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22

in #busy7 years ago

임부택(7연대장) 1

임부택은 생존했을 때, 자신의 회고록을 포함해서 모두 5차례의 증언을 남겼다. 가장 먼저 증언한 것은 1964년 10월 30일이다. 세부 증언 전문은 아래와 같다. “(그럼 적의 대전차에 대한 우리 방어는 57㎜ 대전차포를 요소에 배치한 것 외에는 없습니까?) 또 2.36인치 로켓포를 배치했는데 대개 적의 예상 진로가 화천인데 그리 중점을 두고 양구쪽으로 1문 배치하고 2.36인치 로켓포도 많이 보냈지. (그런데 대전차포 소대에 심일 소위가 전차를 두 대 파괴했다고 하는데 어느 곳입니까?) 그것이 춘천 옥산포이지 숲에 숨어가지고 00부터 쏘기 시작했단 말이야 그것이 적의 전차에 맞아도 끄떡끄떡 하면서 오고 했단 말이야 그러다가 00돌산에 배치해가지고도 않되서 결국은 미리 준비한 병에 휘발유를 넣어가지고 육박했지 결국은 뒤에서 불을 지른 것이지 여기서 사병 하나가 죽었지. 이름은 모르겠어. (어디에 보니까 그 당시 공격 한 것은 단신으로 되어 있더군요. 데리고 가기는 5명을 데리고 갔는데 나머지는 엄호를 시키고 공격은 심소위가 휘발유병과 수류탄을 가지고 했다고 하던데요.) 심소위가 휘발유 병을 가지고 했지. (결국은 최초의 태극무공훈장을 탔다고 했는데 정말 나왔습니까?) 그때 실버스타가 나왔지 김종수: 그때는 미국이고 한국훈장은 하나도 나온 것이 없어. 여하간 보고는 했으나 탔는지 안탔는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심소위가 행방불명이 되었지. 나중에 그 공로로 실버스타를 탔어요.

두 번째 증언은 1977년 4월 7일에 했다. 하지만 증언내용에서 심일의 공적과 관련해서는 언급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당시 같이 증언에 임하던 김명익(7연대 3중대장)이 자주포를 자신이 파괴했다고 주장했지만(26일 08:00시에 재반격을 실시했는데 적의 전차병들은 잠시 아군의 반격이 없자 방심하고 전차에서 나와 쉬고 있는 참이었다. 이때 내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여 전차병을 사살하고 휴대했던 권총을 시체에서 뺏고 전차는 병사들이 수류탄을 마구 집어넣어 1대를 파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임부택은 이것에 대해 제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세 번째 증언은 1982년 8월 27일에 실시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9연대 배속관계는?) 사단장 김종오 대령이 구두로 제19연대를 제7연대에 배속하였다. 분명하게 나에게 제19연대의 지휘권을 부여했다. (모진교 폭파장치 문제는?) 장치되어 있었으나 시일이 오래되어 폭파되지 않았다. (그리고?) 1950년 6월 20일경 적 전차병이 귀순한 후 서원고개에 57㎜ 대전차포 1개 소대(심일소위)를 배치했다. (제7연대의 춘천 철수 일시는?) 제19연대 주력이 춘천에 도착한 다음날(27일) 오전에 사단장이 육군본부 김백일 대령과 극적으로 통화한 후 전 전선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사단장은 춘천 사수 결의를 변경하고 홍천을 방어하는 것이 춘천에 투입된 제6사단 주력부대 철수의 관건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이날(27일) 저녁 제19연대는 홍천으로 이동하였다. 제7연대는 다음날(28일)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12:00경 전차 5대와 1개 중대 규모의 적이 소양교를 건너자 비로소 철수를 시작하였다. 봉의산 OP에 있던 나는 2시간 후 철수하여 석사동에서 병력을 수습했다. 적이 춘천 시내에 진입했을 때 57㎜ 대전차포가 저항했으나 저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연시킬 수 있었다. (춘천방어의 성공 요소는?) 첫째, 지형이 방어에 유리했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둘째, 각급 지휘관이 작전지휘를 훌륭하게 해냈다. 특히 각 대대장급은 OAC, 각 중대장급은 OBC, 또 소대장의 일부까지도 OBC를 이수케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셋째, 개전 1개월 전에 새로 지급된 M1소총(99식과 교체)의 사격술 훈련을 철두철미하게 주지시켰다. 그래서 명중률 높은 사격을 할 수 있었고 병사들이 자기 병기에 대해서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넷째, 적의 공격징후를 미리 알고 대비했다.” 세 번째 증언에서 심일의 공적과 관련해서 특별히 언급한 것은 없다. 춘천 전투의 성공요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심일의 자주포 파괴와 관련한 증언이 나오지 않았다. 심일의 자주포 파괴로 인해 전 전선에서 자신감을 갖고 적 자주포에 대항했다는 말이 개전 초기 각종 전사에서 등장한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을 관련 연대장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의혹을 남긴다.

네 번째 증언은 1985년 4월 26일에 실시했다. 2차와 3차 때와는 다르게 심일의 공적에 대해 증언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6.26일 적은 여전히 전차를 선두로 맹렬한 공격을 파상적으로 감행해왔습니다. 연대 대전차포 소대장 심일 소위는 용감한 부하 1개 분대를 차출, 특공대를 편성하여 수류탄과 휘발유병을 휴대하고 적 전차 침입로에 잠복 육박으로 선두전차 2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임부택은 네 번째 증언에서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한 날짜를 6월 26일라고 했다. 이 말은 기존 전사에 기록된 6월 25일과는 상이한 날짜이다. 확인이 필요하고 검증작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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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회고록(1996년 낙동강에서 초산까지)에도 심일의 공적과 관련된 내용들이 나온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일 중위는 말로만 듣던 적의 전차를 처음 보는 흥분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대원들을 격려하며 첫 발을 발사하였다. ‘꽝’하고 날아가는 포탄이 적의 SU-76자주포에 명중하였으나 잠시 멈칫하는 듯 하다가 다시 전진해오기 시작하였다.(중략) 다급해진 심일 소대장은 역골 남쪽으로 철수하여 이곳에 대기중인 나머지 1문의 대전차포와 합세하였다. 심일 중위는 ...... 화염병을 만들고 특공대를 조직하였다. 심일 중위는 5명을 선발하여 전차파괴요령을 일러준 뒤 옥산포 북쪽 수문이 있는 도로변 소나무밭에 대기시켰다, (중략) 3대 중 2대의 SU-76자주포가 다시 도로를 따라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순간 대전차포 2문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57㎜대전차포의 철갑탄이 무한궤도를 파괴하고 제2탄이 측면을 관통하였다. 그토록 당당해 보이던 SU-76자주포가 기우뚱거리며 정지하고 말았다. 그리고 포탑 해치가 열리고 승무원이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매복 대기중이던 특공대원이 속사를 퍼부으며 적의 전차병을 사살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심 소대장을 선두로 육탄특공대가 적의 SU-76자주포에 뛰어올라 수류탄을 포탑 속으로 밀어 넣고 특공대원들이 뛰어내리자 ‘꽝’하며 1번차가 화염에 휩싸였다. 뒤이어 2번차에서도 불길이 치솟으며 요란한 폭음을 내었다.” 회고록에서 증언한 내용은 그 동안 임부택이 증언했던 패턴과는 조금 다르다. 자주포를 파괴하는 과정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마치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처럼 정밀하고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회고록을 쓴 시점은 1996년이다. 그 동안 많은 전사책과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학습된 결과가 아닐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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