, 여윳돈이 있으니, 장사나 한번 해볼까…하는 그런 마음으로 카운터만 지키는 초짜 사장님 느낌이랄까…

그렇게 잘되는 집과 잘 안되는 집을 몇 번 더 찾아가 길 건너에서 관찰을 했지만, 역시나 잘 되는 곳은 잘 되고, 안되는 곳은 안되었다.

그렇게 전체 가맹점 중 절반이 넘는 곳을 직접 다녀보고, 드디어, 본사에 연락, 미팅 약속을 잡고, 찾아가서 상담을 했다.

본사의 위치는, 성남 모란역 근처로 기억하는데, 지금 인터넷을 뒤져보니, 홈페이지는 폐쇄되었고, 가맹점들도 많이 줄었으며, 폭망의 느낌이 드는건 기분 탓일까....
경쟁이 심해서 인지, 본사의 갑질(납품 재료 폭리 등)이 심해서 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가맹점들이 싸~악 사라졌다.

암튼, 30명쯤 되는 사람들이 있는, 꽤나 있어 보이는 사무실이었고, 회의실에서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계약서와 두툼한 약관을 받아 들고 나왔다.

그렇게 본사까지 찾아 갔지만, 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미 질문을 하나 하고 있었다.

과연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있을까? 결국엔 치킨집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음식 장사는 자신이 없었다.


(저도 화가 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치킨을 내세운 술집이다 보니, 늦게까지 운영을 해야 한다. 즉,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면, 모든 시간을 그곳에 올인 해야 하는데, 과연 매장에 내가 갇혀 지낼 자신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파는 업이라는게, 돈 벌자고 대충 만들어 팔아서도 안된다.
요리 연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바른 먹거리를 제공 해야하고,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물론 돈 벌자고 하는 것이라 원가 계산과 수익 계산도 해야 하지만, 돈이 우선시 된다면, 오래 못간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구경 좋아하고, 사람만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한마디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내가, 매장에 갇혀 하루 종일 닭을 튀기고, 손님을 응대한다?

“쟈니야, 이게 너 한테 맞는 옷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진지하게 고심한 끝에, 음식장사는 내게 맞는 옷이 아니란 걸 결론 내렸다.

몇 개월간 그렇게 찾아다닌 결과 치곤 허무함이 묻어나는 엔딩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시간만 낭비한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와 유통과정, 프랜차이즈에 대한 현실을 생생하게 배웠다. 프랜차이즈 박람회를 그렇게 다녀 봤지만, 어디 장사 안된다고 하는 곳이 있었던가. 모두 자기 브랜드는 다 대박 날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제 운영하고 있는 가게의 가맹점주님들을 만나보면, 본사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하신다.
가공되지 않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과 진실들을...

“그래…치킨은 못 튀겨도, 세상 그 누구보다 치킨 잘 먹는 쟈니로 살자. ^^”

쟈니는 그렇게 또 회사 탈출을 실패하고, 음식 분야를 제외한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게 된다.

멋진 손글씨 만들어주신 @sunshineyaya7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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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노래자랑 레전드 짤 ㅋㅋㅋㅋㅋ
쟈니님의 생생한 경험담 너무 재미있습니다~
회사 탈출은 모든 직장인의 꿈인데...저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니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ㅠ,ㅠ

애써 부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냉정한 현실 앞에선 마냥 긍적적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언제나 묵직하게 눌러오네요. ㅠ ㅠ 저나 기리나님이나 또, 많은 분들께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면서 각자의 길을 잘 찾아나갈거라 생각합니다. 화이팅합시다요~ ^^ 홧팅!!!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재밌게 잘 봤어요 ^^
잘 먹는게 치킨과 커피라지만...너무 많아서 엄두도 못내는게 치킨과 커피네요^^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워낙 먹을게 많은 세상이고, 경쟁도 심해서, 소비자 입장에선 좋지만, 공급자 입장에선 만만찮은 시장인듯하네요. 자영업자 분들 화이팅입니다.

정말 헐~~~ ㅎㅎ
사장님께서 쟈니님을 잘 본 모양이네요~ 서울로 가즈아^^
시바시바치킨? 이런 치킨도 있었나요? 전 처음 들어보는 거군요!
50곳이 넘는 가게를 직접 찾아다녔다니... 정말 대단한 쟈니님^^
장사가 잘 되는 집은 뭔가 달라도 다르더라구요!! 손님을 대하는 것부터... ㅎㅎ

시바시바 아니고...사비사바....

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대충 알아듣자구요!

맞습니다. 사람 마음을 잡는 것 만큼 확실한 영업은 없는모양입니다.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하겠지만, 오는 손님들에게 따뜻한이 느껴지는 말 한마디가, 단골을 만드는 거 같네요. ^^

쟈니님 이야기는 너무 신기한게,
생판 모르는사람한테 비기를 술술 알려준단말입니까!!!
키햐.
신당동 고추장 비법도 알아올 쟈니님이시라니까요~

ㅎㅎㅎㅎ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듯 합니다요. ^^
사실은 문전 박대 받고, 소위 까인적도 많습니다 ㅠ ㅠ
장사도 안되는데, 귀찮게 한다고.... 물어본게 없어서 적지 못해서, 인터부 성공한 것만 올리게 되네요. ^^;

우와~ 이 엄청난 내공의 글...
요즘 신규 사업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서 더더욱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귀한 나눔 감사해요. ^^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 든 표범이든, 저 역시 늘 어슬렁 거리는 느낌입니다. ㅎㅎㅎ
신규 사업이 뭐가 될 진 모르겠지만, 성공적인 런칭과 장기적이고 안정적 수익이 나셨으면 합니다~ 화이팅~!!! ^^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찾기란 어려운것 같아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또 너무 찾다보니 멀 찾고 있었는지도 헤깔리고~
그래서...전 다시 회사입사를 해버렸습니다~지금은 오히려 맘이 편하네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또 너무 찾다보니 멀 찾고 있었는지도 헤깔리고~"
정말 공감합니다. 저 또한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더 어렵단 생각이 듭니다.
시장도 빨리 변하고, 자본 싸움에 영세 업자들은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쟈니님 창업 전문가 맞나요??
정말 이렇게 발품팔아 인생의 한 막을 창업하고 계시는 느낌이예요..

부끄럽습니다. ^^; 창업전문가 근처도 못되는 소박한 1인입니다. ^^
뭔가 열정은 가득한데, 표출은 못하고, 열정만 더 키워가는 1인....^^;;;
남이 시키는 일보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아직 능력이 부족한가 봅니다. ㅠ ㅠ

치킨 잘 먹는 쟈니로 살자 ㅎㅎㅎㅎ

아~ 그나저나 쟈니님 정말 대단하신 집념 ^^ 멋지시네요. 모든 것을 다 파헤친 후에 내린 결정이라 결코 후회도 없을 것이고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잘 파헤쳐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요. 생각 많은 저 읽을때 마다 배우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의 실패 후엔 두번의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냉혹한 현실이라, 큰 결정일수록 더더욱 신중해 지네요. 포기 하지 않는다면, 힘들어도 이 악물고 버틴다면 반드시 기화는 온다는 말을 믿으며, 오늘도 세상 여기 저기 기웃거려 봅니다. ^^

저도 한때 커피샾 창업을 꿈꾼적이 있었는데... 그냥 지옥이겠더라구요.ㅠㅠ
그냥 회사나 열심히...어흑..

저도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회사 생활을... ㅠ ㅠ
제 옷에 맞는 옷을 찾을 때까지, 여기 저기 기웃 거려봅니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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