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16
김장근(16포병대대 A포대장)
김장근은 6월 25일 당시 제16포병대대 A포대장으로 보직되어 있었다. A포대는 7연대를 직접 지원하는 포대이기 때문에 평소부터 7연대 중대장 및 소대장들과는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육군군사연구소 면담과정 중 2016년 7월 18일 한차례의 증언에 응했다. 그의 면담내용은 다음과 같다. “(6월 25일 있었던 일에 대한 증언 부탁에 대해서) 옥산포 조금 지나 지서가 있는데, 그 지서 옆에 우리 예비진지가 있어요. 거기로 포 2문을 가지고 갔더니.... (옥산포 예비진지에 있을 때가 몇 시쯤인가?) 그게 아마 10시 전이에요. 6시쯤에 예비진지에 들어가서 포를 쏘고, 10발을 쏘고, 쏘니까, 이미 그들은 38선 넘어서 넘어오다가 우리를 보고 박격포를 쏘고, 집중사격을 받아서 위험하니까, 철수해서 뒤로 이동했지요. 소양강 넘어서 그 곳에서 우리 A포대는 사우동에 방열하고 대기하는데 적의 지프차가 소양강 쪽으로 정찰을 나온 거예요. 그것을 보고 연막탄을 쐈지요. (중략) 25일은 조용했어요. (심일과 같이 계셨어요?) 그렇지. 심일이는 대전차포, 우리는 포 두문 가지고 나갔다가 쟤네 박격포가 우리 아군을 쏘니까 할 수 없이 우리는 불리하니깐 후퇴를 해가지고.....심일이 대전차포를 끌고 나와서 옥산포 길옆에 방열을 해 놓고, ‘적 포를 공격할 것이니 중대장님 먼저 가십시오.’ (중략) 그 상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급했어요. (중략) 첫발 쏘는 것 까지는 봤어요. 쐈더니 전차가 망가지지 않고 끄떡끄떡하고 넘어와서 심일이 도로에 방열한 포를 꺾고 넘어왔는데 심일은 그 옆으로 빠져서 도망치고 넘어왔다. (전차가 포를 밀기에 심일이 빠져나와 도망갔다?) 명중은 했지만 적의 전차가 파괴가 안 되고, 포를 밀고, 넘어지고, 심일은 거기서 얘들 데리고 지휘하다 넘어오니까 옆으로 빠져서 도망치고, 후퇴해 가지고..... 그 이후는 심일이는 포를 빼가지고 그거 갖고 딴 데로 이동했다는 그런 말은..... 그거는 내가 보지를 못하니까 몰라요. (심일이 16포병대대가 북진할 때 같이 다녔습니까?) 같이 다니지는 않았지. 심일이 하고 나중에 만난 것은 초산 들어갔을 때 대전차포도 초산까지 들어왔고, 나한테 찾아와서 ‘중대장님 나 1중대로 명령이 났습니다.’ 내 중대로 명령이 났다 이거예요. 그래? 그럼 상당히 좋아서 잘 됐다고.... 그런데 그 말 하고 그날 저녁에 완전히 분산 당했어요. (심일의 마지막 소식은?) 마지막으로 본 건 초산에서.... (심일의 전사는 언제 들었는지?) 이거 큰 문제인데, 심일이 넘어와 모 사단 수색대에서 근무하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의심이 가는 것이 과연 심일이 죽지 않고 나왔느냐?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거야. (중략) 그 사람들은 7연대에서는 수색대에서 근무하다가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반신반의 하는 것이지요. (안태석이 탈출한 이야기를 아는가?) 응 그 이야기. 심일이 하고 묘향산까지 같이 갔다 하면 신빙성이 있는 말일거야. (심일이 죽은 걸 전쟁 끝나고 들으셨습니까?) 몰라요. 듣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춘천에 심일이 죽어서 보충대 앞에 동상을 건립한다고 해 초청을 받았어요. (중략) 그때야 알았어. (중략) 나하고 같이 간 사람이 대위인데(8기생) 심일이 7사단에서 안했다고......(그에게서 심일이 이북에서 탈출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그런 이야기야. 그런데 수색 중대장을 하다가 죽었다고? 그것 참.....”
김장근은 6월 25일 오전 심일과 함께 옥산포에 있었으며, 심일이 적의 자주포를 파괴하겠다고 본인에게 힘주어 말했으며, 심일의 대전차포 소대가 대전차포 사격을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자주포가 대전차포 사격을 받고도 계속 전진해 심일 소대의 대전차포를 깔아뭉갰다고 증언했으며, 이로 인해 심일이 도망(후퇴)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여기서 자주포가 아군의 대전차포를 맞고도 계속 전진했으며, 심일이 대전차포를 유기하고 도주(후퇴) 했다는 것은 이대용 및 김운한의 증언과 일부 일치된다. 다만 대전차포가 적 자주포에 깔려 망가진 것이라는 증언은 다른 이들과 차이가 난다.
옥산포 전투 이후 심일을 보지 못했으나 초산에서 심일이 찾아와 자신(김장근)의 포대로 전속명령이 났다고 하여 함께 좋아했다는 증언은 옥산포 전투 이후 16포병대대를 따라다녔다는 김운한의 주장과는 차이가 난다. 하지만 심일의 포병대대로의 사단 전속명령과는 일치한다. 여기에 대해 합리적 추정이 가능한 것은 옥산포 전투 이후 심일은 뚜렷한 명령근거 없이 포병대대와 동행했지만, 이후 초산작전 즈음에 정식명령을 받고 이를 김장근에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추정일 뿐이며, 추가적인 확인과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김장근은 자신이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춘천에서 심일의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심일과 동기생(육사8기) 중 한 명이 “심일이 7사단에서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심일이 북한지역에서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며, 7사단 수색중대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김장근은 포병대대 포대장으로 심일과 소속이 달랐기 때문에 옥산포 이후 심일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는 인터뷰 내내 심일의 공적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있음을 표시했다. 그가 왜 이런 의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