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3 기록] 스팀잇은 블록체인 도약을 향한 시험 무대

연어입니다.


일전에 글로 적었듯, 고1 때 반장의 행동에 격분했던 나는 고2때 반장 선거에 출마하였고 학우들의 지지 덕분에 학급 임원이 될 수 있었다.

선배 고3들은 대입 시험을 앞두고 있고, 후배 고1들에겐 고교 생활 적응과 한국 특유의 장유유서 문화란 벽이 있다보니 학생들이 맡아야 할 일들은 자연스레 2학년생들이 주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모교는 비교적 신생 학교였는데 민주국가의 국정 시스템을 본따 만든 체계가 있었고 그 운영 주체는 엄연히 학생들이었다. 전해 듣기론 선배들의 공이 컸다고 하는데 당시만해도 꽤 권위적인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교장 선생님 이하 교사들의 동의를 얻어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대충 시스템은 이렇게 돌아갔다. 고1, 2, 3 모든 학급의 반장과 부반장은 대의원이 되고, 특별히 고2를 중심으로 학생 회장 부회장 후보들이 나선다. 고1이라고 해서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운영 책임과 권한이 주로 2학년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회장 부회장 입후보와 동시에 선거관리위원장을 대의원 투표로 뽑는다. 어떻게 하다보니 선거관리위원장을 내가 맡게 되었는데 공정하고 원활한 선거 관리 감독이 임무였다. 선거관리위원장은 대의원들의 동의하게 관리위원을 선출하고, 이들과 함께 2주 정도 되는 선거운동을 관리 감독하며 전체 학생들에게 그 과정을 공개한다.

전통적으로 대의원들은 부회장 후보로는 나서도 회장 후보로는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고2가 되면 자신이 학급 임원을 해보고 싶은지 학생 회장이 되고 싶은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쨌거나 학생 회장단 선거는 학교 축제와 더불어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가장 큰 행사였고 선생님들은 필요에 따라 자문 역할만 맡을 뿐 모든 권한과 진행은 학생들 스스로 해낸다.

1, 2, 3학년 모두 투표인단이 되어 투표에 임하고 마침내 민주적인 승부를 통해 회장단을 가린다. 선거가 끝나면 선거관리위원장의 조사 발표와 대의원의 평가를 거쳐 학생들의 동의를 매듭짓고 비로소 학교에서 정식으로 회장단 임명을 승인, 공표한다.

각 학급별로 반부반장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들이 국회의원의 역할을 맡았다면, 전체 학생투표를 통해 선출된 회장단은 일종의 행정부 대통령 역할을 맡는다. 일단 회장은 그 권한으로 여러명의 학생부장을 선발한다. 총무부장, 규율부장, 체육부장 뭐 그런 식이다. 그리고 이들이 국무의원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회장이 된 학우와는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이 친구의 지목 때문에 나도 학생부장을 하나 맡게 되었다. 중립 역할의 선거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에게 학생부장 직을 맡으라하니 난처했는데 주변 친구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회장단과 학생부장들이 해야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들 있으니 누군가 일을 맡아주면 덕분에 슬쩍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학생부장까지 맡다보니 슬슬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각 부서별로 예산을 책정하고 대원들에게 동의도 구해야 하고, 결산 보고와 사용내역 심의 받아야 하는데 이 녀석들이 까탈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성방가 까지는 아니지만 대의원 회의에 불려나가 온갖 해명과 논쟁을 벌여야 했다. (내가 정치에 관심을 지운건 이때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지도...)

앞서 말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 스스로의 책임하에 주도하고 실행해야 했다. 그런 전통이 적지 않은 시간 이어져왔던 것이다. 한번은 우리 학교의 학생 자체 운영 시스템을 당시 교육 개혁을 주도하던 시민단체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갓 10대 후반의 학생들이 실행해 나간 이 일련의 시스템이 뭐 별거냐 할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니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시스템을 꾸려나가보는 값진 경험을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큰 기회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입장에 서있는 학우와 선후배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내야 했고, 모든 일을 계획하고 공표하고 기록하고 검증하며 승인을 얻고 감사를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스팀잇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론 분산원장으로 부터 출발했다. 원장을 분산한다는 것. 디지털 특성상 사본 또한 원본의 위력을 가지는데, 이 원본들을 모두가 공유하고 살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누구는 원본을, 누구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사본을, 또 누구는 원본도 사본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아니다. 결국 모두에게 공유되었기에 진위 자체엔 시비를 걸 수 없다. 문제는 그 해석과 입장이다.

블록체인은 변조할 수 없는 진실된 기록으로 이어지지만 숫자를 넘어서 문자를 매개로 엮이는 스팀잇 세상에선 서로간의 분쟁을 야기한다. 이 갈등을 해결해주는 법관도 없고 중앙의 지도부도 없다. 그저 불특정 다수가 모여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 블록체인 기반 커뮤니티인 셈이다.

그러니 스팀잇은 블록체인도약을 향한 최고의 시험 무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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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주 좋은 시도이고 과정이겠네요.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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