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4] 나비효과

in #kr5 years ago (edited)

연어입니다. 상해에 설립했던 현지 법인 정리 준비를 위해 모 부장님과 제가 출장을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상해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하지만 역시 듣던대로 중국에서는 공항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영어를 배제한 채 의사 소통을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나마 중국어 몇 마디라도 아는게 저였던지라 얼마 되지 않는 단어와 표현들을 쥐어짜며 하나씩 대응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간단히 행선지 얘기를 나누고 나서 기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척 봐도 외지에서 온 우리 일행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는지 기사님이 먼저 말을 건네시더군요. 한국말 버전으로 풀어보면 대충 이러했습니다.

  • 어디서 오셨나요?
  • 아, 한국에서 왔습니다.

  • 오~ 대한민국! (따~한~민~궈)
  • 네, 사실 한국 땅은 그닥 크지 않은데 우리는 스스로 대한민국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땅의 면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성격 좋아보이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사는) 중국 기사님과 재밌게 얘기해 보려고 해번 말이었지요. 그런데.. 위트랄까 농담이랄까.. 어쨌든 저의 이 대답이 재밌게 들렸던지 기사님이 연실 박장대소를 하시더군요.

  • 그래 맞아요, 대-한-민-국! 그래도 한국 정도면 큰 거에요.
  • 에이... 상해 인구가 한국 절반은 될걸요?

이걸 한국말로 풀어서 이렇지, 정작 제가 썼던 표현들이야 무진장 쉬운 단어들만 나열한 것에 불과했지요. 중국어를 좀 아시는 분들은 이런 표현을 단어 몇개로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헌데, 이뿐만이 아니라 구글맵을 보고 대충 방향을 가늠해서 제가 한 두마디 한게 또 화근(?)이었지요.

  • 왼쪽으로요. (좌변 左边 )
  • 아, 오른쪽이요. (우변 右边)
  • 뒤로요. (후면 前面)

뭐, 이런 표현이 어려운 것은 아니에요. 수학 시간이라 생각하고 '좌변 - 우변 - 전면 - 후면' 뭐 이런식으로 얘기하면 되거든요. 근데 이 단어를 막상 중국어로 발음해 보면

쭈오비앤 - 요우비앤 - 치앤미앤 - 호우미앤..

뭐, 이렇다 보니 얼핏 들으면 생소한 외국어 단어처럼 들리지 않았겠습니까? 이쯤되면 부장님께서 이렇게 생각을 하실법도 하죠.

'오... 연어가 중국어 좀 하는데?'


한국에 돌아와 저와 출장 다녀온 보고겸 얘기를 하시던 모 부장님이 이런 말씀을 꺼내셨지요. 이게 어떻게 보면 이후 저의 역사에 있어 순간의 시작점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연어가 말입니다, 인재에요 인재! 영어면 영어, 중국어면 중국어 다 통하더라구요. 아, 글쎄 기사님하고는 중국어로 서로 깔깔거리면서 얘기도 나누는걸 제가 봤다니까요!"

함께 출장길에 고생했던 저를 북돋아 주시려고 칭찬겸 좀 오버해서 얘기해주신거긴 한데, 실상 따지고 보면.. 아시겠지만 공항이나 호텔 같은 서비스 업종에선 어지간한 영어들은 다 알아서 이해해주고, 같이 비영어권 현지인과 영어를 하게 되면 일종의 '인터내셔널 영어'를 쓰는거라 그닥 서로 피곤하게시리 어렵게 얘기할 필요도 없지요. 게다가 제가 쓴 중국어야 기껏 저정도 수준.. (단어 몇 개 조합하면 얼추 뜻이 통하거든요)

어쨌거나 부장님의 이 극성스러운 평가가 순시간에 '현지 법인 정리'에서 '현지 법인 재개'로 바뀌어 버리고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요 ㅋ), 누군가 나가서 교통정리를 할 사람으로 저를 우선순위 1위로 만들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물론, 최종 의사는 제가 오케이를 한 것이지만 이후 내용은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 상해 파견
  • 현지 적응, 안착, 기초 임무 완수
  • 어느날 저녁 심심풀이로 양꼬치 먹으러 가다가
  • 아이패드로 주식 차트를 보고 있는 사과 행상을 하는 아저씨 목도
  • 다음날 중국 가상화폐 거래소 물색 (OK코인, 후오비 발견)
  • 중국 인맥 총동원해서 가입 완료 (중국 현지 거주인 자격 증빙)
  • 한국 거래소에 있던 비트코인 이체, 일부 (한국에 없던) 라이트코인으로 변환
  • 중국에서 받은 월급 추가로 들이 박아넣음. (ATM으로 진짜 현금 집어넣었음)
  • 비트코인, 라이트코인 매집한답시고 되는대로 추가매입

... 그리고 최종 결론은...
외국인 계정 블락(Block), 코인 및 현금 인출 불가.
진짜 최종 결론.. ㅈ ㅔ ㄴ ㅈ ㅏ ㅇ


이것도 나비효과라면 나비효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끔은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가 내가 중국 거래소 계정을 블락당해 투자해둔 모든 코인을 날려먹게 된 시작이 어디였을까 생각해보면.. 왠지 그 때 그 기사님과 키득키득거리며 담소를 나눴던게 아니었을까 하며 농담처럼 웃어 넘기곤 합니다.

헌데 이게 나비효과의 과정이라면 지금 거기서 그칠 것이 아니겠죠. 몇 십억이 손아귀에 잡히지도 않은 채 날아가 버렸지만 그 때문에 나중에 암호화폐로 몇 백억(?)은 벌어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농담삼아 호언이라도 하게 되었으니.. 누가 압니까? 정말 몇 백억 벌게되어 '나의 성공 스토리'에 이 에피소드를 꼭 넣어야만 페이지가 채워지는 사람이 될지 말입니다.


왠지.. 작은 사건 하나가 불씨가 되어 점점 더 깊고 광범위한 사건으로 옮겨가는 상황들을 티비를 통해 보게 되니 그냥 이런 잡설이라도 끄적거리고 싶은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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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의 대표적 사례(?) 군요. 중국어에도 능통하신 능력자!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말 참 싫어하는데요. 그냥 한국이나 남한이라고 부르면 될 걸 자기 얼굴에 스스로 금칠하는 느낌이랄까요. 예전엔 국어책에나 나오지 일상에서 잘 안 쓰던 말이었는데 아마도 2002년 월드컵 이후로 많이 쓰는 거 아닌가 합니다.

암튼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때문에 대화도 이어지고 결국 나비가 훨훨 날고 말았군요... ==;

재밋게 읽었어요 ~
언젠가 대박나실듯 ^^
그땐 보팅 크~~~게 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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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듣는 연어님 중국 코인 투자 사태(?) 이야기네요.ㅎㅎ
언젠가 그 열배 이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몰라서 여쭤보는데요..그 거래소에 있던 코인들은 인출만 못하고 계정에 살아는 있는건가요? 아님 영영 못찾게 되는건가요? 제 코인도 외국에 있는데 큰금액이라 살짝 걱정이 되어서요...사실 어느날 거래소에서 일방적으로 동결 시키면 저도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외국 거래소보다는 한국 거래소에 두는게 낫다고 봅니다. 해킹 보안 측면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에 대한 권리 주장 측면에서요.

중국 공산주의는 바꿔말하면 공산당 독재주의인데, 이게 법 위에 있는지라 개인의 재산권 같은건 안중에 없어요. 그나마 저같은 피해자들이 중국 거래소 본사에 찾아가 하도 하소연을 하다보니 그나마 최근엔 코인은 빼가게 해주는거 같은데, 저의 경우엔 코인은 갈취해 가더라도 현금(이것도 한국사람다운 자본주의 사고방식일지도..)은 뺏아가지 못하겠거니 해서 코인을 현금(결국 이것도 도토리죠)으로 바꿔뒀는데 이걸 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더 열받는건 중국 okcoin측에서는 코인으로 바꿔서 빼가라는데 이미 거래소는 정지 상태라 거래가 이루어느질 수 없거든요.

그럼 너희들이 새로 만든 인터내셔널한 거래소로 내 금액들을 옮겨달라고 요청해도 그건 또 거부합니다. 그냥 다 포기한 상태에요. 몇십억 기회 날려먹었다 치고, 제 인생에서 앞으로 중국과 돈 관련된 일은 안하겠다는 결심을 얻게 된것만 해도 크게 보면 남는 장사라 생각합니다. 더 크게 당할 수도 있는걸 미리 경험했다 치는거죠. ㅎ

... 그리고 최종 결론은...
외국인 계정 블락(Block), 코인 및 현금 인출 불가.
진짜 최종 결론.. ㅈ ㅔ ㄴ ㅈ ㅏ ㅇ

아 진짜 생각만해도 열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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