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능 불탐과 화상흉터치료
성종은 과색과 과음으로 인해 폐결핵에 걸린 채 등창 합병증 등으로 죽음을 초래했다.성종이 잠든 宣陵선릉은 유난히 많은 변고를 겪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능이 파헤쳐지고 재궁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인조 3년(1625)에는 정자각에 화재가 나서 수리를 했고 다음 해에도 두 번이나 능 위에 화재가 발생했다.
조선왕들의 생로병사, BF북스, 강영민 지음, 페이지 199-200
宣陵선릉은 사적 제199호. 1495년(연산군 1)에 조성되었다. 1530년(중종 25) 정현왕후 윤씨가 사망하자 그 옆에 윤씨의 능을 조성했다. 세조의 유교, 즉 "원(園)·능에는 석실이 유해무익하니 석실과 사대석을 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왕릉에는 석실을, 왕후릉에는 병풍석을 만들지 않았다. 그밖의 상설배치물은 〈국조오례의〉식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선릉 앞 문인석의 신장은 3m 내외로 봉분의 높이와 비슷하며 얼굴은 중후한 느낌을 주도록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몸체와 비교하면 비율이 맞지 않고 사각주에서 가공한 조각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모자의 높이는 53㎝로 턱 아래에서 박두끈으로 매어져 있다. 뒷면의 양 다리는 어깨 아래의 포(袍)가 부드럽게 내려오는 실감있는 표현을 나타내주고 있다.
왕릉의 포 형태는 심한 마멸로 인해 전체적인 조각수법을 알 수는 없으나 왕후릉의 문인석에서처럼 완연한 깃과 파임이 적은 반령, 양손으로 홀을 잡았으나 포에 완전히 가려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매에는 4개의 융기선이 아래로 곡선을 만들어 너비가 143㎝가 된다. 첩리 소매너비도 70㎝가 되며 수직으로 내려져 있다.
성종 이후 조선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왔는데 선릉도 비극적인 역사를 겪었다. 능이야 불타도 잔디를 다시 깔면 되는데 사람은 화상흉터가 발생할 수 있다.
선릉역과 가까우 강남역에 있는 자향미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는 화상흉터침인 BT침을 이용해 화상흉터를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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