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故 심일소령 공적진위 확인-20

in #busy5 years ago

남병현(제16포병대대 인사장교)

남병현은 1950년 6월 25일 당시 제16포병대대 인사장교로 보직되어 있었다. 그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2016년 8월 5일 전화 면담이 이루어졌다.

면담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일을 아십니까?) 심일이 동기생인데 춘천의 7연대 대전차중대장인가 소대장으로 처음 나갈 때부터 내가 알고 있었는데, 나는 춘천 16포병대대에 있었어요. 그랬는데 6.25 나기 전에는 자주 만났는데 전쟁하느라고 만나지 못했다가 이북으로 올라갔을 적에 장소는 잊어버려서 모르겠지만 우연히 어떻게 한참 전투 중에 만났어요. 그런데 그때 만나가지고 얘기를 잠깐 하는데... 뭐... 그 당시 한참 전투 하는 때라 오래 얘기도 못하고 잠깐 얘기하다 헤어졌는데, 그 며칠 후에 전사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것이 지금 생각하는 다입니다. (그러면 심일이 이북에서 죽은 것은 확실합니까?) 예, 그건 확실해요. (심일이 육탄으로 적 자주포를 파괴한 것에 대해서 아십니까?) 들어보지 못했어. (한번도 들어보신 적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전사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죽었는지 따진 적도 없고 그냥 전사했다는 얘기만 그 후에 듣고서는 그 후에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16포병대대 인사장교를 하신 것은 맞습니까?) 예, 16대대 부관.. 부관이 인사장교에요. (저희 기록에 보병이었던 심일이 1950년 10월 22일부 16포병대대로 전속 명령이 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시는 것이 없으십니까?) 전속 안 되었어. (한번도 같이 근무하신 적이 없으시다는 얘기시지 않습니까?) 없어요. (정리하자면, 6.25 전쟁이 나고 나서는 한번도 못 만났다가 이북에 가셔서 처음 만나셨다는 겁니까?) 맞아요, 예.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참고로 남병현은 노환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통화는 제한되어 대담자의 질문은 남병현의 딸이 다시 큰 소리로 물어보았고, 대답한 내용은 남병현 (예)대령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녹취한 것이다.

남병현은 6월 25일 당시 16포병대대 인사장교로 보직되어 있던 장교였다. 이런 점에서 심일이 16포병대대로 전속여부에 대한 의혹을 풀어줄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선 남병현은 심일이 16포병대대로 전속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당시 상황을 토대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6포병대대로 전속명령이 발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6포병대대 인사장교였던 남병현이 몰랐다는 것은 당시의 복잡한 전투상황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중공군 공세로 철수하는 상황에서 남병현이 상급부대에서 발령된 명령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일의 16포병대대 전속문제는 계속 의문점을 남긴다.

심일의 전사지역에 관한 질문에서 그는 전투 중에 이북에서 잠깐 그를 만났다고 했다. 만나서 잠깐 얘기하고 헤어졌지만, 며칠 후에 그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심일이 이북에서 전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가 영월에서 전사했다는 기존 전사내용과는 배치되는 증언이다. 물론 그가 북한 지역에서 전사했다고 주장한 이대용을 비롯한 다른 생존자들의 증언과는 일치하는 부분이다.

심일이 육탄으로 적 자주포를 파괴했느냐는 질문에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심일이 자주포를 파괴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던 것으로 보인다.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변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전까지 심일이 자주포를 육탄으로 파괴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것과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국내에 생존하고 있는 참전자들은 나중에 발간된 전사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대입해 학습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의 증언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필자가 국방부에서 실시한 심일 소령 공적확인 공청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어느 참전자가 나와서 심일 소령이 적의 자주포를 파괴한 것은 사실이며, 자신이 직접 그 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는 6월 25일 당시 6사단 19연대 소속으로 현장과는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중에 발간된 전사책들이 참전자들의 경험에 이입되어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 국외에 나간 참전자들은 당시 자신이 경험한 것 이외에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실이 아님을 증언할 수 있다. 남병현의 증언이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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